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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Feb 14. 2018

맥북프로2011Late, 우울증, 자살

글쓰는 작업은 주로 카페에서 한다. 카페에서 작업하다가 집에 가서 쉬고, 다음 날에 다시 카페로 가서 작업을 하는 식이다. 작업도구는 맥북프로 2011 Late다. 2013년 초에 중고로 180만원에 구입해서 2018년 2월인 지금까지 쓰고 있다. 2013년 당시에는 학교에서 영화 작업한 것을 편집할 때 주로 썼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맥이 퇴화해서 영상 편집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2017년 11월 20일에 백팩에 있던 텀블러의 고정 부분이 풀려서 물이 흘렀고, 그 때문에 맥북과 아이패드가 침수되었다. 153만원 주고 산 아이패드프로2세대는 81만원 정도를 내서 리퍼품을 받았고, 맥북은 사설을 통해 20만원에 수리 받았다. 뼈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들이 고장난 순간 삶이 말 그대로 정지되었으니까. 카페에서 글 쓰는 게 버릇이 되다보니 집에서는 글을 쓰지 못했고, 장비가 없으니 집에서 나가지도 못했다. 나가도 할 게 없으니까.


EA로고가 박혀있는 그 텀블러는 나와 생일이 같은 친구가 선물해준 것이다. 캐나다 EA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친구가 한국에 놀러오면서 선물해준 것. 선물해준 당시에는 그다지 텀블러를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카페에서 음료 한 잔 마셔도 목이 마르던 게 반복이 되서 텀블러를 들고다녔다. 스타벅스 직원들에게 일일이 물 달라고 하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거든. 한 잔으로 존버하려던 것도 있다. 2017년 11월 20일, 삼성역으로 미팅을 가는 중에 약속에 늦어서 뛰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백팩을 열었는데 바닥이 흥건했다. 바닥은 물로 가득했고, '헐'하며 바로 맥북과 아이패드를 뺐다. 이미 물이 들어가서 회생이 불가능해보였으나 라이트닝 포트쪽으로 물이 빠지게끔 계속 세워놓았다. 두 손으로 패드를 잡고 바지 위에 세운 뒤 미팅을 진행했다.


물이 빠질 만큼 빠진 것 같았으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명동 유베이스에 가니 80만원을 부르고, 사설에서는 아이패드 프로 2세대의 액정이 아직 없다면서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80만원을 내고 리퍼품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아직 맥북은 고쳐지지 않은 상태. 여전히 삶은 마비된 상태. 2주인가 3주가 지났을 때 맥북이 고쳐졌다는 연락이 왔고, 물건을 받아왔다.


수리된 맥북을 2개월간 사용했는데 갑자기 그래픽 냉납 현상이 발생했다. 업체에서 말도 없이 기존 보드를 빼고 구형 버전 보드를 끼워놨다. 2011 late Macbook pro 고급칩을 2011 early Macbook pro 저급(?) 칩으로. 당황스러웠지만 항의하고 기존 보드를 다시 낀 채로 수리비 환불과 함께 맥북을 받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인 오늘 또다른 업체에 맥북을 맡겼다. 까이꺼 그냥 사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돈이 없다 시발. 구형을 어찌됐건 적은 돈으로 수리해서 계속 써야한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 속에 맴도는 이유는 맥북 때문이다. 이깟 맥북 하나 사지 못하는 내 상황이 내 상황을 요약해주는 것 같거든. 나름 글을 많이 썼고 전보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정작 생계는 1도 나아지지 않았다. 내 글을 읽고 고맙다는 사람들이 간혹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주거나 현금 후원을 해주기는 하지만 그걸로 생계 유지는 꿈도 못 꾼다. 기세 좋게 취업 안하겠다고 글을 썼지만 지금은 나 따위가 취업을 안해서 어떻게 생존하나 싶다. 상황이 이러니 글을 읽고 감사하다는 메세지를 받아도 딱히 감흥이 없다. 말뿐인 감사가 그저 공허하게 느껴진달까. 공짜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음 속으로 “넌 언제 나 도와줬어요? 좆까세요”를 외치고 있다. 예전엔 이렇지 않았다.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다보니 남들에게 쉽게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물로 꽁으로 도움받으려는 자들은 도움을 받으면 안되기는 하지만은, 내 개인적으로 그런 것들에 대한 태도가 변했다는 이야기다. 하다못해 사소한 연애 상담에도 이제 에너지를 쓰는 게 싫어졌다. 비용 없이 무엇을 요구하는 자들에게 혐오 정서 비슷한 게 생겼다.


애초에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내 글을 볼 수 있으니 누가 돈을 낼까 싶다. 계좌를 공개해봐야 극소수의 인물들만 비용을 지불한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월간지를 준비했고 지금도 텍스트를 채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만, 지금은 이마저도 잘 모르겠다. 텀블벅이 성공이나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선다.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니 내 글도 같이 힘을 잃어가는 것 같거든. 그나마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맥북이 고장나서 작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뭔가 추진된다 싶으면 일들이 겹치고 겹친다. 2018년에는 그래도 사주가 괜찮아서 잘 풀릴 거라 기대했는데 말이지. 사주를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희망을 가질 근거가 하나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다.


페이스북에 ‘이xx’라는 분이 하는 프로젝트를 발견했다. ‘일일 이xx’라는 프로젝트인데, 작가는 한두달간 자신의 글을 받을 사람들의 신청을 받고, 또 돈을 받는다. 나도 그런 걸 해볼지도 모르겠다. 비용을 지불하는 자들에게만 글을 공급하는 것. 그 프로젝트를 실행하면 페이스북의 헬조선 늬우스나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중지할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누군가들에게 글을 공급해야하고, 그것들은 내 생계를 진정으로 책임지는 작업이 될테니까. 그렇게 되면 내가 몇 년이 지난 폰과 노트북을 처분하고 새로운 장비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덜 쪽팔릴 것이고. 그러면 자살이란 단어가 머릿 속에서 떠날지도 모른다. 비록 이 단어는 고딩 때부터 나와 함께한 나름의 동지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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