네 편이 되어 줄게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서율아.
오늘은 할머니와 얽힌 추억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 엄마도 어릴 때 서율이만큼 생각이 많고, 예민한 아이였어. 내성적인 성격이면서도 인정받고 싶은 욕심은 유독 컸지. 그러니 마음속이 얼마나 복잡했겠어. 복잡한 마음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 날도 많았어. 할머니는 엄마의 이상하게 꼬여버린 마음도 무던히 잘 풀어주던 분이셨어.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서율이를 낳고, 키워보니 알겠더라.
찬바람이 막 불기 시작한 어느 날이었어. 딱 서율이 나이였을 때 일이야. 엄마 학교 앞에는 호떡 하고, 어묵을 파시는 아주머니가 계셨거든. 정말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맛있었어. 그날은 할머니가 200원을 주셔서 부리나케 학교 앞으로 달려가 어묵을 하나 사 먹었지. 딱 하나만 먹으려니 어찌나 감질나던지. 종이컵에 국물을 여러 번 퍼먹었어. 후후 불면서 먹는 국물도 정말 맛있거든. 돈도 더 안내도 되고 말이야. 그렇게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냉랭한 목소리로 "얘, 국물 좀 그만 먹어라!"하시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어묵 하나 사 먹고, 국물을 계속 먹고 있으니 장사하는 아주머니가 보기엔 탐탁지 않으셨겠지. 하지만 당시 엄마는 너무 서럽고, 창피했어. 울음을 꾹 참고 집으로 가서 할머니에게 일렀지.
할머니가 어떻게 하셨나고? 아니 글쎄, 할머니가 겉옷을 챙겨 입으시더니 밖으로 나가시는 거야. 엄마도 쫓아나갔지. 종종걸음으로 호떡집에 도착한 할머니는 아주머니에게 따지시더라. "사람 정이 있지, 국물 몇 번 더 먹는다고 뭐라고 하시면 서운하죠."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거야. 할머니는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시거든. 엄마가 어른이 돼서 할머니께 여쭤봤는데, 어린애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야박하게 그럴 수 있는지 너무 화가 나셨었대. 그날 이후 엄마는 어묵을 밖에서 사 먹지 않았어. 할머니가 나무젓가락을 끼운 어묵을 커다란 냄비에 잔뜩 넣고 끓여주셨거든. 실컷 먹으라고.
서율아, 엄마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그때 알았어. 지금도 지치고, 힘든 날에는 그날의 장면을 떠올린단다. 그럼 따뜻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갈 때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거든. 엄마도 서율이에게 그런 기억을 하나 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엄마가 할머니처럼 할 수 있을까? 잘하고 있는 걸까? 오늘 아침에도 잠 덜 깬 너희들에게 날 선 목소리로 서두르자고 재촉했는데 말이야. 흠, 그래도 서율이가 알아줬으면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는 네 편이야. 딸, 많이 사랑해.
2019년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며 아이들에게 매일 쓴 편지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