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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Mar 22. 2016

[헬조선개론] 2. 은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다.


[헬조선개론]

[헬조선개론]은 대한민국이 헬조선이란 이름이 붙게되었는 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기 위해 쓰는 시리즈다. 시리즈라고는 하지만 정작 주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지는 않고, 몇달만에 두번째 글을 쓰고 있다. 세번째 글은 몇달 뒤에 나올 수도 있고,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글이 자주 쓰여지고 나름 흥하게 되면 책을 낼지도.




대학 OT에서의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aka 성범죄)에 대처하는 대학생들

최근에 꽤나 자주 이슈되고 있는 것이 있다. 대학생 신입생 OT, MT에서의 음주문화다. 건국대가 이 이슈에서 스타트를 끊더니 한양대, 연세대에서까지 신입생들의 내부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고학번의 학생들은 술자리에서 자신보다 학번이 낮은 학생들에게 강압적으로 스킨십을 시킨다. 쇄골에 술을 따르고 러브샷을 하게 하거나, 선배의 허벅지 위에 앉아서 술을 마시게 하거나, "산 넘어 산"이라면서 볼 뽀뽀-입술 뽀뽀-키스 등을 시키기도 한다. 이 이슈에서 성희롱을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게끔 강압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자는 명백히 가해자이고, 그 강압적 분위기에서 어쩔 수 없이 스킨십을 하는 자들은 피해자다. 


선배들의 또라이같은 문화를 겪은 신입생들이나 신입생은 아니지만 그걸 곁에서 지켜본 학생들은 페이스북 페이지 등에 제보를 했다. 예를 들어 연세대의 15학번의 어떤 학생은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이라는 페이지에 제보를 했다. 그 중 일부는 아래와같다.



위의 글로 직접 가시려면 오른쪽의 "클릭"을 클릭하시면 된다(클릭). 제보자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 지는 엄밀히 말해서 확인된 바가 없다. 그저 소설을 지어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나는 제보한 내용이나 자신이 속한 과를 설명하는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며, 굳이 구라를 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나는 제보된 내용이 사실과 가까울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당하는 내용이 사실인지 소설인지를 확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위에서 묘사되는 과가 어떤 과인지가 명백하게 밝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은 특정과를 태그하지 말라는 멘트를 남겼고, 학생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을 이해하지 못할 건 없다. 이 이슈와 전혀 무관한 과가 태그가 되어서 엉뚱하게 의심받게되고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올까봐 우려하는 것일 게다. 누군가가 특정 학과를 태그하게되면 태그한 자가 그 책임을 물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의 책임 의식이 과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들의 선택도 이해못할 것은 없다. 하지만 누가 도왔건 간에 결과적으로 성희롱을 일삼는 OT를 진행했던 연세대의 학과는 "은폐"되었다. 


"은폐"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위 게시물의 댓글을 보면 알겠지만 (아마도 연세대에 속해있을) 학생들은 "은폐"를 꺼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저 게시물의 댓글들을 모두 봤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마도 연세대에 속해있을) 학생들이 "과를 공개하라"라는 메세지를 던졌다.



다른 대학들이 자신들의 대학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응하는 태도는 이와 상반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꽤나 자주 포착된다. "허위제보"라며 제보자를 사기꾼으로 모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댓글창도 있고, "왜 굳이 인터넷에 이런 이야기를 공유해서 학교의 명예를 더럽히느냐"라고 줴치는 사람들이 가득한 댓글창도 있다. 이들은 해당 문제를 아예 언급하지 않으면서-"은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은폐를 통한 해결 VS 공개를 통한 해결

사실, 이 이슈는 역사가 결코 짧지 않다. 갈등이 존재하는 곳에는 항상 이 두 관점이 갈등을 일으켰다. 은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하는 자들은 문제 자체를 '없던 척'하며 '문제가 없었던 과거를 연출하여 '평화로운 지금'을 만들어내려한다. 


