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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Nov 24. 2024

우울증이라는 오래된 동거인

나는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대단히 늦게 깨달았다. 되돌아보면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부터 우울증이란 놈이 나와 함께했던 것 같은데, 내가 스스로 '우울증이 걸렸다'고 판단 내린 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괜찮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는 하다. 한번은 환청을 들었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도 초등학생 시절 수학 학원에 있을 때 창밖으로 '상식적으로 그 시간에 거기에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의 싸우는 소리가 들려서 미친놈처럼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며 창 바깥을 쳐다본 적도 있다. 그때 내가 선생님한테도 뭐라뭐라한 거 같은데, 지금 그때를 떠올리자면 그 선생님은 나를 꽤나 안타깝게 보지 않았을까 싶다.


중학생 때부터는 도서관에 가서 심리학 책을 읽거나 처세술 책을 읽거나 심리 상담에 관한 책을 읽었다. 심리학과 관련해 책도 상당히 많이 읽은 축에 속한다. 지금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프로이트나 융의 책도 찾아서 읽었다. 나중에 파울로 코엘료의 책도 읽었는데, (그의 책 대부분을 읽긴 했지만) 제목에 꽂혀서 읽었던 책이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다.


슬픔, 우울, 외로움, 죽음, 자살이라는 키워드는 언제나 나와 함께 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를 좋아했던 이유도 그 애니 속 주인고 '신지'가 너무도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삶의 의욕도 없고, 누가 시키는대로 하고, 여자와 사귀고 싶어하지만 사귀지도 못하는 찌질한 존재에 나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교를 갔을 때 나는 대학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지금은 학과가 연극영화학과로 통합되긴 했지만 나는 한 대학의 영화학과에 입학했는데, 그 학과의 문화가 군대와 상당히 닮아있는 부분이 있어서 적응하지 못했다.


동기들은 다들 선배들 말도 잘 듣고, 학교의 룰에도 잘 따랐는데-그럴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나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선배들과는 친분을 쌓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동기들과도 멀어졌다. 그렇게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로 도망갔다. 대학에 다닐 자신이 없었다. 오랜 기간 영화감독의 꿈을 꿔서 관련학과에 들어갔지만-그러고 있다는 자각도 없이-꿈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듯, 당연하지만 군대에서도 문제는 계속됐다. 군대 문화가 원래 좀 비인간적인 부분이 있고, 개선되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잘 적응하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았고, 그 안에서도 군대에서 지원해주는 상담사와 만나 비정기적으로 상담을 하고는 했다.


상담사를 만나고 한 거 보면 당시의 내가 '나는 지금 괜찮지 않다'라고 생각을 한 것 같기는 하다. 다만 그 당시에도 나는 우울증이라는 단어와 나를 관계시키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거부한 것도 아니다. 단순히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 없었다.


그러다가 군대를 졸업하고, 다시 대학에 돌아갔고, 복학생으로서 후배들과 대학을 다녔지만, 여전히 학과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또 도망쳤다. 이번에는 토론 동아리로. 결과적으로 나는 학과보다 그곳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토론 동아리가 내게 남겨준 건 굉장히 많지만, 학과 생활을 내팽게친 건 여전히 아쉬운 부분으로 남아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정신과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우울증을 잡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는 단순히 사는 게 힘들어서 간 게 크다. 나는 몇개월간 병원을 다니는 중에도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순히 많이 우울한 사람 정도로는 생각했던 것 같다. 삶의 의욕이 없었으니 약을 먹으면 그런 의욕이 좀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던 거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는데, 어떤 분명한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오랜 기간 우울증과 계속 함께해오다보니 내 옆에 있는 우울증을 살짝 쳐다보고 '아, 나 우울증이네'하게 깨닫게 된 것에 가깝다. 놀라울 것도 없었고,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귀결이었다.


우울증이라는 걸 깨닫고 보니 과거에 내가 했던 행위들이나 말 같은 것들이 다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나를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우울증 환자'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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