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접 이 단어를 쓴 적은 없지만 소위 영화나 드라마 등을 대상으로 '페미니즘 비평'으로 분류될만한 글을 쓰면 따라오는 댓글들은 매번 똑같다. "눈에 불만 켜고 저런 것만 찾는다", "싫으면 보지마라", "보빨한다", "일상생활 가능?" 상황이 이러하니 별로 제대로 상대한 적은 없다. 눈에 불을 안켜도 그냥 보이고, 싫기 전에 이미 극장에 들어와서 보고 있고, 영화를 비평하는건데 '보빨'이 왠말인지 궁금하며, 일상생활은..어, 뭐, 제대로 하는 거 같지는 않지만 살아는 있다. 일상생활을 돕고 싶다면 이 계좌로 후원을 해주면 좋다. 카카오뱅크 3333-03-5528372 박현우
페미니즘 비평이 무용해지는 때를 상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현재 미디어에서 여성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른데, 이런 여성의 특성이 사라지면 페미니즘 비평이란 것도 생명을 잃을 것이다. 남성이 <스타워즈>에서 스타파이터나 팔콘을 조종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를 부여할 껀덕지가 없다. 그런데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 여성이 광선검을 휘두르고, 팔콘을 조종하는 것은 의미부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래 기계 만지고 이런 거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디즈니가 만든 <깨어난 포스>에서는 <스타워즈>의 주인공이된(1) 여캐가 기계덕후(2)에다가 광선검(3)까지 휘두른다. 의미부여를 하지 않더라도 이런 캐릭터는 전에 없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페미니즘 비평이란 건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 '특이'한 게 왜 '특이'하며 그 '특이함'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 지를 밝히는 작업이랄까.
<깨어난 포스>의 '특이'함을 설명하는 과정 속에서 <스타워즈> 오리지날을 비판하는 맥락이 만들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비평가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나는 <로그원>과 <깨어난 포스>, <라스트 제다이>가 스타워즈의 어떤 시리즈보다도 다양성을 충족시킨 영화라 생각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기존의 스타워즈를 까내릴 생각은 없다.
그런데 영화 대부분이 <깨어난 포스>에서처럼 남녀의 구분없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작업을 한다면? 페미니즘 비평은 생명을 빠르게 잃어갈 것이라 본다. 여성 캐릭터가 여성으로서 특별할 게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때는 성별구분 없이 그 캐릭터의 캐릭터성이 비평가들의 관심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 영화판에선 이런 측면에서 칭찬할만한 영화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최근에 개봉한 것들만봐도 그렇다. <꾼>에서 나나는 남성을 유혹하는 흔하디 흔한 여성의 롤을 맡았고, <무뢰한>에서 전도연은 룸살롱 마담을 하면서 남성을 기다리는 롤을 맡았고, <미옥>에서 김혜수는 모성애 하나로 전투력을 불살르는 롤을 연기했다. 이 귀한 배우들이 이따위로 소모되는 한, 페미니즘 비평이란 건 앞으로도 조온나게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게 될 거란 것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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