은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자들이 추구하는 은폐의 정도는 때의 따라 다르다. 사장 혼자 문제를 은폐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임원이나 이사장들이만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고 그 외의 조직원들은 해당 문제에 대해 전혀 소식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정보에 접근하지 못했던 이들은 "우리 조직은 정말 아무 문제도 없구나~"라고 하겠고, 그게 아마 은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하는 자들이 원하는 결과일 것이다. 그게 그들이 생각하는 '해결'이다. 


하지만 은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맹점이 있다.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임원 1인이 신입 1인을 성추행했다고 해보자. 이 때 은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는 임원 1인과 신입 1인에게 입막음을 시키고, 신입에게는 '일종의 보상'을 주거나, 회사에서 나가게끔할 것이다. 신입이 성추행을 당했으므로 신입이 회사에서 나간다면 회사에는 "성추행을 당한 직원"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조직 내에 문제는 없게 된다. 은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들은 주로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면, 해당 임원은 또 마음 편히 성추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조금도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쌤앤파커스의 성추행 사건


성추행, 성희롱을 비롯한 성범죄들은 권력형 범죄이기 때문에 상하구조가 존재하는 조직들에서 특히 많이 발생한다. 군부대에서 성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와 공기업, 사기업에서 성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조직원 간의 상하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하관계가 있는 어떤 조직의 성범죄가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한다면, 그 조직에 어떤 의미있는 문화나 제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난 상하관계가 있는 조직에서 성범죄는 Default로 발생한다고 본다. 그걸 제어해야하는 게 법과 제도와 시스템이다.


유명 출판사의 이 상무는 수습인턴을 오피스텔에 데려가서 옷을 벗으라고 요구하고, 입맞춤을 했다. 조직 내에서 성추행이 발생한 것이다. 강간까지 이어질 수도 있던 상황이었지만, 수습인턴은 다행이도 탈출할 수 있었다. 성추행을 당한 시점부터 언론에 공개되기까지의 경과는 아래의 경향뉴스 인용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16일 전국언론노조 출판분회에 따르면 ㄱ씨(30)는 2012년 9월 이 출판사 이모 상무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2011년 4월 입사해 17개월 동안 수습사원으로 일한 시점이다. 이 상무는 정직원 전환을 앞둔 최종 면담 성격의 술자리를 요구한 뒤 ㄱ씨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데려가 옷을 벗을 것을 요구하고 침대로 끌고 가 입을 맞췄다. ㄱ씨는 이 상무가 입맞춤을 마치자 밖으로 뛰쳐나와 주민 도움을 받아 귀가했다. 이후 정직원이 된 ㄱ씨는 이 상무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더 나오자 지난해 7월 사내에 공개했다.

강변구 언론노조 출판분회장은 “이 상무는 이 사실이 알려지자 회사를 그만뒀지만 피해자는 내부고발자로 몰렸다”고 밝혔다. ㄱ씨는 지난해 9월 사직하고 이 상무를 고소했다. 하지만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4월 “이 상무가 옷을 벗으라는 요구를 하고 키스를 한 점 등은 인정되나 ㄱ씨의 저항이 없었다”며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출판사는 9월부로 이 상무를 복직시켰다."(경향신문)


이를 통해서도 "은폐를 통한 해결"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다. 수습인턴은 사내에, 즉 조직 내부에 성추행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이때가 2013년 7월이다. 이에 이 상무는 그만뒀다. 그런데 피해자였던 수습인턴은-강변구 언론노조 출판분회장에 따르면-"내부고발자"로 몰려서 퇴사하기에 이른다. 이 부분이 이상한 이유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피해자가 "내부고발자"라는 비난을 받고 퇴사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은폐를 통한 해결"을 하려했는데, 수습사원이 이를 그르쳤으니 조직에서 자발적으로 나가게끔 했을 것이다. 그리고 출판사는 가해자였던 이 상무가 법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이유로 회사에 복귀시킨다. 그런데 인권감수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심히 아재스러운 허접스러운 판결(2014년 4월)에 얼씨구나하고 이 상무를 복귀시켰던 것은 결국 조직적 실패였다. 결국 출판사의 대표는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사퇴했으니까(2014년 11월 24일). 



