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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Dec 17. 2015

<검은 사제들>과 세월호 참사

"그들을 두려워하지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말라"



알레고리에 대한 이해

영화 안에는 감독이 심어놓은 숨겨진 조각들이 있다. 그것들은 전면에 드러나진 않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감독에 의해 숨겨진다. <검은 사제들>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알레고리들이 숨겨져 있다. 이 알레고리를 발견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발견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세월호 알레고리를 향해  '과대해석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관심있는 분들만 읽으시면 될 듯 하다. (이런 류의 글을 쓸 때마다 알레고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조금씩 글을 쓰는데, 언제쯤 이런 걸 안써도 되는 시기가 올런지?)




옥의 티- 편집 미스

옥의 티부터 짚고 넘어가자. <검은 사제들>엔 명백한 편집 미스가 있다. 이 부분을 바로잡고나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영화 23분쯤을 보면 최 부제(강동원)가 테이프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최 부제가 첫번째 테이프를 들은 뒤에 두번째 테이프로 갈아끼운다. 그 때 최 부제가 듣는 테이프에는 "2014.04.15"라고 적혀있다.


"영신아 가려워?" 할 때 "2014.04.15"

테이프를 틀면 김범신 신부(김윤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영신아 가려워? 왜 자꾸 니 몸을 긁는거야?" 그러자 영신(박소담)이 대답한다. "신부님이 만지셨잖아요. 전에도 그러셨으면서. 저 정말 신부님 좋아했는데 저한테 자꾸 왜 이러세요? 싫어요" 바로 여기에서 편집 미스가 있다. 


"전에도 그러셨으면서"할 때 "2014.05.25"

영신이 "전에도 그러셨으면서"라고 할 때 영상에서 나오는 테이프에는 "2014.05.25"가 적혀있다.  "2014.04.15"테이프가 "영신아 가려워?"라는 대사로 시작하고 "신부님이 만지셨잖아요"가 그에 대한 대답인 것을 감안하면 "2014.05.25"테이프가 담긴 영상 소스가 영화 중간에 갑자기 끼어드는 것은 합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다. 


되감기하는 테이프는 "2014.04.15"

또다른 이유로도 "2014.05.25"는 말이 되지 않는다. 영신의 "싫어요" 뒤에는 악령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에 놀란 최 부제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조작하여 '되감기'를 하는데 그때 나오는 테이프에는 "2014.04.15"가 적혀있다. 최 부제가 "2014.04.15" 테이프를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에 낀 뒤에 테이프를 바꾼 적이 없고, 음향적으로도 하나의 대화 줄기만 삽입되었다는 감안하면 "2014.05.25"가 나올 이유는 없다. 이건 명백한 편집 실수다. 


교통정리는 이거면 충분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검은 사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영화가 담고있는 시대상

이 영화는 2014년을 다루고 있다. 이는 영화의 앞부분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12 악령 중 하나가 한국에서 발견되었고, 이에 구마의식을 행하러 신부 둘이 한국에 오게 된다. 구마 과정의 대부분을 마치고 돼지 속에 악령을 가두었지만, 돼지를 죽이러 가는 과정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자유롭게 된 돼지 속의 악령은 영신을 발견하여 영신에 몸에 들어간다. 그 영신에게 구마의식을 행하는 과정의 테이프를 최 부제가 듣게 되는데, 그때를 담은 테이프에는 "2014"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지만 단순히 연도만 가지고 연관성을 부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연도와 관련짓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검은 사제들>과 세월호를 관련짓는 것은 가능하다. 아래의 영상 캡쳐들을 보자.



최 부제가 구마의식에 필요한 돼지를 얻으러 갈 때의 장면이다. 최 부제와 경찰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고, 최 부제는 경찰의 반대쪽으로 걸어간다. 성당의 사람들은 집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성당을 의경들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4년에 한국에서 경찰들이 성당을 둘러싼 때는 한번 뿐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


집회를 준비하는 장소에는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적혀있는데 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당시에나 지금까지 자주 쓰이는 문장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와 상당히 닮아있다. 성당의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때문에 집회를 준비하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그들이 '진실'을 위해 집회를 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영신과 단원고 고등학생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최 부제라고 생각하지만 영신으로 스타트를 끊어보자. 영신은 세월호 안에 타고 있던 단원고 학생들을 상징하는 듯이 보인다. 영신과 세월호의 단원고 희생자들과의 교집합을 이야기해보자. 영신은 단원고의 학생들처럼 고등학생이며(1), 세월호 참사로 죽음을 맞게된 아이들처럼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교통사고로 사고를 당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령에 의해 먹히게 된다(2).


