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업 정도 되는 사이즈의 회사를 다니다가 지금은 대기업으로 이직한 친구가 이제는 밥을 사먹는 것에 있어선 그다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대기업에 이직하는 것에 성공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월급 받는 생활이 지속되고 통장에 쌓이는 돈이 좀 생기다보니 거리낌 없이 식사에 돈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친구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월급은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한국을 기준으로 두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친구는 계속해서 말한다. "마음이 가난하다."
"마음이 가난하다"라는 말을 하는 때는 주로 어떤 물건을 구매할지 말지 고민할 때다. 실제 용례를 보자면 "확 지르질 못하겠다. 마음이 가난해서." 소비에 실패가 허용된다 생각하지 않는 2~30대들에게 이런 증상은 자주 발견되는 것 같다. 어떻게든 가성비를 맞추려고 온갖 발악을 한다. 물건 하나를 구매할라치면 해외 직구를 하는 게 더 싼지를 알아보고, 아마존에 핫딜이 떴다 싶으면 그게 지금까지 나왔던 가격 중에 가장 낮은 가격인지를 살피고, 외장하드를 살라치면 그게 PMR인지 SMR인지를 따지고, 자전거를 하나 사려고 해도 중고를 사는 게 나을지 말지 고민한다. 고민이 길어지면 더 좋은 물건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마련이지만 그만큼 물건의 가격은 상승해서 고민은 계속 된다. 신품이 나왔을 때 여유가 있으면 그냥 지를 법도 한데 그러질 못한다. 마음이 가난해서다. 돈은 있는데 쓰질 못한다.
마음이 가난한 것은 집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삶이 안정적으로 변할 때는 '나만의 집'이란 게 생길 때다. 부모에 의지하지 않기에 완벽한 개인으로서의 독립이 이루어지고, 부모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서도, 집주인의 감정 따위에 의해 나의 거주 안정성이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집. <라라랜드>의 미국 백수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주할만한 자기 집들은 있지만 한국의 청춘들은 사정이 다르다. 샐러리맨의 봉급만 가지고 나만의 집을 구매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선대인이 집 가격이 거품이라고 외치건 말건 집 가격은 떨어질 줄을 모르고 내 앞엔 오직 오르막길만 있다는 듯 오르기만 한다. 정부에 기대할 수도 없다. 집 가격을 떨어뜨릴라치면 대부분의 (우리의 미래인) 하우스푸어들이 들고 일어날테니까. 집 구매까지의 기간을 어떻게든 단축하려면 절약하고 또 절약해야한다.
집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인가에 돈을 쓰는 건 미래를 포기하고 기분에 취해 돈을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계속해서 부모와 함께 살 수도 없는 노릇인데 뭔 배짱으로 돈을 쓰겠냐고. 그래서 지름을 할 때 흔히 생기는 여러 감정 중 하나가 죄책감이다. 이 죄책감을 예방하기 위해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퀄리티의 소비'만'을 하게 된다. 가장 완벽한 물건을, 가장 완벽한 가격에, 가장 완벽한 순간에 구매하려고 하는 것. 완벽함이라는 이상에 다다르는 것이 워낙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소비는 뒤로 미뤄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완벽한 소비의 조건을 충족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돈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냥 그렇게 된다. 마음이 가난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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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 박현우
헬조선 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