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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Mar 10. 2016

산사 스타크가 강간당하는 장면이 시청자를 분노케한 이유


이 글은 2015년 6월 10일에 네이버 블로그에다 쓴 글을 브런치로 옮긴 것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시즌5 6화: 산사 스타크는 람제이 볼튼에게 강간당한다

이 장면이 나온 이후로 미국에선 <왕좌의 게임>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다. 왜 그들은 분노했을까? 산사가 지금까지 당했던 비극들에도 잠자코있던, 혹은 참고 있던 시청자들은 이번에 드디어 폭발했다. 더이상 <왕좌의 게임>을 보지 않겠다고 하고, 미국 민주당 소속이면서 상원의원인 클레어 맥카스킬은 자신의 트위터에 더이상 <왕좌의 게임>을 보지 않겠다고 글을 남겼다. 이 장면이 왜 시청자들의 분노를 사게 됐는 지 살펴보도록 하자. 



항상 선택권이 없었던 산사 스타크

산사 스타크는 지금까지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새디스트이자 사이코패스인 조프리 바라테온과 결혼을 했으며, 자신의 아버지인 에다드 스타크는 자신의 조언을 따르다 목숨을 잃었는데 심지어 그 광경을 바로 눈 앞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조프리는 산사에게 에다드 스타크의 목이 꽂아져있는 창 끝을 보라고 시킨다. 하지만 산사에게 거부권은 없다. 항상 그래왔다. 산사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왕의 명령에 따라 산사를 학대하는 메리 트란트

아직 끝이 아니다. 산사는 예비 왕비이지만, 왕이 워낙 막장인 탓에 궁 내에서도 학대를 당했다. 조프리는 킹스가드를 시켜 그녀를 손찌검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킹스가드를 시켜 옷을 찢기기도 한다. 옷을 찢는 과정에서 킹스핸드(수관)이 되는 조프리의 삼촌인 티리온 라니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알몸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참고로 조프리의 명령에 따라 산사를 괴롭히는 킹스가드의 이름은 메리 트란트다. 이 메리 트란트는 산사 스타크의 동생인 아리아 스타크의 암살 리스트(암살 버킷 리스트)에 속해있는데, 그 이유는 메리 트란트가 아리아의 춤선생인 시리오 포렐을 죽였기 때문이다. 산사에 대한 복수 때문에 메린 트란트가 암살 리스트에 속해있는 것은 아니니 혼동하지 말길 바란다. 시즌5 9화 시기상으로 메리 트란트는 브라보스에 있으며, 아리아는 현재 그의 위치를 알고 있다. 10화에서 죽게될지도 모르겠다.


글이 잠시 샜다. 다시 산사 이야기로 돌아가자. 몇 화였는 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먹을 것이 없어 분노한 백성들이 작은 규모의 민란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 때 산사는 백성들에게 붙잡히고 강간을 당할 뻔한다. 강간 미수. 하지만 하운드에 의해 다행이도 구출된다. 이 장면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장면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산사는 조프리가 마가에리와 결혼하자 약혼자가 없게 된다. 하지만 라니스터에게 산사 스타크는 '산사'가 아니라 '스타크'다. 그리고 스타크는 북부에서 꽤나 상징적인 이름이다. 북부의 기수 가문들은 스타크 가문에 대한 충성심이 어마무시하기 때문이다. 스타크를 얻으면 북부를 얻을 수 있으리라. 그래서 티윈 라니스터는 자신의 아들인 티리온 라니스터을 산사와 결혼시킨다. 티리온은 거부하지만, 티윈의 말은 절대적이다. 결국 결혼한다. 


산사 역시 티리온과 결혼하기 싫었을 것이다. 첫째로 티리온은 난쟁이이며, 둘째로 라니스터 가문은 스타크 가문을 몰살한 그 가문이다. 그런데 라니스터와 또 결혼하라고? 하지만 산사 스타크에게 선택권은 없다. 이 포스팅에 이 문장은 계속 등장하게 될 것이다. 산사 스타크에게 선택권은 없다. 리틀핑거에 의해 조프리가 암살 당한 뒤에 산사 스타크는 아린 가문으로 도망치고, 결국에는 볼튼가문과 결혼하게 된다. 그 결혼식이 시즌 5화 6화의 그 결혼식이다. 에피소드의 이름은 <Unbowed, Unbent, Unbroken>. 해석하자면, <굽히지 않는, 굽지 않는, 부서지지 않는>. 강간을 당해도 부서지지 않는 산사 스타크의 멘탈을 설명하고자하는걸까? 



산사의 비극적인 삶이 개선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해준 시즌4였다. 갑자기 위풍당당해진 산사를 보여주면서 "이제는 다를거얌"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시청자들은 그런 기대를 품고 있었건만, 이번에도 산사에게 비극이 닥쳤다. 시청자들이 빡칠만한 이유, 분명히 있다. 산사 스타크에게 왜이리 가혹한가? 하지만 제작진에 따르면 산사 스타크의 비극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다. 


