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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Dec 03. 2015

한국의 집회시위법은 악법이며, 바뀌어야한다

법은 고정되어있지 않다



법은 고정되어있지 않다

국가에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법이 있고,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법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편하게 해주는 법이 있는 가하면, 또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법도 있다. 합리적이며,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법들은 법으로서 존중해주면 되지만, 어떤 법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고, 사람들의 권리를 억누르고, 혹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면 이는 악법이므로 법을 더 나은 내용으로 바꾸거나 폐기해야한다. 법을 더 나은 법으로 바꾸는 것을 '법 개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들의 권리를 불필요하게 억누르고 있으므로, 더 나은 내용으로 개정되어야한다. 


헌법 21조- 표현의 자유
헌법21조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③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④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 등을 다룬다. 그런데 막상 활자로 "표현의 자유"가 적혀있는 것은 아니기에 이 부분은 개헌 때 수정되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헌법 21조의 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하기 때문에 21조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헌법 21조 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그렇기에 국가를 비롯한 특정 세력은 이러한 헌법적 권리를 침해해선 안된다. 그런데 최근에 이와 관련한 시행령이 통과가 되었다. 바로 신문법이다. 신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5인 미만의 언론사는 언론사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클릭). 이로 인해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었다는 말은 두번 말해 입 아프다. 시행령은 대통령의 '명령'이므로 대통령이 기존의 5인 미만의 언론과 예비 언론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이해하면 된다. 근혜 누나는 헌법을 무시하고 있는데(이것이 그녀의 원칙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뒤에서도 계속 다루게 될 것이다.

헌법21조 2항에 따르면,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그런데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언론·출판에 대해 검열을 하고 있다(방통위와 별개의 조직이다). 방송심의위원회는 총 9인으로 구성되는데, 대통령 3인을 정하고, 여당이 3인, 야당이 3인을 꾸리게 된다. 하지만 한국은 행정부(박근혜)와 입법부 중 여당(새누리당)이 (분리되어야함에도 실질적으로)분리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현재 방심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새누리당 추천 위원 6인과 야당 추천 위원 3인이라고 보면 된다. 즉, 6:3이기 때문에 방심위의 결정은 정부측에 이롭게 나올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방심위는 2007년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만들어졌다. 정확한 역사는 다음과 같다.

방송심의위원회의 역사
"1981년 3월 17일, 자율심의기관으로 설립되었으며 1987년 방송법의 개정으로 방송위원회가 설립되었다. 2007년 정부조직개편으로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방송통신융합환경에 대비하여 합쳐지며 방송통신위원회가 되었고, 방송위원회 내의 심의부분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 업무가 통합되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탄생하였다.

방통위와는 많은 관련이 있지만 일단 산하기관은 아니다. 말 그대로 독립기구로 위원장 1인, 부위원장 1인, 상임위원 1인 등 3인은 대통령이 위촉한다. 설립 목적은 방송 내용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 통신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올바른 이용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과연? 하지만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있는 만큼 논란도 많은 편이다."- 나무위키

위에서 대통령이 3인을 정한다고 했잖나? 그 3인이 하필이면 또 일반 위원이 아니라 위원장과 부위원장, 상임위원이다. 대통령이 뽑은 3인을 제외하고 일반 위원 6인을 여당과 야당이 사이좋게 나눠서 추천하여 구성하는 것이 방송심의위원회인 것이다. 위원회의 짱 3인을 대통령이 정했으니 위원회의 논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방심위라는 조직의 존재 자체가 정부가 언론에 대해 검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는 헌법 21조에서 천명하고있는 국민들의 헌법적 권리-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KCSC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다


JTBC의 손석희 사장에게 계속 경고장을 날렸던 애들이 바로 방심위이며,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메르스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대응을 겁나겁나 돌려서 풍자라고 하기에도 미안한 풍자를 했을 때 징계를 했던 것도 방심위고, 웹사이트를 Warning.co.kr을 만드는 놈들도 방심위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의 돌격대장이자 악마 1호가 방심위인 것. 

(사족) 참고로 방심위의 회의록은 비공개로 처리된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장관 황우여)는 국정화 교과서 집필진을 비공개로 하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비공개주의는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메르스 환자가 나왔던 삼성서울병원의 존재를 숨겼던 것도 박근혜 정부다. 나도 실명까고 글 쓰는 데, 국정화 집필진 교수들은 쪼다들이라 애들한테 보여줄 교과서를 쓰는 입장임에도 이름을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하다. 나이를 똥꼬로 드셨나? 익명의 교수들이시여, 커밍아웃하신다면 저의 조롱은 취소하겠습니다. 저의 조롱은 당신들이 익명일 때에만 유효합니다. 

