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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Oct 06. 2015

나는 대형면허증을 얻을 수 있었다.

도움될 것 같은 것과 실제로 도움되는 것 간의 간극

나는 군대에서 대형차량 운전병이었다. 

1종 보통으로 운전병을 지원해서 2수교를 갔고, 대형운전이라는 보직을 받았다. 보직 번호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난다. 최근에는 기업에 입사지원을 하는데 입대날짜와 전역날짜를 입력하라고 했는데 그것마저 가물가물했었다. 


운전병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소형 운전병(2811), 중형 운전병(2812), 대형 운전병(2813). 운전병들이 가장 되고 싶어하는 운전병은 소형 운전병이다. 


레토나


소형 운전병은 군차로는 기아(KIA)의 레토나라는 걸 모는데, 부대에서 이 차를 타는 사람들은 주로 힘이 쫌 있는 사람들이다. 대대장이라던가, 연대장이라던가 등등. 길거리에서 군차 앞에 숫자가 1, 2같은 게 적혀있으면 그 차에는 그 부대의 최고 짬밥들이 타고 있다고 보면되는데, 그 차를 운전하는 게 소형 운전병이다. 최고 짬밥들은 워낙 자주 밖으로 나댕기기 때문에 소형 운전병들은 배차가 자주 나고, 그렇기 때문에 부대 바깥으로 나간다. 또한, 최고 짬밥과 자주 붙어있기 때문에 휴가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운전병은 소형 운전병을 꿈 꾼다. 운행도 자주 나가고 휴가도 자주 나가니까. 


두돈반

중형 운전병은 2.5톤 차량을 주로 모는데 두톤하고 반이기 때문에 "두돈반"이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두돈반 역시 배차가 자주 나긴 하는데, 운전병들은 중형보단 대형 차량 운전병이 되고 싶어한다.


대형 운전병은 5톤과 15톤 차량을 주로 몬다. 엄밀하게 말하면 소형 차량부터 대형 차량까지 모든 차량을 몰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소형 차량은 소형 차량 운전병이 담당하기 때문에 대형 차량 운전병들은 주로 5톤과 15톤 차량을 몬다. 소형, 중형 차량을 제외한 모든 차량을 몰 수 있다고 보면 된다(탱크같은 특수차량을 제외하고).  내가 속했던 부대에는 중형 차량 운전병이 없어서 나를 포함한 대형 운전병들이 두돈반, 5톤, 15톤 차량을 몰았다. 5톤이나 15톤 차량 중에는 운송 기능, 덤프 기능을 가진 일반적인 모델부터해서 온갖 이상한(?) 기능을 가진 차량들도 많다. 레카 차량이라던가, 레카 차량이라던가...(기억이 안나..)


대형 면허를 딸 수 있었다.

나는 1종 보통 면허를 가지고 있었지만, 2수교에서 대형 운전병 보직을 받은 뒤에 대형 운전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자대에서 대형 운전을 하며 수송 임무를 했기 때문에 1종 보통 면허를 대형 면허로 갱신할 수 있었다. 수송관이 서류를 주면 그것을 가지고 어찌저찌하면 된다. 처음에 나는 대형 면허가 있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수송관에게 서류를 요청했고 수송관은 서류를 만들어줬다. 그 서류를 몇개월 내에 어떤 행정부서에 가져다주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나는 시기를 놓쳤고, 결국 갱신을 못했다. 뭔가 아쉬웠다. 인생의 무언가를 놓친 듯한 느낌.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대형 면허가 별로 아쉬울 것이 없었는데, 대형 면허가 있다고 해도 딱히 그 면허를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직종에서 일을 하는데 대형 면허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어떤 시나리오를 돌려도 내 인생에서 대형 면허를 쓸 일이 없었다. 나에게 대형면허는 애초에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수송관에게 서류를 부탁할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내 인생에 딱히 도움될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대형면허 갱신을 놓쳤을 때의 그 아쉬움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1종 보통 면허보다는 대형 면허가 더 낫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대형 면허가 있으면 더 많은 차량을 몰 수 있게 되니까. 하지만 막상 현실로 돌아오면, 막상 내 인생을 다시한번 돌아보면 대형 면허는 사실상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누구에게 자랑할 거리도 안된다. 술자리에서 어떤 남자가 자신이 대형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다며 자랑하는 순간이 오면 술자리의 누군가는 분위기를 다시 '정상화'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내 인생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것'이 '내 인생에 도움되는 것'으로 둔갑하는 현상은 자주 발생한다. 특히 요즘에는 소비에 있어서 이런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 것 같다. 저 물건은 내게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인데 갑자기 50% 할인을 하면 저 물건이 나에게 왠지 쓸모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정신을 차려야 분간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왠지 모든 사람과 친해지면 더 좋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모두'와 친해지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으며, 이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지도 않다. '내게 도움될 것 같은 것'에 대한 좀 더 엄밀한 태도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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