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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nction Nov 05. 2022

헛헛한 한 사람의 떠남을 기리며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였다. 외삼촌의 재혼식(?)을 참석한다고 토요일 수업을 땡땡이치고 광주로 먼 길을 떠났다가 친구들과 밤새며 놀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 굳이 버스터미널까지 가서 고속버스에 몸을 싣기 전이었다.


그땐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지방 고삐리가 휴대폰만 들고 있어도 날라리 취급을 받을 때라 4시간 동안의 버스 여행을 견딜 거리가 필요했던 순간이었다. 당연히 스포츠신문이 1순위이나, 하필 거기가 광주였던 탓에 아마 모든 스포츠신문의 헤드라인은 나의 철천지 원수(?)인 해태판이었던 것 같다.


꼴에 가오 좀 잡아보겠다고 택한 게 영화잡지였는데, PK의 생래적 보수성 탓에 조중동 같은 민족 정론지에서 나온 영화잡지는 열심히 찾았음에도 없었더랬다. 스크린이나 키노 같은 월간지는 고등학생 호주머니 사정엔 좀 많이 버거웠고, 그렇게 거르고 나니 과격한 논조의 한겨레에서 나온 씨네21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는 안 보지만 본 것처럼 허세 부릴 수 있게 해 준 씨네21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덕분에 포스터에 낚여 영화를 보며 ㅅㅂㅅㅂ 거리게 될 일은 많이 줄었고, 정성일이니 이동진이니 하는 이름들이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중 제일 즐겨보던 코너는 단연 ‘정훈이 만화’였다. 뭐랄까, 단순히 웃기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요즘 말도 아니지만 ‘웃픔’과 함께 뭔가 나와 다르지 않은 약간 모자란 캐릭터들의 티키타카는 마치 영화를 본 것 이상으로 새롭게 스토리를 그려내주는 것이었다. 씨네를 못 사는 한이 있어도 홈피에서 만화만큼은 정주행하며 읍내 대학시절을 보내기도 했었다.


작년에 한국영화박물관에서 개최한 정훈이 만화 특별전이 내겐 남달랐던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니었을까. 가장 초라하고 보잘것없던 촌스런 고등학생의 원초적 정서를 건드려 주고, 웃을 일 없던 시간을 웃겨주었던 고마운 친구여서.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한 주 내내 슬픔 속에 있다가 일면식도 없는 분의 또 다른 비보를 접한 것이 어쩌면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기분은 마치 어린 시절에 같이 어울리진 않았지만 보기만 해도 웃겨주던 동네 큰 형이 불의의 사고로 떠난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정훈이 만화를 사랑했던 이들이 느끼는 감정도 헛헛하지 않을까.


그동안 정 화백님 덕에 참 많이 웃었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https://naver.me/FGel6t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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