헌법 21조 2항에선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이"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를 '허가해서는 안된다'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말은 집회나 결사에 대해 허가제를 도입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그럼에도 2015년 12월 5일 집회에 대해 경찰은 '불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즉, 헌법이 장식이 아니라면 국가의 허락 없이도 집회나 결사를 할 수 있어야한다. 정부가 "안돼!"라고 할 때 "좆까!"라고 해도 어떠한 법적 제재도 당하지 않는 상태가 헌법 21조가 온전히 지켜지고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헌법 37조 2항- 헌법적 권리의 제한

하지만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는 필요하다면 제한될 수 있다. 이는 헌법 37조 2항에 기술되어 있다.

헌법37조
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헌법 37조 2항을 보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라고 되어 있다. 즉,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면 헌법적 권리는 제한될 수 있다고 써놓은 것. 하지만 뒷 부분에서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했으니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인 내용까지는 침해할 수는 없다고 선을 분명히 그어 놓았다. 


그럼에도지만 "본질적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확히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본질적인 내용"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정부나 특정 당이 입법하는 법은 헌법 37조 2항을 들이밀면서 "국가 안보를 위해서다!"라고하며 국민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의 집시법도 37조 2항을 이유로 '변질'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유지되고 있는 대표적인 법이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만 국가보안을 이유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딱히 저 법이 국가보안에 도움이 되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있는 간첩은 못잡고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둔갑시키는 게 국정원 특기잖나? 국가보안법으로 간첩잡았다는 이야기좀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김정일 만세!"를 한다고 딱히 우리나라의 대중들이 거기에 호응할 정도로 취약하지도 않기에 <국가보안법>은 이미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고 봐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불필요하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김정일 만세"로 발생하는 피해가 분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한국 내에서 폭탄 테러 등을 모의하면 관련 현행법으로 얼마든지 처벌하는 것이 가능하다. 굳이 <국보법>을 들이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의 소위 '보수'들은 굳이 현행법으로 처리가 가능할 때도 <국보법>으로 처리하려는 욕망을 숨기지않는다. <국보법>이 국가 안보에는 딱히 도움이 안되지만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쫄게 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이 글을 보고 나를 빨갱이라고 할 사람들이 겁나 많을 것 같으니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마법의 주문을 외워본다. 김일성 개새끼! 김정일 개새끼! 김정은 개새끼! (돼지인가)


37조 2항과 <집시법>

37조 2항에 따르면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지를 위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써 침해될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의 표현과 집회와 결사의 자유 역시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법률로써 제한될 수 있다. "법률로써" 제한한다고 하니 집시법을 보자. 집시법은 37조 2항에서 말하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법률"인 듯 하다. 제목에서부터 스포는 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집시법은 악법이며, 개정되어야한다.

집회를 사전에 신고해야한다는 것의 불합리함

집시법 전문을 모두 옮기는 것은 불필요하다. 하지만 전문을 보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을 듯 하여 링크를 남긴다(클릭). 우리나라는 집회허가제를 채택하고있지는 않지만 그 대신 집회신고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집시법 6조에 기술되어있다. 


집시법 6조
① 옥외집회나 시위를 주최하려는 자는 그에 관한 다음 각 호의 사항 모두를 적은 신고서를 옥외집회나 시위를 시작하기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다만, 옥외집회 또는 시위 장소가 두 곳 이상의 경찰서의 관할에 속하는 경우에는 관할 지방경찰청장에게 제출하여야 하고, 두 곳 이상의 지방경찰청 관할에 속하는 경우에는 주최지를 관할하는 지방경찰청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집회집회신고제는 엄밀히 말하면 집회허가제는 아니다. 집회신고를 할 시에 국가가 "안돼, 돌아가"를 할 수 있다면, 즉, 국가가 특정 시위에 대해 불허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면 집회허가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집회신고제하에서는 국가가 "안돼, 돌아가"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집회신고제는 집회허가제보다는 낫다(굳이 둘 중에 골라야한다면 말이지). 그런데 2015년 12월 5일 집회에 대해 강신명 경찰청장은 '불허'를 했다. 본격적으로 헌법이 '장식'이 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어떤 의미로는 역사적인 순간을 살고있다고 할 수 있겠다.


