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XXX 예비후보 선거캠프에 약 일주일 가량 있다가 그만두었다. 일주일 정도만에 일을 그만두는 것은 누구에게나 흔치 않은 일일 것이고, 나에게도 그렇다. 이번에 일을 그만두면서 느꼈던 것들을 적어보려한다. 이 때 느꼈던 것들은 차후에 내가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영향을 강하게 끼칠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선거캠프를 엿먹이려는 것은 아니고(그럴거면 애초에 후보 이름을 깠을 것이다), 담담하게 그때의 경험을 담아내어 나의 내일을 위한 밑거름으로 쓰기 위함이다.
선거캠프에서 나온 이유: 부모님의 반대
어떤 일을 그만둔 경험에 대해 썰을 푼다면, 가장 처음에 나와야할 내용은 그 일을 그만둠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어야한다. 내가 선거캠프 일을 그만둔 이유는 여럿이 있지만,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던 변수는 부모님의 반대였다. 부모님은 내가 어떤 지역의 선거캠프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첫 날부터 싫어하셨고, 출근하러 가는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정말 말그대로 전쟁이었으며, 스트레스로 인해 부모님의 건강이 악화되기까지에 이르렀고, 선거캠프에 일을 하러 나와도 죄책감이 나를 엄습했다.
그리고 결국에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부모님과 전쟁을 벌이면서 사는 것과 선거캠프에서 일을 하는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었고, 결국에 나는 선거캠프를 포기했다. 선거캠프의 일이 부모님과의 전쟁을 감수할 정도로 의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선거일이 의미있었다면 나는 부모님과의 전쟁을 감수했을 것이지만, 선거캠프의 일은 그 정도로 매력적이진 않았다(뒤에서 자세한 썰을 풀게 될 것이다).
아무튼 이 일을 통해서 내가 선택해야할 직업의 성격을 하나 얻어냈다. 부모님이 싫어하지 않는 직업이어야한다는 것. 그분들이 좋아하는 직업일 필요까지는 없다. 다만 그럼에도 싫어하지는 않아야한다. 그래야 나도 일을 하면서 죄책감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분들이 내가 하는 일 때문에 불행하거나 불쾌하다면, 나는 그 일을 할 때 그 일이 정말 행복하고 또한 나의 커리어-미래에 이로운지 살펴보며 저울질을 해야한다. 그리고 나는 선거캠프일의 경우 다방면을 통해 살펴본 결과, 그만둬야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선거캠프에서 나온 이유: 열정페이(=무급)
선거캠프에선 돈을 주지 않는다. 사실 이건 처음에는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애초에 자원봉사라는 것을 알고 갔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주지 않는 것을 알고 선거캠프에 참여했으며, 그저 교통비를 주고 밥이나 제때에 챙겨주기를 원했다. 그런데 돈은 결국엔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제때 밥을 주지도 않았다. 저녁 밥을 먹으려면 사무소에 늦은 8시까지 자리를 지켜야했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5~6시에 퇴근해서 집에서 밥을 먹는 게 나은 선택이었다)
돈이라는 보상이 중요해진 이유
나는 '돈'이 아니라 '의미' 때문에 선거캠프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문제가 안되었던 돈이라는 보상이 결국엔 문제가 된 이유는 단순히 '돈이 받고싶어서'가 아니었다. 난 딱히 돈이 급한 입장은 아니며, 돈을 벌려는 사람은 선거캠프에 들어가는 미친짓을 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나는 의미있는 일을 하기 위해 선거캠프에 참여했고, 선거캠프에서도 나를 섭외한 것도 '의미있는 일'을 맡기기 위해서일거라고 지레짐작했었다.
