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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Oct 20. 2019

보아 <걸스온탑>에는 왜 백래시가 없었을까?



*이 글은 일간 박현우 4호, 2018년 6월 11일자로 배포된 글 "BoA의 <Girls On Top>에는 왜 백래시가 없었을까?"입니다. 글이 마음에 드시면 과월호를 구매하시든, 11월 2일부터 시작하는 일간 박현우 18호를 구독해주셔요. 여러분의 구독이 있어야 글쟁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이 글은 특정 시점이 오면 브런치에서 삭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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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4일,  SM-보아는 정규 앨범 <Girls On Top>(뮤비)을 낸다. 동명의 타이틀 곡은 “날 바라보는 네 야릇한 시선들이 난 싫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남자들의 박스 안에 갇히기 않겠다'는 보아의 메세지를 한 껏 담아냈다. <걸스온탑>은 당시에 히트는 쳤을 지언정, 이렇다할 정치적 메세지는 만들지 못했다. 이는 흥미롭다. 2018년에 여성 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은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문구가 입력된 휴대폰 케이스를 끼고 SNS에 올렸다는 이유로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다. “소녀는 다 할 수 있다"라는 문구가 누구들의 주장하는 엄청 극단적인 문구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걸스온탑>에는 “섹시한, 차분한, 영원히 한 남자만 아는 따분함. 그건 바로 착각, 모든 남자들의 관심사", “말이 되지 않잖아 그들만의 평등 같은 건. 그대들이 만든 기준에 맞게” 같은 더 극단적인(?) 가사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당시 남성들은 보아의 노래에 이렇다할 반응을 하지 않았다. 2018년인 지금 이 곡이 나오면 “모든 남자들의 착각"이란 가사에 “왜 모든 남성을 일반화하냐"고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나올 텐데 말이다.


왜 당시의 보아에는 그렇게 조용하던 남성들이 지금에 와서는 휴대폰 케이스의 문구 하나에 예민하게 구는가? 여기서 우리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당시엔 기술적인 제약 때문에 보아에게 이렇다할 피드백을 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그럴 수가 있다는 가설 하나. 이 가설은 보아나 손나은에게 불만이 많은 남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나, 기술적인 제약 때문에 보아에게 피드백을 넣을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은 SNS다. 페이스북은 2004년에 탄생했으나 처음엔 하버드생만 이용가능했고, 나중에는 아이비리그 대학생들까지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2006년이 되어서야 일반 대중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2005년에 나온 <걸스온탑>으로 불만이 생긴 남성들이 있었다하더라도 보아에게 불만을 터뜨릴 창구가 없었다는 주장은 가능하다. 손나은이 남성들에게 ‘설마 페미니스트냐'며 ‘공격’ 받은 것도 그럴 수 있는 창구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설은 2005년의 남성들과 2018년의 한국 남성들이 페미니즘 내지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것에 동일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 전제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 보아의 노래는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즘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워낙에 사이즈가 작았고, 담론 권력이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어떤 콘텐츠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페미니즘적인 것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그것이 페미니즘적인 것이 아니어서라기보다는, 카테고리에 ‘페미니즘'이란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페미니즘으로 분류를 해야 ‘페미니스트냐'며 공격(대체로 이 질문을 던지는 자는 뒤에 칼을 숨기고 있다)을 할텐데,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대중 레벨로 올라오지도 못할 정도로 힘이 약했고 사이즈도 작았기에 타겟도 되지 못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니 2018년인 지금 어떤 여성 아이돌이 <걸스온탑>을 부르며 남성 위에 올라타면 완전히 다른 반응이 나올 것이다. 애초에 그런 곡이 나오기 전에 기획 단계에부터 캔슬되겠지. 이제 대중들은 ‘걸스온탑'이 뭔 지 알고, SM-YG-JYP도 뭐가 뭔지 알거든. 결국, 2018년인 지금의 지형에서 보아가 <걸스온탑>을 부르려면 2005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압박감을 견뎌야한다. 2005년이어서 그런 곡이 가능했다는 주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백래시(backlash)

백래시라는 개념은 페미니즘 진영에서 처음 썼다. 수전 팔루디가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 일반의 대응을 ‘backlash 반격'이라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내 입장인데, 백래시가 발생하려면 위협받는 존재가 꼭 필요하다. 반대로 위협받는 존재가 없다면 백래시는 발생하지 않는다. 앞서 나는 페미니즘의 힘이나 사이즈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그 힘이 약하면 백래시는 발생하기 힘들고, 그 힘이나 사이즈가 강해질 수록 백래시는 강해질 수 밖에 없다. 잃을 것이 생길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자들은 다급해지는 법이니까. 어원이 어찌되었건 페미니즘을 논할 때만 백래시라는 개념을 쓸 필요는 없다. 변화를 추구하는 활동은 그 힘이 유의미해질 때 필연적으로 백래시를 마주하게 된다. <걸스온탑>과 마찬가지로 2018년에는 도저히 방소에서 송출될 수 없을 거라 여겨지는 뮤지컬 넘버가 지상파 방송을 탔던 적이 있다. 


2007년, KBS에서 뮤지컬  <The Rent>의 <Take me or leave me>(영상) 무대영상이 송출됐다. 이 넘버는 레즈비언 커플이 투닥거리는 내용을 다룬다. (꼰대가 장악하고 있고 세대교체 가능성이 전무한) 2018년의 KBS라면 절대 내보내지 않을 법한 이 무대 영상이 방송을 탈 수 있던 것은 ‘동성애가 만연하면 내 자식도 동성애에 물들지 모른다' 믿는 꼴통들이 이 무대영상 따위로 위협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다. 동일한 넘버를 지금 지상파가 내보내면 해당 방송사의 직원들은 다음 날 출근길에 부채춤 추는 개신교 아재들의 불벼락을 마주하게 될 거다.

 

백래시는 남성 권력이 얼마나 권고한지, 페미니즘을 비롯한 각종 운동들이 얼마나 갈 길이 먼지를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종 운동들이 얼마나 유의미하게 사이즈가 커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한 때 위협을 느끼지 못했던 이들이 지금은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때는 별 말 없던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 시끄러운 것은 인류 문화가 전반적으로 후퇴해서는 아니다. ‘장난'이나 ‘애교' 그리고 몇몇 아웃사이더들의 광기로 사소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이제 진짜 위협적인 것으로 보이기 했다. 한 때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수준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진짜 전쟁에 돌입하는 단계가 오지 않았나 싶다. 그러므로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을 수 밖에 없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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