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태도
요즘엔 나에 관한 글을 잘 쓰지 않고 있다. 어떤 글을 쓰건 자연스레 불행 포르노의 형태를 띄게 될 거 같아서다. 그 글을 보는 이들은 그 글을 읽고 '내가 얘보단 낫지'라며 자신의 삶을 더 긍정하게 될 수도 있고, "응원합니다!"며 댓글을 달 수도 있겠지만, 어느 반응이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나에 관한 글을 쓰지 않는 다른 이유도 있다. 최근에 인지하게 된 문제인데 많은 기자들은 자신이 보거나 듣거나 체험한 소소한 사례들만을 가지고 그게 마치 사회적 현상인 양 기사를 쏟아낸다. 기자가 쓰는 현실이 일부 현실일 수도 있으나, 기자들은 그것을 부풀린다. 그게 대세이고, 트렌드인양 일부 현실을 과장한다. 그들의 가벼운 분석은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진리인양 대중들에게 퍼진다.
이런 행위는 피드백되지 않는다. 데스크는 그 분석의 옳고그름을 판단할 능력도 의지도 없고, 독자들은 문제적이지 않은 분석에는 그것이 틀렸건 맞았건 딱히 피드백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피드백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기자들이 그것을 성심성의껏 수용할지는 또다른 문제다.
피드백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볍고도 사소한 분석을 반복하던 기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대범해진다. 자신의 통찰력(?)이 어느 수준에 다다랐다고 자뻑하는 짬밥 좀 채운 기자들에게서 이런 행태가 자주 나타난다. 짬밥 좀 채운 기자들은 소위 주필이랍시고, 사설을 쓴답시고 사회에 대한 자신의 대단한 통찰력을 풀어놓는다. 간장 두 종지를 보고 잡문을 써댔던 그 주필이나, 가족들이랑 스페인으로 해외 여행갔다가 만난 한국인들을 보고 '한국인들은 너무 사치스러워졌다'고 분석한 무려 "경제부장"이나 씩이나 되는 기자(?)나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기자들의 그런 행태를 워낙 반복적으로 접하다보니 든 생각은 하나. 나도 비슷한 짓을 했던 것은 아닌가? 앞에서 불행 포르노 이야기를 했는데 마음 속으로만 쓰다가 접은 글들이 꽤 된다. 나의 불행이 마치 시대적 불행인양 과장하는 글들. 그런데 막상 돌아보면 그렇지가 않다. 다들 잘들 먹고 산다. 정규직인 애들은 결혼들 잘들하고, 비정규직인 애들도 나름의 고충은 있지만 잘들 먹고 산다. 그들한테도 저만의 문제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문제와 접점이 그리 크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얼마든지 글을 써서 나의 불행이 시대적 불행이고, 나의 불행을 대부분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식으로 양념을 칠 수 있다.
양념친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내가 현실을 제대로 찝었다는 것을 증명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애초에 키보드를 두들기게 만들었던 동기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글의 성공은 얻어걸린 것일 뿐이니까. 그런데 이 성공에 취하면 그때 <간장 두 종지>같은 글을 쓰게 된다. 분석에는 집요함과 디테일이 필요한데 얻어걸린 성공에 취하면 분석에서도 도박을 하게 된다. 글의 성공을 '나의 대단한 통찰력'으로 보면 안되는 이유다.
글이 성공한 이유는 '내가 해당 사안을 꽤나 오랫동안 지켜보고 다방면으로 살펴봤기 때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소재로 무엇을 잡을 때도 그 사안을 꽤나 오랫동안 지켜보고 다방면으로 살펴보게 되겠지. 그러면 별 것 없는 통찰력에 몰빵할 때보다 아무래도 덜 틀리지 않을까. 어느덧 서른하나다. 자기를 객관화하고 반성하는 능력이 더 없이 요구된다. 이거 없으면 순식간에 추해진다. 이제 아무도 안봐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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