"공유해주세요"
그런데 선거캠프에서 하는 일이라고 XXX 후보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 그것을 XXX 후보 선거캠프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유하거나, XXX 후보의 기사가 올라오면 그것을 선거캠프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유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선거캠프의 직원이 "공유해주세요"라고 메세지를 보내면 공유하기도 했었다. 어이가 없던 것은 내게 "공유해주세요"라고 하는 사람은 애초에 내가 선거캠프에 합류하기 전에 '공유 업무'를 하고 있었어서 페이스북 계정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내가 없어도 공유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기에 애초에 내게 '공유해주세요'라는 메세지를 보낼 시간에 본인이 직접 '공유'를 하는 게 빠름에도 내게 "공유해주세요"라는 메세지를 날렸다는 것이다. 그런 메세지를 처음 받았을 때는 그런갑다하고 공유를 했는데 "공유해주세요"라는 메세지가 두 통, 세 통 쌓여갈수록 내가 대체 이곳에서 뭘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내가 여기에 온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업무의 자유가 없다는 것
심지어 공유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관리해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반해서 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페이지의 좋아요는 최근에 12000건을 돌파했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네이버 블로그나 브런치를 통해 무엇이 흥하는 컨텐츠인지에 대한 감각을 길러왔으며 그 감각들을 방문자 수를 통해 증명해왔다. 그런데도 나는 SNS에 대해서 그 사람에게 지시를 받았고, 무엇을 하면 되고 하면 안되는 지에 대해서 간섭을 받았다. 예를 들어 XXX 후보의 사진 세 장이 홍보 업체로부터 전달됐었는데, 나는 그 사진을 한 개씩 세 번 올렸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그렇게하면 사람들이 피로해서 팔로우를 안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렇던데'며 나의 XXX 예비후보 페이지 관리를 간섭했다.
나는 SNS를 잘한다는 이유로 캠프에 참여하게됐는데, 정작 SNS에 있어서 전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경험을 들어 간섭하는-전문성도 없는-사람에게 간섭이나 받으면서 일을 했다. "보안상 무엇을 올리면 안된다"라는 식의 간섭은 차라리 괜찮으며 그런 간섭은 많을 수록 좋다. 그런데 보안상 문제가 없으며 'SNS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서 데려왔으면 SNS관리에 있어서 최소한의 권한은 줬어야했다. 하지만 나에게 아무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결국 선거캠프에서 나는 임금없이도 부릴 수 있는 소모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상 내가 선거캠프에서 했던 일은 'SNS를 잘 몰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굳이 SNS에 대해 경험이 없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단순 업무였다는 이야기다. 다음에 내가 선택할 직업에선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 전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정도의 권한이 있어야할 것이다. 그래야 일이 보람차고, 일을 하며 자아실현을 할 수도 있다. 이건 내게 굉장히 중요하다. 돈보다 더 중요하다.
선거캠프에 소속되어있는 기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돈'은 점점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단순업무에선 자아실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돈이라도 나와야한다. 내 글을 자주 접하는 이들이나 나와 친한 이들은 내가 어느 시점부터 키배를 안한다는 걸 안다. 그 이유와 비슷하다. 키배로는 상대를 설득할 수 없는데, 심지어 돈도 안나온다. 즉, 의미도 없고 보상도 없다. 키배 대상이 내게 돈을 주면? 액수에 따라서 나는 얼마든지 참여해서 싸워줄 수 있다. 상대에 따라 액수가 크긴해야될 거다. 예를 들어 변희재같은 사람이랑 상대해야되면 나의 시간은 소중하므로 시간당 500~1000만원은 계좌로 쏴줘야한다.
선거캠프에서 나온 이유: 선거판에서 나의 미미한 역할
선거캠프에 있다보면 하루도 빠짐없이 지지자들이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말 다양한 이름을 달고있는 조직의 사람들이 캠프에 온다. 정말 그런 조직이 있어?라고 할법한 조직의 사람들이 온다. 나는 우리나라의 시민단체 수가 타국에 비해 적다는 것을 알고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알고있지만, 내가 선거캠프에서 느꼈던 건 전혀 다르다. 정말 많긴 많더라.
나는 짧은 기간 선거캠프에 있었지만 사무소 개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나는 사무소 개소식 키노트를 만들었다(내가 SNS담당이긴했지만, 이 세계에선 그런 건 상관없었다). 키노트를 만들 때 개소식에 참여하는 사람들 명단을 일일이 키노트에 적어넣었다. 2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써넣은 것이다. "이름(소속된 조직과 보직)"을 써넣었는데 그것들을 일일이 써넣으면서 들은 생각은 첫째, 사람 많이 왔다는 걸 굳이 이렇게 티내야되냐는 것, 둘째, 이 선거판에선 내가 할 수있는 게 없겠다는 것.
선거사무소 개소식 때는 수많은 인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연예인이 참석해서 축사를 하기도 했고, 수많은 참전 용사들이 자리에 와서 "필승!"을 외치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뽐내기도 했다. 개소식이 진행되는 중간중간에 사이즈가 작은 난부터 두 명에서 세 명이 달라붙어야하는 거대한 화분들이 들이닥친다. 발디딜 곳 없는 인파가 들이닥치는 데 화분까지 덤비면 그야말로 카오스가 펼쳐진다.
