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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Feb 14. 2018

나의 우울증에 관하여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수진찡이 독서모임 때 결혼한 친구-엄마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아이의 휴대폰에 관한 것이었다. 폰이 갑자기 고장나는 것은 부모에게 예기치 않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이야기. 정해진 예산으로 계획을 만들어놓았는데 갑자기 자식새끼가 폰이 고장났다면서 새로 바꿔야한다고하면 그 스트레스가 어마무시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이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이유는 여유자금이 적기 때문아다. 정해진 예산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기에도 빠듯한데 거기에 갑자기 휴대폰이라니. 자금이 충분하면 갑작스러운 사고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계획에 아무런 변동을 주지 않고도 그깟 고장난 휴대폰을 새 휴대폰으로 바꿔줄 수 있다. 당연히 스트레스도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한다.

마음 문제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나 싶다. 마음 근육이 약하고 또 약한 혹은 우울증이나 신경쇄약에 걸린 사람은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 계획적이다. 즉흥적인 것을 피한다.

나 역시 여기에 포함되는데 그들의 계획은 이러하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않기,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않기, 예정되지 않은 일정에 가지 않기 등등. 흔히 내향적인 사람들이 이런 행동패턴을 보인다. 우울증 환자들과 내향적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예민함이기 때문.

이불에 처박혀있거나 이불 밖으로 나와도 방 안에 있거나, 방에서 나와도 집 밖은 나가지 않거나, 집 밖은 나가도 매번 가는 장소에 가는 것도 나름의 계획이다. 새로운 무엇은 불쾌한 자극이 될 수도 있으니 가능한한 피한다.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니 자극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나는 지금 동년배들에 비해 돈도 이렇다하게 없고, 정신 건강 상태도 지금 동년배들에 비해 최악의 수준으로 달리고 있지 않은가 싶은데, 그래서인지 모든 자극에 있어 예민하다. 맥북이 고장났을 때 스트레스를 받고, 보드가 나도 모르게 업체에 의해 다운그레이드된 걸 알고 하루종일 일을 손에 잡지 못하던 것도 다 같은 이유다. 난 이런 일들을 예상하지 못했고, 그걸 감당할 여력이 없는 상태거든.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상담을 가볼까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접게된다. 돈도 돈인데, 그보다 더 걸리는 건 상담관이다. 나도 나름 상담을 좀 공부했었어서 상담 기술들을 좀 안다. 고딩 때부턴가 내 멘탈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병이나 상담에 관한 책들을 꽤나 자주 봤었거든.

대학생 때 학교상담센터를 방문했었는데 아마도 대학원생인 상담관이 진심도 없이 스킬 부리려고 하면 스트레스만 쌓였었다. 수가 보이니 진심을 말하기도 뭔가 어려웠다. 그때 얻은 깨달음이 하나있다면 상담 스킬이나 학위보다 중요한 건 진심이라는 것. 해서, 상담이 되려 일레귤러가 되어 나를 괴롭힐까봐 감히 발을 들이지 못하겠다.

그래서 십년 넘게 나를 괴롭히는 이 만성 질환이 싫기만하냐, 면 그렇지는 않다. 상처 입은 영혼을 빠르게 알아보는 능력 비슷한 게 생겼으니까. 그래서인지 상처받은 사람들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건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빠르게 믿고, 나는 원래 사람을 잘 믿으니까. 내가 사람을 잘 믿는 것도 내 정신적 문제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 의심하면 피곤하거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다 믿는 게 정신적으로 편하다. 실제로 그런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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