그런데 사퇴하면서 쓴 글을 보면 정말 잘못을 해서 퇴사를 한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그저 시끄러우니까 퇴사를 하는 느낌이다. 회사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비단 가해자에게만 있지 않다. 조직을 관리하는 자는 피라미드의 아래에 있는 자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출판사는 그런 보호의 의무는 내팽게친 채, 되려 피해자에게 "내부고발자"라는 낙인을 씌우고 비난을 했으니, 과연 "은폐를 통한 해결"의 보조재로서 유효한 사례라 하겠다. (그런데 이 상무는 계속 그 출판사에 있는건가? 대표가 사퇴했다는 이야기는 있는데 이 상무에 대한 기사는 찾기 어렵다)


<스포트라이트>의 보스턴 사람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보스턴이 배경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보스턴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보스턴이 잘 되길 바란다. 다만, 목표는 같을지언정 과정에 있어선 방법을 달리한다. 


이 영화는 기독교 사제들의 아동성추행을 다루는데, 어떤 이들은 이를 숨기려하고, 어떤 이들은 이를 파헤쳐서 공개하려 한다. 감추려는 이들은 기자들에게 "기독교사제들이 얼마나 사회에 기여한 게 많은데"라며 "보스턴을 위해 못본 척 해달라"는 이야기를 당연스레 한다. <스포트라이트>의 흥미로운 점은 영화에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것이 성추행을 한 사제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사제들의 악행을 은폐하려는 자들이 빌런으로 등장한다. 헬조선 버전으로 하면 "가만히 있으라"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Boston Globe지의 특종팀들인데, 이들 역시 보스턴을 위하지만, 성추행 사제들의 범죄를 못본 척하기보다는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려한다. <스포트라이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그래서인지 막상 해피해피한 엔딩은 없다. 기자들은 그저 수면 밑에 가라앉아있던 진실들을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했을 뿐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게 기자들의 유일한 본분이기도 하다. 정보공개 이후부터는 법조인들의 영역이다. 성추행한 사제들이 공개되긴했지만, 그들이 법적으로 무자비한 처벌을 받았는 지에 대해선 이렇다할 내용이 영화에 공개되지 않았다. 오히려, 피라미드의 탑에 있던 책임자(?)가 파견지를 바꿨다는 다소 맥빠지는 내용이 언급될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특종팀의 방식을 더욱 지지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공개를 통한 문제해결은 은폐를 통한 문제해결과 무엇이 다른가?

은폐를 통한 해결보다 공개를 통한 문제해결이 더 바람직한 이유는 문제의 재발을 억제할 개연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위에서 언급한 출판사에서 당분간은 성범죄가 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성추행 이슈로 인해 조직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는 수습사원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수습사원이 아니었다면 조직은 성범죄로 인해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았기에 성범죄가 계속해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정보 공개를 통한 문제해결을 통해 해당 이슈에 문제를 느끼는 이들간의 조직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위의 출판사 성추행 사건을 보자. 수습사원이 내부고발을 한 이후-피해 사실을 공개한 이후-수습사원과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원들이 목소리를 내었고, 그들은 조직될 수 있었다. 그들이 조직될 수 있었기에 법적 대응까지 할 수 있었고, 기사화가 되어 사회의 여론을 흔들 수 있었다. 이는 "은폐를 통한 해결"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정보 공개를 통해 문제를 최대한 많은 사람과 공유한다면, 해당 문제와 직접 관련없는 당사자들도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해당 출판사의 문제가 부각된다면, 다른 조직들도 해당 회사의 실패 사례를 본받아 제도 개선을 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은폐를 통한 해결"에선 애초에 존재할 수도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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