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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un 05. 2017

신촌의 여행자라는 카페를 자주 간다.


카페라는 공간은 내게 특별하다. 글을 쓸 때면 나는 항상 카페를 가고,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은 뒤에도 술을 마시지 않는 나를 배려해주는 친구와 카페를 간다. 요즘에는 집이란 공간이 예전만큼 편하지 않기에 카페는 내게 있어 도피의 공간도 되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요즘의 공간은 신촌의 여행자라는 카페. 


성수동에 살 때는 김종욱 커피를 자주 가곤했었는데, 지금은 두 달에 한번 갈까말까 한다. 나는 여전히 그 곳의 커피를 세계 최고로 꼽는다.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중국에서 먹은 커피들보다도 나는 김종욱 커피의 커피를 높이 친다. 하지만 갈 때마다 사장님이 나의 연애전선을 묻는 것이 나의 상처를 알게모르게 긁었고 지금 그 공간은 내게 더이상 편치가 않다. 카페라는 공간은 커피의 맛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요즘 내가 자주가는 카페 3개가 있다. 독서 모임을 할 때마다 방문하는 광화문 코리아나 호텔에 있는 폴 바셋이 하나고, 글을 쓸 때마다 혹은 집에 오랫동안 있으면 생기는 어떤 매너리즘이 내 영혼을 더럽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때마다 방문하는 애오개역 앞 스타벅스가 하나고, 나머지 하나는 신촌역에서 걸어서 3~5분 정도 걸리는 여행자라는 카페다. 신촌의 여행자 카페를 처음 알게된 건 헬조선 늬우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 때문인데, 한 구독자분이 응원한다면서 커피를 사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방문했다.


당시에는 구독자분이 메세지도 주시고, 하루 일과 중에 카페를 방문하는 타임은 항상 있기에 그 시간에 여행자를 방문했다. 계속 방문해서 커피 얻어먹기가 죄송스러워서 딱 한번만 방문했고, 그 이후에는 딱히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요즘엔 거의 항상 여행자만 간다. 


내가 꾸준히 방문했던 곳은 애오개역 스타벅스였는데 워낙 자주 방문하다보니까 슬슬 스타벅스에서마저도 나태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카페를 가는 이유는 새로운 공간이 주는 어떤 각성 효과가 때문인데 스타벅스는 집처럼 편해졌고, 공간이 주는 특수한 기능(?)도 희미해졌다. 다른 공간을 찾아야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곳이 카페 여행자.


카페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커피의 맛도 아니고, 카페에서 들려오는 음악도 아니다. 내게 있어 커피란 건 뭐랄까, 글을 쓰다가 순간을 환기할 때 마시는 무엇일 뿐이다. 컵 안에 액체가 담겨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건 그다지 상관이 없다. 커피를 마시면 각성 효과가 더 오래 지속될 거란 믿음이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관성처럼 주문하는 것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일 뿐이다. 카페의 음악은 어차피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으니 관계가 없다.


그래서 따지는 것이 콘센트의 유무고, 카페의 사이즈다. 콘센트가 없다면 내가 글을 쓸 때 쓰는 장비-노트북이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고, 글을 한참 신나게 쓰고 있을 때 맥이 끊길 수가 있다. 게다가 글을 쓰다가 도중에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휴식이라도 할라치면 콘센트는 필수요소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거나 할 목적으로 카페를 찾아나설 땐 커피빈은 죽어도 가지 않는다. 거기엔 콘센트가 없기 때문이다. 


카페의 사이즈 역시 중요하다. 카페가 너무 작으면 내가 치는 키보드의 소리가 카페 전체로 퍼질 수도 있고, 또 카페가 너무 작아서 테이블의 수도 적은 카페에서는 장기간 자리를 잡기가 미안하다. 그런 미안한 감정은 글을 쓸 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지역 소형 카페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미안해서 더 안가게되는. 


내가 카페에 장기간 자리를 잡아도 스타벅스는 망하지 않을 것이고, 커피를 내려주는 저 직원들의 생계에 위협이 되지도 않을 것이고, 이 매장의 매출과 저 바리스타들의 생계 역시 그다지 큰 관계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일단 자리를 잡으면 눈치 보지 않고 온전히 작업에 집중할 수가 있다.


카페 여행자는 앞서 언급한 조건들을 충족한다. 콘센트가 있고, 사이즈가 크다. 이와는 별개로 카페가 신촌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시험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20대들이 많다. 게다가 테이블마다 스탠드가 있어서 딱 공부하는 모양새가 난다. 거기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취해 각성하게 된다. 또, 1500원이면 아메리카노 리필이 되고 완전 맛있는 햄치즈 베이글도 있다. 카페에 많은 거 안 바란다. 이거면 된다. 이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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