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즘 영화: 악마에 먹힌 소녀들을 구하는 남성들
엑소시즘 영화의 전통이 하나 있다. 악마가 대부분 어린 여성에게 들어간다는 것. <엑소시스트>(1973)때부터 이어져오는 전통이다. 어린 여성이 악마에 사로잡히면 이 업계에서 잔뼈 굵은 남성 엑소시스트들이 그녀를 악마에게서 구해낸다. 이 전통은 <검은 사제들>(2015)과 <곡성>(2016)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검은 사제들>에서는 고등학생이 악마에게 먹히고, 남성 둘에게 엑소시즘의 대상이 된다.
<곡성>에서는 그보다 어린 여아가 악마에게 먹히고 엑소시즘의 대상이 된다. <곡성>은 엑소시즘 영화에 전통적으로 등장하는 가톨릭식 엑소시즘을 하기보다는 한국식 엑소시즘으로 굿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무당 역시 남성이다. '그 무당은 사실 구해주려는 게 아니잖아!'라고 하는 분들이 있을 수는 있는데, 이 글은 <곡성>을 깊게 다룰 생각이 없으니 너무 멀리가지는 말자. 표면적으로는 구원해주려는 거였다고!
참고로, 그리고 당연하게도 여성 엑소시스트가 등장하는 영화는 없다. 애초에 엑소시즘을 수행하는 건 신부들인데 여성은 신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례 받은 남자만이 (거룩한) 서품을 유효하게 받는다"(가톨릭교회법 제1024조).
신부를 남성만 하는 이유는 예수의 12사도가 모두 남성으로 구성되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중에 여성을 신부로 발탁하는 것은 예수에게 빅엿을 먹이는 것이라는 내부 의견이 강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여성은 신부로 발탁하지 않는다고 한다. 몇 백년도 아니고 몇 천년을 이어져온 전통을 깨는 일이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공회, 북유럽 루터 교회, 구 가톨릭 교회에서는 여자도 사제가 될 수 있기는 하다만은, 얘네도 로마 가톨릭처럼 엑소시즘을 하는 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설령 얘네가 여성 신부를 발탁해 여성 신부에게 엑소시스트의 역할을 부여한다고 해도, 전통적인 엑소시즘 영화에서 여성 신부가 등장한 경우가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굳건하다.
차라리 <검은 사제들>에서 여성 무당이 칼춤을 추면서 엑소시즘을 하기는 한다. 그런데 그나마 거기에서도 칼춤 추는 무당을 포함해 플레이어들을 뒤에서 지휘하는 건 한 남성이다. <곡성>속에서도 무당이 엑소시즘을 할 때 여성들이 플레이어로서 등장하기는 하는데, 여전히 굿을 전두지휘하는 건 일광(황정민 연기)이다.
엑소시즘 영화에서 왜 악마는 여성에게 들어가는가?
어린 여성이 악마에게 대상이 되는 이유를 영화에서 설명하기는 한다. 어리고 여성이라는 피해자의 특징은 '약함'을 설명하는 설득력있는 재료로 쓰인다. 여성이 남성보다 육체적, 심리적으로 약하다는 흔한 편견을 엑소시즘 영화에서도 여전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흥미롭다.
악마가 워낙에 빻아서, 아니, 빻았기 때문에 악마인 악마가 '여자는 남자보다 약하다능!'하면서 여자 몸에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고, 악마가 워낙에 변태라 여자 몸에만 들어가는 것이라는 설명도 가능하기는 하다. 이 동네에서는 신부들도 다 남성이지만, 악마들도 다 남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이 남성보다 여린가? 그건 모르겠다. 다만, 여성을 여리게 만드는 사회 구조는 분명히 존재한다. '남자는 울면 안돼'라는 말은 있지만 '여자는 울면 안돼'라는 말은 없다. 근까 맨박스는 남자를 끊임없이 강하게 만들고, 우먼박스는 여성들을 여리게 만든다. 이 박스들의 힘이 강력해서 여성들이 실제로 남성보다 여린 존재가 되었다면 '여린 여성에게 악마가 들어가는 것'도 아주 설명이 안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건 현실의 엑소시즘이 아니라 영화 속 엑소시즘이잖나. 영화의 모든 것들은 결국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어야한다. 그런데 여성이 남성보다 여리다는 명제는 영화상에서 그다지 설득력있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냥 '여성이 더 여리다'라는 흔히 잘 받아들여지는 편견을 툭 던져두고 감독은 뒤로 빠진다. 성의가 없는거지. 당연하다 생각하는거고.
악마를 잡는 궂은 일은 여윽시 남성만이 할 수 있어서?
악마 잡는 일을 '궃은 일'이라 생각해서 남성들에게만 부여하는걸까? 이런 식의 논의 전개는 엑소시즘 영화들을 비판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엑소시즘 영화에만 적합한 것은 아니다. 과거 영화들이나 최근 나오는 영화들에 있어서 궂은 일은 굳이 악마를 잡는 일이 아니라도 남성들이 담당한다. 굳이 엑소시즘 영화라서 남성이 이 령광스러운 작업에 적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충무로 영화판으로 오면 이런 경향성은 더욱 강해진다. 충무로에선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자체를 찾기가 힘드니까.
영화판, 혹은 이 시대의 경향성을 영화감독-영화도 그대로 물려받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엑소시즘 영화는 아니지만)<고스트 버스터즈>(1984)에서도 진공청소기(?)로 귀신들을 잡는 일에서는 남자들이 앞장 섰다. 하지만 이런 경향성의 반기를 드는 작품들은 차츰 늘어나고 있다. 또다른 <고스트 버스터즈>(2016)가 작년에 개봉했다. 2016년의 고스트 버스터즈들은 여성들이다. 어차피 진공청소기로 귀신들 빨아들이는 거면 성별이 무엇이 중헌가.
하지만 전통 엑소시즘 영화에서는 이런 식으로 미러링을 하기는 힘들다. 앞서 말했듯, 신부가 될 수 있는 건 남성 뿐이고, 신부만이 엑소시즘을 수행할 수 있다고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우리 영화에서는 여성 엑소시스트를 보여주갔어!"하면서 왠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 PC고 자시고 흥하기는 힘들고 나도 그다지 지지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설정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키는 것 자체가 힘들다. 여성 엑소시스트라는 획기적인 설정이 관객들에게 흥미롭게 받아들여지려면 바티칸에서부터 바뀌어야한다. 그런데 바티칸은 안바뀔 거 잖나. 우린 안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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