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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Mar 30. 2016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1. 수단

영어회화 학원에서 알게된 2살 많은 형이 갑자기 연락을 하더니 내게 물어볼 게 있다고 했다. 알려줄 수 있으면 알려준다고 하고 주제를 물었다. "꿈, 복지정책, 정치", "아항, ㅇㅋ"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층민들에게 오히려 불이익인 것들을 바꾸거나 법을 만들어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는 "바꾸는 것"을 하고 싶어했다. 이런 걸 표현하는 여러 말들이 있다. "진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개선"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혁명"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여하간에 "진보", "개선", "혁명"이란 것의 본질은 어떤 것을 이전 상황과는 다르게 바꾸는 것을 말한다. 그는 내게 '어떻게 상황을 이전과 다르게 바꿀 수 있냐?'란 질문의 답을 얻고자 연락을 한 것이다. 


나도 답이 없다.

"물어볼 사람이 있어서 감사한거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선 끊임없이 답을 찾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에 "그건 이거다!"라고 명확하게 딱 말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다. 이 글은 그 고민을 한번 풀어보기 위해 쓰는 글이다. 


여러가지 방법론들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나는 "국가란 무엇인가?", "어떻게하면 저런 참사를 막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빠져살았다. 그러다가 Youtube에 업로드되어있는 유시민의 강연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걸 알게됐다. 아니, 유시민이나 나 뿐만이 아니라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자들은 아마 다들 비슷한 고민을 했을 거다. 애초에 '지금'의 무언가가 문제이기 때문에 뭔가를 바꾸고자 하는 자들이 진보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정의한다). 


수단 중 하나: 혁명

유시민은 강연에서 혁명에 대해 공부를 했었다고 한다. 그의 접근은 타당한 부분이 있다. 가장 많은 변화를 촉진해내는 것이 바로 혁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혁명이 어떻게 일어나며, 왜 일어나는 지에 대한 공부를 하면 "변화"가 어떠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지를 어느정도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혁명은 개인이 선택하기는 어려운 옵션이며, 불가피한 때가 아니면 택하지 말아야할 옵션이기도 하다. 혁명은 필연적으로 피를 부르기 때문이다. 혁명은 조금은(?) 과격한 수단이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수단이다. 


수단 중 하나: 집회 및 시위


요즘에 "변화"를 이루려는 이들이 수단으로 택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집회 및 시위, 언론, 정치(입법 및 압력행사), 법, 풍자, 예술 등. 


집회 및 시위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수단 중 하나이며,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다. 예를 들어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 전국민적인 집회가 일어났었는데, 그 때의 집회 덕에 한미간 FTA의 계약 내용이 바뀌었다. 


하지만 집회 및 시위가 항상 무언가를 바꾸는 데에 있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원하는 바를 성취하지 못하는 때가 더욱 많다. 하지만 이때의 '실패'를 어떻게 평가할 지에 대해서는 평들이 갈릴 수 있다. 집회를 통해서 실제로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지 못했다하더라도, 무언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대중들에게 알린다면, 그것은 일종의 성공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성과를 바라면서 집회를 하는 이들은 많은 경우에 결과적으로 좌절할 수 밖에 없지만, 집회나 시위를 일종의 언론행위로 바라본다면 단기적인 성과가 없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단편적으로 보면 집회를 통해 '당장' 바뀌는 게 없다할지라도, 그 영향이 어떤 나비효과를 발생시킬지는 알 수 없다. 


더군다나, 어떤 문제적인 법이 통과되려하는데, '어차피 집회를 하건 말건 통과될 거다'라는 패배주의에 찌들어있는다면 문제적인 법은 어떠한 잡음도 없이 처리될 것인데, 이는 문제적인 법이 문제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하여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집회를 한다면 그 법이 아름답게 통과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레드카펫에 똥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레드카펫에 똥칠을 함으로써 텍스트의 성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집회의 큰 영향력이라고 본다.