영신은 공식적인 뇌사 상태로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다. 아직 시신이 발견되지 못해 제대로 제사도 치르지 못한 단원고 학생들의 상황과 영신의 상황은 상당히 닮아있다. 영신의 정신은 육체에 잠들어있긴하지만 사령에 의해 억눌려져 있다. 어떤 강한 힘에 의해 수면 아래에 잠들어있는 것조차도 닮아있다. 


영신이 결과적으로 죽게되는 것은 누가봐도 슬픈 일이다. 하지만 영신에게 있어선 '전보다 나은 상황'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애초에 교통사고가 없었다면-사령에게 억눌리지 않았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사령에게 억눌린 상황에선 사령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영신에게 있어선 최선의 일일 것이다. 그래야 영신은 보다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렇기에 <검은 사제들>의 구마 의식은 세월호 참사로 오면 "인양"이 될 수도 있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영신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들을 해결될 수도 없을 것이다. 영신도 그만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으니까. 김범신 신부가 "너가 다했다. 너가 다했어"라며 절규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최 부제가 상징하는 것


<검은 사제들>의 최 부제(강동원)는 어떤 사람일까? 최 부제에겐 두가지 포인트가 있다. 최 부제는 김범신(김윤석)과 달리 영신과 딱히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 하나. 그리고 최 부제는 사고로 인해 동생을 잃었다는 것 둘. 최 부제는 영신과 관계없는 평범한 시민이며, 유가족이다.


최 부제 동생의 죽음

최 부제의 동생이 어떤식으로 죽게 되었는 지가 중요하다. 최 부제의 동생은 누군가의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죽게 되었다. 영화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 누군가가 사나운 개를 키우는데 그 개는 충분할 정도로 안전하게 묶여있지 않았다. 그 개는 최 부제 남매를 보자 살기를 드러냈고 목줄에 달려있던 사슬은 개의 힘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최 부제의 동생은 개 주인의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죽게 되었다. 


최 부제가 동생의 죽음에 대처하는 방식

동생이 개에게 물어뜯길 때 최 부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최 부제 본인조차도 너무 작은 무력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동생이 물어뜯기는 사이에 돌을 들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공포 때문에 하지 못했다. 최 부제는 이 일로 악몽을 꾸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 트라우마를 안고 살다가 최 부제는 영신을 접하게 된다. 그에게 두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것. 최 부제에게 주어진 옵션은 두가지다. 또 도망가거나, 구원해주거나.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최 부제다. 결과적으로 악령을 쫒아내는 인물이라서? 난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악령이 결국 돼지로 봉인되는 장면이 아니고, 돼지와 함께 한강에 뛰어드는 장면도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최 부제가 구마 의식 도중에 도망쳐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다. 

평범한 시민 최 부제의 성장

최 부제는 구마 의식 도중에 겁을 집어먹고 도망친다. 여동생이 개에 물리자 도망쳤던 것처럼 뒤도 안보고 도망치는 것이다. 건물에서나오자마자 그는 사람들이 많은 시내로 들어간다. 모두가 행복하게 지내는 '안녕한 곳'으로 편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돌아온다. 모두가 쳐다보지도 않는, 악령이 살아숨쉬는 공간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는 시각적으로도 잘 표현되어 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혹은 모르는 척 하는

많은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지나다니지만, 어느 누구도 저 어두운 공간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마치 저 공간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행동한다. 실제로 저 공간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저 공간의 존재를 알지만 모르는 척 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최 부제가 만약 저 공간에 들어가지 않고 '안녕하게 산다면' 최 부제는 저 공간의 존재를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자가 될 것이다. 마치, 영화 초반 부분에 나왔던 74년생 아저씨처럼, 문제를 왜이리 크게 만드냐고 불만을 토로했던 성직자들처럼.