게임 <Tomb Raider>(2013)의 강간미수 장면

<툼레이더>라는 게임이 있다. 이름 그대로 무덤(tomb)에서 돌아다니는 사람(raider)에 대한 게임이다. 게임 초반에 주인공인 라라 크로프트는 그저 평범한 유적 학자다. 딱히 싸움을 해본 경험도 없고, 무술을 배우지도 않았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영화 <툼레이더>와는 다른 세계관을 공유하니 혼동하지 말길 바란다. 만약 세계관을 공유한다쳐도 모순은 일어나지 않는다. 졸리가 연기하는 라라 크로프트는 이미 온갖 수행을 걸친 인물이라고 여기면 되니까. 



이 게임에서 라라 크로프트 일행이 타고 있는 배는 태풍(?)을 만나고 결국 부서진다. 라라 크로프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정체불명의 섬에 있었다. 그런데 무인도인 줄 알았던 그 섬에서 사람들을 발견한다. 광신도들이다. 그 광신도가 라라 크로프트를 잡고 강간하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라라 크로프트는 위기를 벗어나고 그 남자를 죽이게 된다. 그녀가 처음으로 살인을 하는 것. 


그 장면에 대해 게임 제작사인 Crystal Dynamics 의 책임프로듀서 Ron Rosenberg가 한 발언이 문제가 된다. 아래는 geek한 것을 주로 다루는 웹사이트인 Kotaku 간의 인터뷰 중 일부다. 


RON: "And then what happens is her best friend gets kidnapped, she gets taken prisoner by scavengers on the island. They try to rape her, and-"

KOTAKU: "They try to rape her?"

RON: "She's literally turned into a cornered animal. And that's a huge step in her evolution: she's either forced to fight back or die and that's what we're showing today."
론: "그리고 그녀(라라)의 절친이 납치당하고, 라라 역시 야만인들에게 감금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녀를 강간하려하죠."

코타쿠: "그 사람들이 라라를 강간하려한다구요?"

론: "그녀는 말 그대로 궁지에 몰린 동물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 그녀는 커다란 발전을 하게 되죠: 그녀는 맞서싸우거나 죽어야합니다. 그게 오늘 우리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 자체도 문제지만, 그 문제를 더 크게 만들건 론 로젠버그의 발언이었다. 강간을 극복하는 것을 통해서 여성이 발전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니까. 이는 강간을 긍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강간당했어도 결과적으로 잘된거면 좋은 거 아님?' 같은 느낌이랄까. 이 발언이 문제가 되자 결국 제작사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로젠버그의 발언이 없다손 쳐도 여전히 이 강간미수 장면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라라 크로프트가 꼭 강간을 당할 위기에서 탈출해야만하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녀의 친구가 죽을 위기에 쳐해서 그녀가 결단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강간'이라는 소스를 택했을까? 딱히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는 없는 것 같다. 강간은 예민한 문제이며, 따라서 콘텐츠에 그것을 삽입할 때는 깊은 고민을 해야한다. 그런데 <툼레이더>의 강간미수 장면은 그런 고민을 거치지 않은 느낌이다. 해당 강간미수는 얼마든지 다른 소재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즉,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는 않다. 각성을 위해 강간당할 위험에 노출될 필요는 전혀 없다.



<왕좌의 게임>: 산사 스타크의 강간 장면은 어떻게 연출되었나?

다시 산사 이야기로 돌아오자. 산사 스타크의 강간 장면을 평가하기에 앞서서 이 장면이 어떻게 연출되었는 지를 살펴보는 게 필요할 듯 싶다. 이 장면은 5시즌 6화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그리고 해당 장면에 출연하는 인물은 산사 스타크와 람제이 볼튼 그리고 테온 그레이조이다. 산사 스타크와 테온 그레이조이는 친남매나 다름없는 사이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기 떄문이다. 그리고 그 둘의 관계에 대해서 람제이 볼튼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람제이 볼튼은 테온 그레이조이가 자신의 말을 거역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산사 스타크 역시 자신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테온의 얼굴만 보여주는 카메라

첫날밤을 보내려고 하는 순간, 테온 그레이조이는 자리를 비켜주려고 한다. 하지만 람제이 볼튼은 나가지 못하게 한다. 곧이어 람제이는 거칠게 산사의 옷을 찢고, 그녀를 침대에 엎드리게 한 뒤 강간을 한다. 이 장면에서 계속 등장하는 얼굴은 테온 그레이조이의 얼굴이다. 정작 강간 당하는 산사의 얼굴은 나오지 않고, 테온의 얼굴만 나오는 게다. 산사는 그저 비명소리만 낼 뿐이다.


산사 스타크가 강간을 당하는 데 정작 산사 스타크는 보이질 않는다

이 장면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산사의 비극적인 삶일까? 내가 보기엔 아니다. 이 장면은 산사의 비극적인 삶보다는 테온의 감정과 람제이의 또라이 같은 성격에 좀더 방점이 찍혀있다. 이는 카메라가 보여주고 있는 얼굴을 통해 알 수 있다. 사실상 친동생인 산사가 강간당하는 걸 보면서 느끼는 테온의 감정을 보여주고, 동시에 람제이의 잔인함을 보여준다. 여기에 산사는 없다. 산사는 그저 이 두 남자간의 감정과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소비된다, 소모된다.


<툼레이더>의 강간미수 장면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장면에서 '강간'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도 스토리상 아무 문제도 안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왕좌의 게임>의 강간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테온이 느끼는 감정과 람제이의 잔인한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도입될 수 있는 장치들은 많다. 굳이 한 여자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넣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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