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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an 29. 2017

<웨스트월드>: '인격을 구성하는 것은 심리적 상처다'

<웨스트월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팬으로서 말하건데, 아직 드라마를 안 보신 분들은 이 글을 피하시길 바랍니다. 보고 오세요. 글은 그때도 여기에 있을겁니다. 아, 한국에 수입된 걸로 보시지는 마세요. 제목에서부터 스포를 하고 앉았으니까.



미드 <웨스트월드>는 1973년에 개봉했던 마이클 클라이든 감독의 영화 <웨스트월드>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당시 기준으로도 해당 영화는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2016년의 미드에서 나오는 담론 역시 여전히 핫하다. 상상만으로 존재했던 인공지능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는 지금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가진 존재들을 인간은 어떻게 대해야하는가? 

인공지능을 가진 존재들은 살인하는 것은 정당한가? 

인공지능을 가진 이와 인간이 교제하고 사랑하는 것은 이상한가? 

인공지능은 인간과 다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웨스트월드>는 위와 같은 질문에 답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그저 여러 상황을 통해 질문을 던질 뿐이다. 영화의 역할은 답을 주는 것에 있지 않다. 질문을 던지고, 현상을 보여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고, <웨스트월드>는 한 화 한 화에 꽤나 많은 담론들을 담아 놓으면서 충실한 역할을 해냈다. (영화가 답을 줘선 안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 마시길) 


인공지능을 구성하는 코어: Maeve메이브

<웨스트월드> 1 시즌에는 여러 테마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 중 하나가 정신적 상처가 아닐까 싶다. 드라마에는 많은 인공지능들이 등장하는데-그들을 호스트라고 부른다-저마다 각자의 사연들이 있다. 재밌는 것은 그들에게 하나의 인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인공지능들은 한 세계관에서 살다가도, 제작자인 인간들에 의해 또다른 세계관으로 재배치가 되고는 하는데 그럴 때는 기억이 소거(=포맷)된 뒤, 새로운 기억이 심어지며 새로운 캐릭터로 거듭 난다. 무법자로부터 한 아이를 지키는 엄마였다가-혹은 그런 기억이 심어진 로봇이었다가 그 기억이 지워진 뒤, 한 술집을 운영하며 매춘을 하는 매춘부 역할을 하는 식이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난다. 컴퓨터를 포맷하더라도 하드에 데이터 찌거기가 남듯이, 로봇의 기억을 삭제했음에도 그 과거 기억의 잔상이 남아서 현재에 영향을 주게된 것이다. 매춘부 호스트에게는 딸에 관한 기억이 없지만 그녀는 한 때 자신이 기르던 딸의 존재를 어렴풋이 기억(?)하게 되고 정체성의 혼란을 가지게 된다. 


결국 매춘부로 시작한 그녀는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자신과 같은 존재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게된 뒤 웨스트월드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결국 웨스트월드 바깥으로 가는 기차에 탑승하게되지만, 한 모녀를 발견한 뒤, 딸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혀 결국 기차에서 몸을 뺀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그녀는 딸에 대한 기억을 삭제할 수 있을까? 그 답에 대해선 좀 더 이야기를 진행한 뒤에 털어보자.


인공지능을 구성하는 코어: Bernard 버나드


다시 한번 주의드리는데, 이 글에는 스포가 있으니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지금에라도 이 창을 끄시길 바란다. 버나드는 <Westworld> 초반부터 등장하는 캐릭터다. 인간으로 등장하는 관리자 캐릭터이지만 1시즌 후반에 그가 호스트라는 것이 밝혀진다. 버나드는 본인이 인간이라고 믿었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더 나아가 그는 아들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했는데 그 아들마저 실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호스트라는 것은 버나드에게 새로운 착안점이 되기도 했다. 인간이 아닌 호스트라면 기억을 지우는 게 가능하니까. 아들의 죽음,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소거할 수 있다면 더이상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버나드의 생각이었다. 호스트를 직접 관리하던 '인간'이었던 지라 그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는 포드 박사에게 본인의 기억을 제거해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요구는 충족될 수 없었다. 애초에 호스트-안드로이들은 정신적인 상처를 주춧돌로 세워졌기에 그것을 제거한다면 인격 전부가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디자인은 드라마 후반에 포드 박사에 의해 알려진다.


위에서 매춘부에 대한 질문을 드렸다. 매춘부는 딸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는, 그녀의 딸의 기억은 주춧돌이 아니어야한다. 매춘부 인격에는 애초에 딸에 대한 기억이 없었으니까. 애초에 기획에 없던 기억이 주춧돌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 주춧돌이라는 개념은 웨스트월드 설계자인 포드 박사만이 알고 있는 개념이기에 포맷-재설계 작업을 하는 피라미드 아랫단에 있는 직원들은 애초에 모르고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주춧돌은 포맷으로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많은 호스트들의 기억은 잔상처럼 되살아나고 점점 구체화되었다.


버나드와 달리 매춘부 호스트-메이브는 딸에 대한 기억을 제거할 수 없었고, 제거를 원하지도 않았다. 매춘부에겐 딸이 없었지만 딸은 그녀에게 여전히 존재하는 기억이었고, 그 소중한 딸의 기억을 제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상처와 자아

최근 이대역 앞에서 힘든 일을 겪은 동생을 만났다. 그 친구는 내게 말했다. 

"이걸 극복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냉담해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그 기억은 너한테 계속 남아있을 거고, 널 변하게 만들거다."라고 말했다. 있는 기억이 없는 기억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엄연히 존재하는 기억을 없는 척도 할 수도 없다. 어떤 기억-경험은 필연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나쁜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어떤 기억이건 한 자아를 변화시키는 주요 변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웨스트월드>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는 비록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도 이런 이치에 있어서는 예외일 수는 없다는 것이 아닐런지? 하물며 인간은. 니케챠다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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