집회신고제는 '최선'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집회신고제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의 권리를 충실히 보장해주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시위를 할 때 사전에 신고가 필요하게끔 만들어서 '신고가 안된 시위'를 불법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입법자의 의도가 어찌됐건 간에 당국을 집회신고제를 이런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하 <마이너리티 리포트>)


'신고가 안된 시위'를 불법으로 만드는 것은 시위에 불필요한 제약을 두는 것이며, 시위 그 자체의 수를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신고가 안된 시위를 한다고해서 국가안보나 시민들에게 '반드시' 피해가 간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는 시위를 과하게 제약한다고 볼 수 있다. '신고가 안된 시위'가 만약 어떤 피해를 발생시킨다면 관련 현행법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피해를 예측해서 시위를 막을 게 아니라. 이런 집시법 6조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스럽다.


국회의사당과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의 불합리함

우리나라 집시법에 따르면 국회의사당 앞과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할 수 없다. 이 부분은 코미디다. 애초에 시위라는 것이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움직임이고,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 가장 최전선에 있는 것이 국회의 국회의원들과 청와대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사항은 집시법 11조에 기술되어 있다. 


집시법 제11조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 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2. 대통령 관저(官邸),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3. 국무총리 공관. 다만, 행진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
4.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의 숙소. 다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 숙소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
가. 해당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의 숙소를 대상으로 하지 아니하는 경우
나.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다.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하는 경우


앞에선 국회의사당과 청와대만을 다뤘지만, 집시법 11조를 보면 훨씬 많은 곳이 시위 제약 구역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름 집시법의 입법자들은 국회의사당 앞을 '시위 청정구역'으로 만들어서 쾌적한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시위의 진정한 의미를 헤친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가장 귀담아 들어야할 사람들이 있는 공간 앞에서 시위를 못한다는 것은 어떠한 논리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집회, 시위를 하는 자는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

혹자는 시위자들이 폭력적이기 때문에 국회의사당이나 청와대 내의 소위 중요인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법 조항이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중요인사들의 목숨은 중요하다. 하지만 소위 중요인사를 보호하기 위해선 옥외집회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국회의사당 내의 집회-옥내집회-를 금지하거나 시위자들이 절대 못들어오게끔 하는 장치를 만들면 될 일이다. 중요인사가 특정 건물에 들어가고 나오는 중에서 생기는 위험 관리는 중요인사들의 보디가드나 중요인사 전용의 출입구로 카바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헌법적 권리를 침해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말이 안된다고? 말이 된다. 미국을 보자. 



미국은 백악관 앞에서 집회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은 청와대 앞에서 이렇게 시위하는 게 가능할까? 앞서 언급했듯이 불가능하다. 미국이 백악관 앞에서하는 집회를 제재하지 않아서 대통령이 시위자에 의해 폭행을 당하거나 암살을 당한 적이 있을까? 없다. 


미국의 대통령들을 시위자들이 죽인 역사는 없다. 링컨은 1865년 4월 14일에 극장에서 존 부스라는 배우에게 총 맞아 죽었고, 가필드는 1880년에 자기 연설문 써주던 찰스 키토에게 길거리에서 총 맞아서 부상을 입고 2개월 뒤에 죽었고, 매킨리는 1901년 9월 6일에 무역박람회를 가는 도중 레온 촐고츠에게 총탄 두 방을 맞고 죽었고, 케네디는 1964년 11월 22일에 댈러스에서 카 퍼레이드 중에 마법 총알 맞아 죽었다. 대통령의 죽음을 걱정한다면 총기를 규제하는 게 맞다. 


그리고 생각해보니까......우리나라 대통령도 총 맞아 죽었잖아? 박정희를 죽인 김재규는 중앙정보부 부장이었서 총기규제를 들이대기는 애매하긴하지만, 대통령을 죽이는 건 항상 총이었지 시위자였던 적은 없다. 박근혜 당시 의원이 커터칼로 얼굴을 긁혔을 때도 시위자에게 당한 게 아니다. 오세훈 지원 유세 중에 당했지. 이는 보디가드의 보좌 실패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시위자들을 잠재적 범재자로 보는 것은 옳지 않지만, 유력 인사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헌법적 권리를 제약하지 않으면서 유력 인사의 안전을 도모하는 방법은 있으며, 나는 앞서 이를 다뤘다. 그러므로 집시법 11조는 헌법 37조 2항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다. 집회의 권리를 제약할 정도로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가 헤쳐진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사족) 케네디를 죽인 마법의 총알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보시라. 왜 케네디를 죽인 총알이 "마법의 총알(magic bullet)"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는지 설명해놓았다(클릭).




이 글은 "합법인데요?"하는 아해들과 "불법인데요?"라고 하는 아해들을 교화하는 목적으로 쓰여졌으나 별로 성공적일 것 같진 않다.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게끔 쓰려고 나름 애를 썼는데 합법충과 불법충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내용일 것 같다. 글이 길어졌으니 6조와 11조 외에 항목에 대해서는 다음 글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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