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존스>, <퍼니셔>, <악마를 보았다>, <친절한 금자씨>, <왕좌의 게임>, <굿와이프>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섹스장면, 배드신이라고도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방법은 중요하다. 동성애 영화가 아닌 이상 그 안에는 남녀가 반드시 참여하기 마련이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그려지느냐에 따라 캐릭터가 구축되기도 하고 두 인물간의 관계 정립이 이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성 상위 체위로 두 인물이 섹스할 때 여성은 섹스를 주도하지만, 후배위에서 여성은 그저 남성에 의해 지배당하는 상태다. 재밌는 것 중 하나는 넷플릭스 오리지날 드라마에서 후배위 장면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속 주인공급 여성들은 남성 위에 올라타서 섹스를 주도한다.
넷플릭스는 두 인물이 섹스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몇가지 원칙을 지킨다. 일단, 여성의 가슴 노출은 최소화한다. 여성 가슴 노출이 스토리에 전혀 기여하는 바가 없고, 영화 속 여성의 노출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얼리즘을 말하며 여성의 가슴 노출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하는 한국 감독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여성 가슴을 노출할 때만, 정말 오로지 그때만 리얼리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하겠다.
둘째, 넷플릭스 속 섹스는 두 인물의 관계 진전을 돕는다. <제시카 존스>에서 제시카 존스는 루크 케이지와 섹스를 하는데, 이들의 섹스는 그들이 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섹스를 하며 그들은 서로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더욱 끈끈해진다. 둘이 그저 술만 마셨다면 그들의 끈끈한 유대감은 설득력을 잃었을 것이다.
<퍼니셔>에서 마다니와 루소의 섹스도 두 인물의 관계를 더 강화해주기 위해 쓰인다. 마다니가 의지하는 인물은 이 드라마에서 둘 뿐이다. 샘과 루소. 그런데 샘은 용의자에게 살해당하게되고, 마다니가 의지할 사람은 이제 루소만 남게 된다. 하지만 정작 샘을 죽인 것은 루소. 용의자가 루소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마다니가 더욱 충격을 받으려면 루소에게 더욱 의지할만한 장치를 만들어놔야한다. 섹스는 그것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다.
셋째, 여성들은 섹스에 적극적이며, 또 주도한다. <제시카 존스>의 제시카는 먼저 루크 케이지에게 떡밥을 던지고, 루크 케이지는 떡밥을 문다. 제시카 존스가 이 드라마에서 성범죄 피해자로 상징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제시카 존스의 이 적극성은 더욱 의미하는 바가 커진다. 더이상 가해자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니까. 아래는 섹스 후 마실은 나왔는데 또 루크에게 섹스를 제안하는 제시카다.
그리고 그는 루크 케이지의 위에 올라타서 섹스를 주도한다.
물론 여성 상위 체위만으로 섹스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상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로, 후배위는 하지 않는다. 후배위 하에서 남녀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남성은 여성의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몸을 움직이게되고, 여성은 거기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는 여성 캐릭터의 수동성을 강화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제시카는 남자, 심지어 루크 케이지보다도 힘이 쎈 사립탐정으로 등장한다. 이런 그가 후배위로 섹스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의 <Girlboss>에서는 여주인공은 남자에게 대놓고 "도기스타일(후배위)은 싫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실제 현실에서 패션 스타트업을 하는 꽤나 성공적인 여성이다. 사업을 벌여 성공할 정도로 주체적인 여성은 그의 어울리는 방식대로 섹스를 해야한다. 그래서 그는 남자 위에 올라탄다. 일관성있는 캐릭터를 보여주려한다면 그가 남성 위에 올라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한편, 후배위는 마초적인 남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쓰이고는 한다. 아래의 한 장면은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이고, 나머지 하나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다.
<악마를 보았다>의 아저씨는 갑자기 여자에게 가서 팬티를 벗긴 뒤 무작정 섹스, 아니 강간을 하는데, 이 강간이 강간으로 인식되지 않는 이유는 저 여자도 주인공과 비슷한 종류의 꼴통이며 강간범의 강간을 강간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쨋든, 후배위로 시작되는 섹스, 아니 강간에서 여성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머리끄댕이를 붙잡혀도 저 강간당하는 캐릭터는 주인공을 좋아라한다. 김지운 감독이 캐릭터를 저따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또다른 여성들이라고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그냥 차에서 강간 살인 당하거나, 폭행당하거나 강간당할 뻔하거나 하는 식이다.
<친절한 금자씨>의 남성은 밥을 먹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부인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갑자기 속옷을 벗기고 섹스를 한다. 부인은 그 와중에 흔들리는 밥상에서 그릇이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섹스를 즐길 여유가 그에게는 전혀 없다. 후배위에서 그는 앞치마를 두른 메이드이자 성노리개로 전락한다.
많은 논란을 낳았던 <왕좌의 게임>에서 람제이 볼튼이 산사 스타크를 강간할 때도 역시나 후배위다. 여성의 의향과 무관한 섹스 장면을 보여줄 때 후배위라는 체위가 선택되는 이유는 여성의 의향과 무관하게 섹스나 강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체위이기 때문이다.
다시 넷플릭스로 돌아가보자. 여성이 섹스에 적극적이라 했는데, 이는 현실 속에서 남녀간의 힘의 균형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남성이 섹스를 제안하면 거기에는 어떤 힘이 개입될 수도 있고, 남성 캐릭터가 그저 섹스만 바라는 속물 캐릭터로 여겨질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여성과의 섹스를 바라는 남성을 상상할 때 그러잖는가. 그런데 성별만 바꾸면 그런 느낌이 싹 싸라진다. 여성이 적극적인 제안을 함으로서 두 인물은 진정한 합의를 이루고 섹스를 하게 되는 것이다. 캐릭터가 흔히 말하는 걸크러쉬 캐릭터가 형성되는 것은 덤.
넷플릭스 드라마는 아니지만 <굿와이프>의 알리샤 플로릭은 함께살지 않는 남편을 오랜만에 만난 뒤 섹스를 제안한다. 피터 플로릭이 망설이며 어물쩡거리자 알리샤는 덧붙인다. "걱정마, 내가 하자고 하는거니가. 내일 잘 들어갔냐며 나한테 전화할 필요없어" 이 제안을 반대로 피터가 했다면 느낌이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미국의 힙한 기업들은 PC 이슈에 엄청나게 예민하게 대응한다. 넷플릭스의 브랜딩에 상당한 도움을 준 <하우스 오브 카드>를 케빈 스페이시의 성폭행 고백만으로 제작 중단하는 것만봐도 이는 명확해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날 속 섹스 장면에서 윤리적으로 문제 삼을만한 부분을 찾기 힘든 이유는 넷플릭스가 그만큼 콘텐츠 관리를 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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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지금 이 글에서 다루는 체위들은 현실 레벨에서의 체위가 아니라 영화 속 체위다. 그러니까 부디 후배위를 즐기는 남성이나 여성들은 내게 분노하지말라. 이 글은 영상 연출에 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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