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이었다. 민소매를 입은 20대 초중반되어보이는 여성이 앞에 섰을 때 나는 친구들과 지하철 문 앞 서있었다. 이쁜 얼굴에 잘 빗질된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민소매의 그녀는 좌석 앞에 섰고, 왼쪽 팔을 들어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겨털이 보였다. 면도기의 손길을 받아본 적이 없어보이는 길의의 겨털.
한국에서 민소매를 입은 여성이 겨드랑이 제모를 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설사 제모를 했다하더라도 지하철에서 대놓고 겨드랑이를 드러내는 행동을 나는 원체 보질 못했다. 가려져있는 부위이고 은밀한 부위로 여겨지기도 하니 그럴 것이다. 제모를 안한 겨드랑이를 드러내는 것이나, 제모를 한 겨드랑이를 드러내는 것이나 한국에선 일종의 도전이다. 그런데 중국 지하철에서 잠깐 같은 공간을 공유했던 그녀는 딱히 어떤 문화에 도전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진 않았다. 민소매를 입은 것이나, 겨털을 밀지 않은 것이나 그저 선호에 따라 그렇게 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갈 시점에 그 판단은 확신에 이르렀다.
그녀가 어떤 문화에 도전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 않았다는 나의 판단은 편견을 근거로 한다. 사회 편견에 저항하는 자들은 흔히 외향적으로 그걸 표시한다. 머리 모양이나 색을 평범(?)하지 않게 한다던가, 몸에 문신을 새긴다던가, 손목에 팔찌를 이것저것 걸어놓는다던가 하는 식이다. 그런데 그녀의 외향에는 딱히 저항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앞서 말했듯 이건 편견이고, 예외도 많다. 가령, 우산 혁명을 주도한 조슈아 웡은 외견상으로만 보면 너무도 평범하니까.
알고보면 그녀가 조슈아 웡처럼 집회를 주도하고 진행하는 조직의 핵심 멤버일 수도 있고 여성 인권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은 사람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그건 짧다면 5초 정도 그녀를 본 내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그런 투사 스타일의 인간이었다면 그녀의 겨털은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을 거다. 하지만 겨털을 제외한 그녀의 외향에서 보이는 어떤 종류의 보편성은 중국이란 사회에서의 겨털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게끔 했다. 그 겨털도 일종의 보편적인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중국을 돌아다니다보니 그 겨털이 지하철에서 수용되는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이란 나라의 사람들은 원체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즉,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제멋대로 하고 살았고, 누가 제멋대로 산다고 남의 행동에 고나리질을 하지도 않았다. 한국이나 일본은 반대다. 남의 눈치는 있는대로 다 보고, 누가 제멋대로 행동하면 집단의 힘으로 찍어주른다.
여행 중에 우리는 기인들을 자주 만났다. 범상치 않은 행동을 하는 이들을 우리는 "기인"이라 불렀는데, 한국에서는 본 적도 없는 행동을 하는 기인들을 자주 봤다. 위 사진에서 한 남자는 어딘가에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저기가 어디냐면,
만리장성이다. 떨어지면 그 즉시 즉사하는 곳이다. 위험하지 않다하더라도 문화재 위에 저렇게 올라가있는 거니까 한국에서는 그다지 용납이 될 것 같지 않는 행동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전혀 저 사람에게 관여하지 않았다. 또 한번은 초록빛을 띈-깨끗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하천(?)에서 한 형체가 보였던 적도 있다. 알고보니 사람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청계천같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계속 보게되는 물 위에서 그는 몸을 편하게 눕히고 명상(?)을 했다.
중국 특유의 눈치 안보는 문화의 근거들은 여행을 지속하면 할 수록 축적되었다. 그 분의 취향이 보편성을 띄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중국 사회가 고나리질을 안하는 사회이기에 그가 겨털을 자기 스타일대로 관리했던 게 아닌가 싶다. 기르거나 말거나 남의 눈치를 볼 일도 없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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