그런데 선거캠프에서 나의 역할은 "SNS담당"이었으며 그나마 나의 역할은 올려달라고 지시하는 것을 올리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 것은 없었기에 SNS로 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그리고 SNS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었기에 내가 선거캠프에서 할 수 있는 것 역시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XXX를 지지하는 그 수많은 조직들을 떠올려보라. 이미 선거판은 짜진 듯 했고, 선거캠프에서 내가 빠지건 합류하건 딱히 유의미한 변화는 없다는 게 나의 진단이었다. 내 손이 묶여있었으며, 판이 이미 거대한 손에 의해 이미 짜여져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참여했던 선거판을 주도하는 건 인터넷이 아니라 조직이었다.
나의 진단이 맞다면 '투표'는 그저 그 짜여진 판을 확인하는 단계일 뿐이었으며 오프라인에서 명함을 돌리는 선거운동은 혹시 모를 위험을 없애기 위한 보험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건 내가 참여했던 캠프나 그 캠프와 경쟁하는 다른 캠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 다른 지역구들도 사정은 비슷할 거라 나는 추측한다.
나는 조직에서 딱히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내가 조직에 유의미하게 존재할 수 없다면 선거캠프에 굳이 나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남아있을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부모님들은 매일같이 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니 저울은 계속 기울어졌다. 하지만 이 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선거캠프에서 나온 이유: XXX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
선거캠프는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으로 만드는 조직이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는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이며,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조직을 이루고 있으며, 이뤄야한다. 박근혜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문재인 선거캠프에 소속되어있다면 나는 누가뭐래도 문재인을 지지해야하며,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염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조직에서 딱히 보람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캠프에서 나오는 게 인지상정이다.
나는 학과 생활 중 알게된 교수를 통해 정치권에 대해 알려달라며 연락을 드렸고, 그 분은 XXX 후보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며 내게 선거캠프에 들어갈 것을 추천해줬다. 나는 교수를 신뢰했으므로, 그 후보도 교수만큼 좋은 사람일 거라고 되레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실수였다. 이것이 나의 실수인 이유는 XXX 후보가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가 아니다. 애초에 지지하는 마음이 있는 상태에서 선거캠프에 들어가는 게 '순서'가 맞는데, 나는 선거캠프에 들어간 뒤에 XXX를 지지해야할 이유를 찾아헤맸다. 동기도 없는데 후보를 응원해야했다.
그러니 일-애초에 일이랄 것도 별로 없었지만-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저 사람을 내가 왜 지지해야하는 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내 개인적 과제였다. 내가 저 사람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굳이 나의 시간과 재능을 저 사람을 위해 쓸 필요는 없다. 앞서 말했듯,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XXX를 지지할 이유
부모님은 내가 하는 일을 싫어하시고(심지어 스트레스로 건강도 악화되셨다), 하는 일에서 의미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심지어 돈도 안되니까 XXX를 지지할만한 이유를 찾아야했다. '순서'는 이미 틀어져버렸으니까 선거캠프에 남아있을 이유를 찾으려했다.
페이스북으로만 교류를 하고 있는 K님-연애칼럼에 자주 언급되는 그 K가 아님-은 내가 XXX를 모른다고 하자 '헤비정덕'들은 아는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헤비한 정치덕후들만 아는 사람이었으니 나같은 라이트한 정치덕후는 모르는 사람인 게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XXX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부하고, 선거캠프에서의 그의 모습을 관찰했다. 그리고 선거 캠프에 지지자들이 찾아오면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기도 했다.
XXX를 지지할 이유: 찾지 못함
하지만 결국 실패. 오히려 나는 XXX를 싫어하게 됐다.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는 내 인사를 씹었고, 둘째, 첫째 이유와 무관하게 거만한 마초였다. 애초에 국회의원 몇 번 한 양반한테 '겸손함'을 바라는 게 말도 안되는 거긴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내가 굳이 지지할 필요는 없다. 아이러니한 건, 사무실의 모든 사람들을 좋아하게 됐는데 딱 후보만 싫어하게 됐다는 것(...)
결론적으로 이번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선거캠프를 겪으면서 나의 다음 직업은 어떠해야하는 가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이번 선거캠프를 통해서 '나'를 더 잘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다음 직업은 아래의 조건들을 만족해야할 것이다.
1. 내가 하는 일에 부모님이 적어도 반대는 하지 않아야한다. 찬성하면 더 좋다.
2. 하는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어야한다.
3. 일이 의미가 없다면 돈이라도 양껏 벌어야한다. (액수는 잘 모르겠다)
4. 내가 속한 조직의 비전에 동의할 수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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