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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Dec 12. 2017

2년간 운영하던 페북 페이지를 한 순간에 빼앗긴다는 것


2015년 9월부터 2년간 밤낮 없이 빡세게 운영하고, 그 덕에 5.5만 좋아요를 확보하고 있던 <헬조선 늬우스> 페이스북 페이지를 2017년 12월 9일, 한 순간에 빼앗겼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보내준 URL을 클릭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말했다. "그래도 헬늬 잘못이라서.." 실수이긴하지만, 내 잘못인 것은 아니다. 사람을 믿은 게 죄는 아니니까. 그런식으로 치자면 사기꾼에게 사기당한 모든 사람들은 죄를 지은 거겠지. 내가 생각하는 잘못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내가 잘못한 사람이 될 수는 없지. 난 그저 사기를 당했을 뿐.


천벌을 받은 것도 아니다. 나는 이런 일을 당할 어떤 종류의 죄도 지은 일이 없다. 나는 바람도 한 번 펴본 적이 없고, 성희롱이 일상인 단톡방 안에 들어가 있지도 않고,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누구를 때려본 적도 없다. 길냥이들만 만나면 먹을 거 주고, 길 잃은 강아지 주인들 찾아주고, 누가 자기 힘든 일 제보해오면 상담해주면서 공론화해주려고 애썼다. 유기묘, 유기견들이 타페이지에 올라오면 매번 내 페이지에 공유해서 그 아이들의 먹고사니즘에 도움을 주려했고, 페이지에 연애 상담을 해오거나, 어떤 이슈에 대해 의견을 물어오면 대부분 친절히 답해줬다. 다시 말하건데, 나는 페이지를 빼앗길 어떤 종류의 죄도 지은 일이 없다.


그러니까, 이건 천벌이 아니라 그냥 재수가 없는 거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나는 나름대로 이 나라의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해 계속해서 글을 써왔고(걱정마시라 페이지 유무와 관계없이 앞으로도 쓸 거니까), 페이스북 페이지로는 그 흔한 광고도 앵간해서는 하지 않았다. 굳이 광고를 한다치면 1인 개발자가 만든 앱이나 1인 개발자가 만든 게임을 광고했었다. 돈을 뭐 몇 백을 받은 것도 아니고, 파리바게트 케이크나 롤케이크 기프티콘을 받거나 소액을 받았다. 최대로 받은 광고비가 10만원이다. 5.5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페이지에서 10만원 광고비는 많이 싼 금액이다.


지금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허무다. 이런 식으로 페이지를 빼앗기는 그림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매트릭스>에 그 장면 기억하는가? 대머리 사이퍼가 인간들을 배신하고 함선을 탈취할 때 '매트릭스' 안에 있던 자들은 사이퍼에 의해 플러그를 뽑히고 너무도 가볍게 목숨을 잃는다. 그때 흰 머리 총잡이가 말한다. "Not like this. Not like this." 피육.


지금 내 심정이 그렇다. 바른정당 아해나 MBN 기자가 고소를 한다고 동네방네를 시끄럽게했을 때, 그건 뭐 해볼만한 게임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고소가 들어오면 나도 한판 붙어볼 생각이었다(그런데 아직까지 딱히 소식이 없다).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못해보고 멀찍이서 내 페이지가 비공개 처리되고, 삭제 수순을 밟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그저 허무하다. 이런 식은 상상하지 못했다. URL클릭하고 내 휴대폰 번호 알려준 것 때문에 페이지를 빼앗기다니. 너무 허무하고 무력하다.


페이지를 잃고 내 삶의 패턴도 깨져버렸다. 페이지를 운영하는 것이 내 삶의 상당 부분을 채우고 있었는데, 페이지가 비공개 처리되면서 빈 공간이 생겨버렸다. 페이지를 잃은 뒤 지금 며칠동안 제대로 생활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상실감, 허무, 무력감이 나를 지배한다. 2017년엔 무슨 마가 끼었는 지 안좋은 일이 연속으로 겹쳐서 일어난다. 언시 지원은 모두 물을 먹었고, 큰 마음 먹고 아이패드를 질렀는데 텀블러가 터지면서 아이패드와 맥북에 물이 들어가서 출혈이 컸다. 여기에 더해 헬늬까지 빼앗기면서 제대로 명치를 맞은 기분이다. "그래도 내가 저새끼보다는 낫지"에서 "저새끼"를 담당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샤덴프로이데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르면 1월에 월간지 <Be Sensitive>를 낼 건데, 거기에 집중하라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르겠다. 페이지 복구를 위해서도 지금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는데 그게 잘되서 페이지가 복구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복구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일좀 일어났으면 좋겠다. 사지도 않는 로또 당첨은 바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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