최 부제는 결국 각성한다. 동생에 대한 부채의식이 그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때 김범신, 호랑이의 신과 나누는 대화는 꽤나 인상적이다. 이 대화 이후로 최 부제는 각성하고, 결국 악령을 처리(?)하는 것에 성공하게 된다.

김범신: 아가토
최 부제: 네, 여기 있습니다.
김범신: 넌 이제 선을 넘었다.
최 부제: 알고 있습니다.
김범신: 평생 악몽에 시달리고 술 없인 잠도 못잘텐데? 아무도 몰라주고 아무런 보상도 없을텐데?
최 부제: 사람의 아들아. 그들을 두려워하지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마라.
김범신: 비록 가시가 너를 둘러싸고 네가 전갈 떼 가운데 산다 하더라도 
함께: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말고, 그들의 얼굴을 보고 떨지도 마라.




<검은 사제들>에 경찰이 등장하는 방식

장재현 감독은 경찰에 결코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경찰은 영화 초반에는 성당을 둘러싸는 존재로 등장하고, 영화의 막바지에는 악령이 봉인된 돼지를 처리하려고 할 때 가장 큰 장애물로 등장한다. 영화 속 장면들과 함께 보자.


경찰들이 최 부제와 반대 방향으로 서 있다는 것은 이들이 서로 다른 것을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저 경찰들은 세월호 집회를 막으려하고, 최 부제는 단원고 학생으로 상징되는 영신은 구원하려 한다. 이 둘은 계속 부딫힐 수 밖에 없다.


구마 의식을 통해 부마가 성공하면 악령이 담긴 돼지를 처리해야하는데, 그것을 막는 것도 경찰이다. 경찰은 방해물로 그려진다. 세월호 조사에 계속 방해공작을 펼치는 해경과 세월호 집회를 억압하는 의경이 떠오른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다. 


경찰은 다소 무지하게 그려진다. 경찰이 최 부제를 막고있기는 하지만 왜 막는지는 본인도 그 이유를 모른다. 사진 속의 경찰은 흑화된 돼지를 보며 "뭐야 그거"하면서 놀라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막고 있는 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결국 '악'이 원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경찰은 의도적으로 악을 위해 봉사하지는 않는다. 다만, 결과적으로 악에 봉사한다.


안녕한 사람들

이 영화는 뜬금없이 시내를 자주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너무도 안녕한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혹자는 시내를 보여주는 이유가 '욕망에 찬 사람들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라 했는데, 나는 거기에 딱히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심한 사람들'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최 부제는 구마 의식 도중에 도망을 친 뒤에 '안녕한 사람들'에 합류하게 된다. 어두운 길에서 밝은 길로 가며 '안녕'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곳에선 모두가 안녕하고, 모두가 행복한 이야기들만을 나눈다. <검은 사제들>에 등장하는 악령은 이 곳에 모든 사람들이 있기를 갈망한다. 악령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밖에 사람들처럼 못 본 척하고 살란 말이야"

"그냥 밖에 사람들처럼 못 본 척하고 살란 말이야"라는 대사를 친 뒤에, 악령은 최 부제 역시 '안녕한 사람들'에 합류하게끔 만든다. 최 부제는 겁을 집어먹고 건물 밖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건물 바깥에서 쓰러진 뒤에 시내를 쳐다본다. 그곳엔 안녕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유혹적이다.


갈등하는 최 부제의 시선

최 부제를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악령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실패하긴하지만, 악령의 이러한 시도는 이전에 많은 성공을 거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 부제도 결국은 땜빵으로 합류하게 된거였다. 최 부제 전에 왔던 이들은 모두 '안녕한 사람들'이 되었을 것이다.


장재현 감독이 하려던 말

장재현 감독은 결국 용기있는 시민들이 많아져야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했던 게 아닐까 싶다. 용기있는 시민들이 많아져야 결국엔 '악'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들을 두려워하지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말라"가 결국 이 영화가 남기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는 나름의 해피 엔딩으로 끝났지만,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상파 방송은 세월호 청문회를 생중계하지도 않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 현장에 있던 해경들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는 대사를 짜놓은 듯이 동시다발적으로 줴치고 있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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