수단 중 하나: 언론

언론이라는 수단을 통해 무언가를 바꾸려는 자들-그들을 저널리스트라 부른다-역시 많다. 언론 역시 집회 및 시위와 마찬가지로 타율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언론이 문제적인 사안을 보도한다고 그 사안이 반드시 아름답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저널리스트들의 역할은 수면 아래에 있는 문제를 끌어올려서 여론을 움직이는 것인데, 문제를 끌어올려도 여론이 움직이지 않으면? 딱히 변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언론은 다른 수단들에 비해 꽤나 의존적이다. 언론이 대중의 여론을 견인하기도 하지만, 대중의 여론이 언론의 뜻대로 견인되지 않는다면 언론은 이렇다하게 뭔가를 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대중 의존적이다. 언론은 경찰이나 검찰에게 온갖 비리들을 던져주며 "법적으로 처리하라"라는 암묵적인 압박을 넣지만, 이 역시 경찰이나 검찰이 아무것도 안하면 영향이 없다는 점에서 의존적이다. 예를 들어, 언론들이 여당 의원의 비리를 들춰낸들,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딱히 바뀌는 건 없다. 언론이 어떤 의원의 선거 부정을 고발해도 선관위가 일을 안하면 도루묵이 된다. 물론, 그것마저도 언론이 고발할 수는 있겠지만, 이때 시민사회가 "그게 뭐어쨌다고?"라며 무심한 눈빛을 보내면 변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언론은 대중들의 윤리감수성에 따라 그 영향력을 달리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뉴스타파는 최근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의 딸이 성신여대에 특혜를 입고 입학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동작(을)에서 나경원의 지지율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언론이 특종을 터뜨려도 그 자체만으로 변화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언론이 터뜨리는 것을 대중들이 주워받고, 대중들의 분노가 사이즈가 커지는 것을 경찰이나 검찰이 감지하면 그때 법적인 조처가 이루어진다. 언론이 특정 기업의 비리를 지적하는 경우, 해당 회사에 대한 대중적 보이콧이 이뤄질 수도 있는데, 그 보이콧의 사이즈가 커지면 기업은 회사의 생존을 위해 해당 문제를 해결하려할 것이다(하지만 이렇다할 반응들이 없다면, 회사는 딱히 문제를 개선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출판사 샘앤파커스의 이 상무가 수습사원을 성추행했다는 내부고발이 있게되고, 수습사원이었던 피해자가 고소를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언론에 의해 폭발적으로 증폭되었다. 결국 이 상무는 사퇴했지만 분노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지 않자 대표였던 자도 사퇴하기에 이른다. 언론은 이런식으로 변화를 만들어낸다.


정치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가 세상을 바꾸는 가장 주요한 수단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난 좀 다르다. 정치는 그저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국회의원들이 입법을 하면서 좋은 변화나 나쁜 변화들을 만들어나가긴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오히려 정치권을 더욱 안정감있게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 지금의 정치권은 기업들의 로비나 기업형 언론들의 입김에 너무도 쉽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판은 기본적으로 불안정하다. 사람 한 두명이 들어오면 정당의 성격이 전과 다르게 바뀌고, 행정부에 누가 있는 지에 따라서 변화의 방향이 쉽사리 바뀐다. 통일 정책을 예로 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통일을 위해 햇볕정책을 시행했지만, 이명박박근혜정부가 들어왔을 때는 휴민트를 모두 날리고,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남북간의 긴장을 유지하고, <대박통일론>을 외치며 통일을 이루려하고 있다. 통일을 하기 전의 독일은 통일 정책에 있어서 일관성을 유지했다. 그들도 일종의 햇볕정책을 시행했었다. 동서간의 편지를 교류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서독은 동독을 국가로 인정해줬다. 보수정부가 들어왔을 때도 이러한 햇볕정책에 딴지를 걸지 않았다, 즉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었었다. 한국의 정치판? 사람에 따라 많이 바뀐다. 불안정하다. 안정적일 수 있게 바꿔야한다. 그래야 뭘 해도 된다.


한국에선 "누가 어디에 있는 지"에 따라서 많은 것들이 변화하기 때문에 정치에 다들 목을 매는 것이라 생각한다(이는 그만큼 시스템이 부재한다는 걸 반증한다). 실제로 행정부와 국회는 변화의 중심에 있고, 그들에게는 변화를 만들 힘이 있다. 국회의원들은 입법기관으로서 법을 입법할 수 있고, 행정부는 행정입법을 하거나, 자신이 디자인한 법을 국회에 토스해서 입법시킬 수도 있다. <테러방지법>이 청와대가 디자인한 것을 새누리당이 토스받아서 입법하여 통과시킨 법이다. 


하지만 입법은 기본적으로 '머릿수' 싸움에서 이겨야하는 것이라서 누군가가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도, 그가 입법한 법안이 통과될 거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 즉, 국회의원의 입법활동도 집회나 언론과 마찬가지로 변화를 만드는 것에 일정한 제약이 따른다. 사실 이는 일견 타당하기도 하다. 국회의원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법을 멋대로 통과시킬 수 없게 만드는 장치이니까. 여튼, 이런 게 있다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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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예술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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