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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un 28. 2016

성범죄 피해는 여성에게 수치인가?

전혀.


인도 델리에서 일어난 집단 강간살인 사건

최근 <그것은 알기 싫다> 팟캐스트에서 인도에서 일어난 범죄-집단 성폭행 및 살인 사건을 다뤘다. 위키피디아는 이 범죄의 이름을 "2012 Delhi gang rape"로 지었다(링크). <그알싫>은 180a과 180b 두 편을 연달아서 이 사건을 다뤘는데 180a편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Nirbhaya". 니르바야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란 의미인데 이 이름의 의미보다 더 중요한 건 이런 닉네임이 등장한 맥락이다. 


인도에선 성범죄 피해를 입은 자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다. 성범죄 피해 여성이 가문에 있다는 게 밝혀지는 건 가문의 수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죄 피해자의 실명 조티 싱 Jyoti Singh의 실명이 공개되지 않고 니르바야라는 닉네임이 붙은 것이다. 니르바야 외에도 조티 싱에게 붙은 닉네임은 더 있다. "Jagruti"(깨달음), "Jyoti"(불), "Amanat"(보물), "Damini(빛), "Delhi braveheart"(델리의 용감한 심장)


하지만 조티 싱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은 잘못한 게 없다면서 실명을 공개할 것을 요청하고 피해자 조티 싱의 이름은 미디어에 공개되기에 이른다. 성범죄 피해자의 실명이 공개된 사례는 인도에서 이전에 없었다. 조티 싱은 잔혹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심신이 망신창이가 된 이후 또 당국의 전시 행정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알싫>을 참고하시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동명의 공지영 소설 원작의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에서 이나영이 연기한 문주영은 반복적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감독 송해성은 그녀의 우울증을 어렸을 적 사건으로 설명한다. 문주영은 미성년이었을 때 한 사촌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리고 강간을 당한 뒤 엄마에게 가서 그 사실을 고한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은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엄마는 그녀를 지켜주긴 커녕, 뭘 잘했다고 우냐고, 처신을 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런 일을 당하냐면서 그녀를 비난한다. 문주영은 이 사건 이후로 삶을 비관하게 된다.


강간 피해자의 처신을 문제삼는 다는 건 강간 가해자가 강간을 하게끔 피해자가 어느정도 원인 제공을 했다는 이야기와 다름 아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여성이 처신을 잘했다면 강간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와도 통한다. 이런 사례는 <우행시>에서만 등장하는 극단적인 사례일까? 보편적으로는 가해자만을 비난하는데 영화적 자극을 위해 피해자를 비난하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등장시킨 것일까?


"가문의 수치다"

인도에서 성범죄 피해자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와 <우행시>에서 성범죄 피해를 고발하지 않고 은폐하는 이유는 서로 통한다. 감추고자하는 이들은 피해 사실을 알리면 피해자가 속한 공동체의 명예가 더럽혀진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이상하다. 피해자가 피해를 받았고, 피해자의 잘못으로 가해가 발생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피해 사실이 고통스러울지언정 부끄러울 이유는 없다. 피해자는 명백하게 무고(not guilty)하다고 생각한다면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성폭행 사실을 은폐하거나 성폭행 피해자의 신원을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은폐한다는 건, 피해자에게도 어느정도 귀책사유가 있다는 사고를 전제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우행시> 엄마의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엄마는 딸이 무언가 처세를 잘못했기에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처세를 잘못한 것이 잘못이고 부끄러운 일이기에 성범죄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다. 딸이 그 범죄가 발생한 계기를 제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원래 그렇고, 여자는 조신해야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남자는 원래 그런 걸 못참으니까 여자가 알아서 조심해야한다'라는 생각을 전제한다. 남자가 원래 그런 참는 지 못참는 지는 이 이슈에서 꽤나 중요하다. 남자가 원래 그런 걸 못참는다면 여자에게 남는 선택은 두개다. 남자와 만나지 않거나, 처신을 잘하거나. 하지만 이 논의는 애초부터 잘못되었다. 남자도 참을 수 있다. 또한 참을 수 없더라도 참아야한다. 그게 짐승과 인간의 차이다. 하고 싶어도 참는 것. 


'남자는 참을 수 없다'고 믿어버리면 성범죄의 모든 귀책 사유가 여성에게 집중된다. 남자는 당연히 그런 건데, 여자가 조신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진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제르바이잔에서 일어나는 명예살인은 이런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두 남녀가 바람을 피는데, 바람을 핀 남성은 '원래 그런 종족이니' 용서가 되지만 여성은 한 남자에 충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인 당한다. 명예살인이 일어나는 국가에 사는 여성은 권리는 없는데 책임은 누구보다도 크게 가진다. 그렇기에 강간을 당해도 그 책임을 여성에게 무는것이다.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하는 문제

인도같이 '가문의 수치다'라는 이유로만 성범죄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하지 말자는 주장이 있는 건 아니다.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하는 것 자체가 2차 가해라는 주장(1)도 있고, 신원노출로 인해 2차 가해에 노출될 수 있다는 주장(2)도 있다.


