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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는 이렇게 다루야 한다
지금까지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 중에 가장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어디서 본 듯한 설정을 발견할 수는 있다. 가령, 이 영화에서 실무자들 자기들끼리는 우정 관계를 유지하는 와중 지도자란 것들은 싸우기 바쁘다. 이런 설정은 <공조>, <의형제>와 동일하다.
이런 설정을 가져오면서도 <강철비>(2017)는 남북한의 지도부나 부하들을 <공조>, <의형제>식으로 단순하게 그려내지 않는다. 지금 최고 권력을 지닌 남북한의 리더들이 어떻게든 싸움을 벌이려 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강철비>는 지도부와 실무 라인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반도 정세를 다룬 영화에서 대화라는 건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애들이 도맡았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에선 현장 뛰던 사람들끼리 눈이 맞는 걸 보여주면서 '사랑이냐 안보냐'하는 다소 유치하지만 당시에는 먹혔던 메세지를 띄웠다. <쉬리>의 사랑이건 <공조>, <의형제>의 브라더후드건 서로 애착 관계를 가지는 건 피라미드 아래에서 총 들고 뛰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강철비>의 당선된 후임 대통령(이경영 연기)은 북한과의 대화를 더욱 중히 여기고, 그와 차후 한국 정부를 이끌 상부 라인이자 주인공인 철우(곽도원 연기) 역시 대화를 중히 여긴다. 그리고 그는 북한에서 암살 지령을 받고 우연히 남한으로 내려온 또다른 철우(정우성 연기)와 브라더후드를 만들어낸다. 리더들이 대화를 말하는 것도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설정인데, 공무원이랑 현장 요원이랑 꽁냥꽁냥하는 설정도 신선하기는 마찬가지.
단순히 이런 설정이 전에 본 적이 없던 신선한 설정이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 노력했다는 점에 점수를 주는 것. 한국 정치판은 단순하지 않다. 북한 붕괴론을 지지하는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계열의 정치 세력뿐 아니라, 북한과이 대화를 지지하는 민주당 등 진보계열의 정치 세력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한반도 정세를 다룬 영화들은 왜인지 붕괴론을 지지하는 자들만을 남한의 리더로서 보여줬다. 스토리라인을 만들기 위해 현실을 거세했다고 평가할 수 밖에.
더 나아가 <강철비>가 앞서 언급한 작품들들을 압살하는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한반도를 중심으로한 미국, 일본, 중국이라는 ‘또다른 주역’들을 영화에서 배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을 통해 한반도 정세를 다루는데 쟤네들을 빼놓고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기에 이런 접근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접근을 지금까지 나온 한반도 영화들은 전혀 하지 않았다.
설령 한반도 주변 국가들을 등장시킨다해도 그 시선이란 게 유치하기 짝이 없었고, 수준도 하찮았다. 미국은 무조건 개새끼라거나, 일본은 무조건 개새끼라거나, 중국은 미국과 싸울 생각 밖에 없다는 식이었다. 평소 국가 외교에 그다지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스파이물 한번 만들어보겠다고 어줍잖게 시나리오를 써째긴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강철비>가 이 국가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꽤나 재밌다. 북한에도 여러가지 정치적 입장이 있고, 미국, 중국, 일본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각국을 상징하는 인물들을 던져두고 그들을 통해 해당 국가가 어떤 입장에 처해있는 지를 꽤나 심도있게 풀어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하는 국가는 미국인데, 미국이 한국보다 일본을 더 귀한 친구로 여긴다는 것을 이보다 더 설득력있게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애널서킹하던 사람들은 <강철비>가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액션
주먹 액션은 평범하다. 딱히 코멘트할만한 게 없다. 다만,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총 액션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건물 내에서 특수부대 요원들이 어떻게 싸우면 장면이 더 재밌어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한 흔적이 보였달까. 수류탄 하나 때문에 아군이나 적이 한꺼번에 초토화되지도 않고, 벽이나 바닥을 단순히 '막힌 길'로 여기지도 않으며 꽤나 창의적인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요원들은 빌딩 곳곳에 배치되어있다. 보통의 영화에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죽으면 액션신은 끝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특수부대가 건물 곳곳에 배치되어있을 거라는 당연한 현실을 영화에 그대로 차용한다. 그 결과 액션신의 긴장감을 꽤나 긴 시간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액션 감독이 <레인보우 시즈>좀 해봤나 싶을 정도였다. 아무튼 이로서 <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은 법정물 뿐 아니라 액션물도 끼깔나게 잘 뽑아낸다는 게 증명됐다.
여성
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모두 멍청하거나 폭탄맞아죽거나, 총에 위협받아서 뭔가를 수행하는 이들이다. 예외가 한 명 있기는 하다. CIA쪽 간부. 그런데 이 양반은 또 대놓고 여성 캐릭터다. 곽도원한테 굳이 귓속말하는 액션은 이해하기 힘들다. 북한에 컴퓨터 만지는 애 중에 오히려 여캐가 있는데(남측의 실무진은 모두 남성), 얘도 눈치없이 나불대다가 총 소리 듣고 질질짜는 역이다.
의대까지 나온 산부인과의 여성 의사는 이 영화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 중 하나다. 무려 북한의 1호를 "대통령"이라 부른다. 피부과나 성형의과 의사들이 영화에 나와서 북한의 1호를 대통령이라 불렀으면 걔들은 정치에 1도 관심없으니까 풍자라도 하나보다 싶겠는데, 도심 바깥에서서 산부인과 병동 만들어놓고 나름 좋은 일하는 여성 사람을 똥멍청이로 그리며 개그 코드로 삼는 것은 다소 납득하기가 힘들다. 매력적인 여캐는 없다. 뭐, 자주 있는 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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