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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Nov 18. 2017

<빛나는>: 맥락 없는 사랑, 개연성 없는 전개


#브런치무비패스 #감사

#스포일러_주의


영화가 사랑을 다룰 때 가장 신경써야하는 부분은 영화 속 인물들의 사랑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다.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 저 사람이 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를 관객이 납득하지 못하면 모든 스토리는 붕괴된다. 그 사랑에 기초해 모든 스토리가 구성되기 때문이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빛나는>은 이 부분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한 때 잘나가던 사진작가 나카모리(나가세 마사토시 연기)는 점점 시력을 잃어간다. 이게 감독이 설명하는 그의 결핍이다. 사진작가가 눈을 잃어간다는 것. 영화가 워낙 엉망진창이니 이 뻔하디 뻔한 설정을 굳이 물고 넘어지지는 않겠다. 


그의 상대역인 여성 미사코(미사키 아야메 연기)에게도 결핍이 있긴한데 그 종류가 다르다. 일단 미사코에겐 아빠가 없다. 아빠가 죽었는지, 어딘가로 떠났는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그리고 미사코의 엄마는 그런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성인데, 치매가 걸려있다. <봄날은 간다>의 그 할머니 같은 캐릭터다. 한 남자를 잊지 못해서 그 남자가 올 법한 장소를 들락날락하는. 엄마 캐릭터에 대해선 뒤에서 더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최초에 미사코가 나카모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사진에 있다. 미사코는 아빠와 함께 석양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있는데, 나카모리의 사진에서도 동일한 배경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꺼림칙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아빠랑 같이 찍은 사진의 배경을 그의 사진에서 발견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저를 그곳에 데려다주세요."라고 하고 거기에서 또 키스를 한다는 건 그에게서 '아빠'를 찾는다는 너무도 직설적인 표현이니까. 


설령 몇몇 심리학자들이 "여성은 연인인 남성에게서 아버지를 찾는다."라 하고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그 명제를 진리라 믿는다고 해도, 이것만으로는 미사코가 나카모리를 사랑하게된다는 설정은 관객을 설득하지 못한다. 아빠의 결핍 때문에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면 왜 하필 그게 나카모리인지를 설명해줘야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 그런 설명은 전혀 없다. 



감독이 이 여성의 사랑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도입한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는 2명 뿐인데, 그 중 한 명에게는 임자가 있고, 완전 노인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은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중년 나카모리다. 결과적으로 미사가 나카모리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세계관을 만들어놓은 거다. 임자있는 노인과 NTR을 하는 것보다는 시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고 한 때 잘나갔으며 핸섬한 중년과 러브러브하는 게 더 그럴듯해보이는 것은 사실이니. 


이런 걸 전문용어로 더블바인드라고 한다. 다른 옵션도 있지만, 옵션 두 개만을 제공하며 그 중에 하나만 선택하게끔 만드는 언어 기술. 가령 상대는 영화를 볼 생각도 없는데, "<범죄도시>볼까? <장산범>볼까?"라 제안하면 상대는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는 압박에 직면하게 된다. 영화는 이런 트릭을 쓰기에 좋은 매체 중 하나다. 극장에 있는 이상 감독이 떠드는 것을 꼼짝없이 지켜만봐야하는 입장이니.


멀쩡한 직장을 가지고 있고 장애도 없고 나이도 10년은 넘게 젊어보이는 아름다운 여성이 눈이 보이지 않으며 나이도 한 참 많은 남성을 사랑하는 것을 설득력있게 보이기 위해선 더 그럴듯한 설정이 필요하다. 여기에 '아빠를 그리워 하는 여성'이라는 설정을 들이대는 건 뻔뻔한 거고, 솔직히 설득도 되지 않는다. 그 남성보다 훨씬 나은 옵션이 많을 여성이다. 왜 그 남성이어야하나?


미사코의 엄마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이 설정은 말이 안되는 것을 넘어 혐오스러운 종류의 것이 된다. 미사코의 엄마는 치매가 걸려서도 떠나간 아빠를 찾는, 한 남자만을 생각하는 매력없는 여성이다. 혐오스러운 부분은 그 엄마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미사코가 이어받기 때문이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나카모리에 투영해 그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여성 캐릭터들은 다 이런 식이다. 한 남자를 잊지 못해 쩔쩔매는 여성. 


다른 설정도 없지는 않다. 나카모리는 시력을 잃고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카메라-그의 심장을 산 속에서 집어던지는데, 이를 지켜보던 미사코는 "대체 왜?"라고 말하며 1초 뒤에 그에게 키스를 퍼붓는다. 정리하자면 이런 거다. 아빠의 그리움을 해소시켜주는 그 남자가 슬픔에 빠져있다는 이유로 여자는 사랑에 빠져버린다. 이런 설정이 또 어디에 있었냐면은 한쿡 영화 <리얼>에 있었다. 남자가 힘들어한다는 이유로 사랑에 빠져버리는 여성 캐릭터. 주체성도 없고, 매력도 없고, 욕망도 없는 수동적인 존재로서의 여성. 


영화의 코어에 해당하는 사랑에 있어 이정도로 형편없는 설명을 들이대는 감독은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도 불성실한 태도를 보인다. 한국 드라마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우연이 이 영화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나카모리가 놀이터를 가는데 그곳에 우연히 미사코가 있고, 나카모리가 길거리에 자빠진 뒤 화장실을 갔다오는데 그걸 또 우연히 거기에 있던 미사코가 보고 불쌍히 여긴다던가하는 식이다. 하긴, 이정도로 자주 마주치면 운메가 아닐까 생각하며 사랑에 빠질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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