인도(혹은 <우행시>의 엄마)와 (1)은 결과적으로는 같은 결론,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다만 목적지는 같을 지언정 노선은 다르다. 인도가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뉘앙스라면, (1)의 의도는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될 것을 우려해 신원을 은폐하자고 한다. 조티 싱의 어머니의 경우는 자신의 딸이 잘못한 게 없다면서 딸의 신원을 공개했으니, 인도의 방식에 반기를 든 셈이다. 한편, (1)의 주장대로라면 조티 싱의 어머니는 잘못을 저질렀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했기 때문이다. 


(2)의 경우도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하는 것에는 반대하겠지만, 인도나 (1)과 노선이 다르다. (2)는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되는 것 자체는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하면 생길 수도 있는 2차 가해의 위험을 우려한다. 예를 들어 성범죄 피해자의 얼굴이나 사는 지역 등이 노출될 경우 피해자는 물리적으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특히 인도 같은 경우 "여자 따위가 남자를 고소해"라며 집단 린치를 가할 위험이 있다. 또한, 신원이 노출되면 '말'들로 인해 정신적인 피해도 입을 수 있다. 이는 현재 한국의 성범죄 기사 댓글만 봐도 충분히 우려할만하다. 많은 이들이 성범죄 피해자를 두고 "꽃뱀 아니냐?", "마음이 있으니까 방까지 들어간 거 아니냐" 따위의 말로 상처를 입힌다. 신원이 공개되면 피해자는 그런 공격에 더욱 노출될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하는 게 어떤 이득이 있고, 그 이득이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했을 때의 피해보다 더욱 크다면 피해자의 신원을 공개하는 건 고려해볼만하다. 그런데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딱히 어떤 이익이 있지는 않기에 저울질은 시작도 못해보고 끝이난다. 


혹자는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하고 특정 성범죄 사건이 '유명한 성범죄'가 되어 대중의 호응을 받는다면 검경을 압박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성범죄가 유명해지기 위해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필요는 없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신원을 노출하는 옵션이 차선책으로 고려될 수는 있지만 그 마저도 윤리적으로 정당한 지는 논의가 되어야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필자가 예전에 썼던 글을 참고해보시라(아래 링크). 성범죄 피해를 다루는 뉴스에서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야할 이유는 딱히 없다. 



정리하자면, 어떤 이유로건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하는 일은 없어야한다. 하지만 이는 인도의 주류 남성들이나 <우행시>의 엄마가 생각하듯이 '피해자가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기 때문'은 아니다. 피해자가 성범죄 피해 이후에 온전히 삶을 살아갈 수 있게끔 사회적으로 도와야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성범죄 사실을 감추는 이유

실제로 발생했지만 신고되지 않은 성범죄는 상상 이상으로 많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스스로가 잘못해서 그렇게 됐다고 수치스럽다고 자조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아예 시작을 못하는 사람도 있고, 부모님에게 알리는 게 불효라 생각해서 침묵하는 자들도 있다. 


어떤 남성들은 묻는다. 성범죄가 발생하면 신고하면 되는데 왜 신고하지 않냐고. 여성들이 성범죄를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이 나라가 아직 성범죄에 보내는 시선이 그리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탓하고, 해당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당국을 비판하고, 성범죄자가 쉽게 재범을 못 저지르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지 못한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비판을 해도 모자를 판에 성범죄 피해를 입은 자를 탓하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꽃뱀? 실제로 꽃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래봐야 꽃뱀은 이 이슈에서 검은 백조다. 있을 순 있지만, 절대 다수를 차지않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성범죄 이슈에 있어서 적지 않은 이들이 "꽃뱀 아니냐"라며 피해자에게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 꽃뱀이라며 의심하는 게 아니더라도 온갖 종류의 모욕이 피해자에게 난무하는 것을 쉽지 않게 목도한다. 이런 한국적 상황에서 성범죄를 신고를 하는 건 여성들에게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다. 이런 일에서마저 용기가 필요한 사회는 비정상적인 사회다.


성범죄의 원인은 가해자이고, 피해자를 탓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그러니 피해를 받았다고 수치스러워할 이유도 없고, 피해자를 수치스러워할 이유도 없다. 이런 인식이 지배적이게 될 때 (신고되지 않은) 성범죄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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