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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Nov 30. 2015

처맞을 각오하고 쓰는 한국의 요즘 집회 비판

함께하고 싶은 집회를 위하여

우버 시위

난독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사족을 달지요. 시위 갔다오고 느낀 바를 적은 겁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요? 진보꼰대들은 시위 안나간 사람들 말은 그냥 들을 생각이 없나보지요? 그놈의 자격론으로 뭘 진보하시겠다는건지 한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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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집회장의 촌스러운 음악이 거슬린다. 80년대 이후로 노래가 바뀌지 않은 것 같은 촌스러움이다. 그래서 집회장에 갈 때마다 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받고, 고리타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2. 민중이란 단어가 좋은 뜻이란 건 알겠다. 그런데 사람들이 별로 쓰지 않는단어라는 것, 생소한 단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총궐기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별로 안쓰는 단어다. 거리감이 느껴진다. 뭔가 이마에 천을 둘러야할 것 같은 느낌이다. 투쟁적이다. 너무도 투쟁적이다. 누구 멱살잡고 구석에 끌고가서 졸라 때려줘야할 것 같다.  


3. 청와대로 가자고 한다. 뭘 위해? 가면 뭐함? 청와대엔 말 안통하는 누나만 있을 따름이다. 가봐야 뭐 없다. 최근에 어떤 분이 페이지에 댓글을 남겼다. 권력자의 헤드쿼터이니 점령해야하지 않겠냐는 것. 이런 주장엔 두가지 문제가 있다. 일단 현실적으로 점령이 불가능하다는 것 하나, 점령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 둘. 지배자의 목을 따야한다는 아나키스트들의 문제는 체재 파괴 뒤에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4. 평소에 집회장에 가지 않는 이들도 집회에 매력을 느끼고 참여하게끔해야한다. 지금의 집회는 그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가? 촌스러운 음악과 아무도 쓰지 않는 단어들로 도배한 포스터로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 없다.


5.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들로 인해 모이지 않았냐고? ㅈ까는 소리다. 사람들이 모였던 것은 그냥 어떤 이슈에 빡쳐서 모였던거지 촌스러운 음악과 포스터의 구호 때문에 모인 게 아니다. 즉, 날짜만 홍보해줬어도 사람들은 모였을 거다.


소싸움을 반대하는 시위


6. 촌스러운 음악과 '민중총궐기'같은 단어들은 시위에 투쟁적인 성격을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연단에 나와서 "동지 여러분!"으로 끝을 맺는 아제들의 발언도 시위에 투쟁적인 성격을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즉, 우리나라에서 시위는 '투쟁'의 성격이 강하다.


7. 시위는 반드시 투쟁적이어야하는가? 집회와 시위가 헌법에 의해 보장받는 이유는 그것인 표현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함의하는 것은 집회나 시위가 표현을 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라는 것이다.


8. 언론사가 더 쉽고 빠르게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포토뉴스라는 형식을 채택하는 것처럼 집회나 시위를 기획함에 있어서도 무엇이 더욱 효과적인 표현방식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한다. 그런데 한국의 집회는 언제부턴가 변화를 멈추었다. 언제부터인진 모르겠다. 다만 변화가 멈췄으며, 변할 생각도 없어보인다.


9. 보통 우리나라의 집회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1)모인다. (1.1)모이는 중에 촌스러운 음악 (2)연단에서 아제들이 "동지 여러분!"한다. (3)박수 (4)연단의 어떤 아제의 이동 제안(보통 청와대로) (5)이동 (6)차벽 (7)물대포 (8)차벽 (9)물대포 (10)차벽 (11)물대포 (12)버스 (13)차벽 (14)물대포 (15)연행 (16)연행 (17)연행. 아마 12월 5일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아베의 안보법에 반대하는 일본 청년들의 시위


10. 이 고리를 없애려면 ‘연단’을 없애야한다. 집회를 통제하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집회는 타국의 집회와는 다르게 거대한 연단이 있고, 그 연단에 선 자들이 집회자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해낸다. 그렇게 되다보니 우리나라의 집회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담기기보다는 연단 아재들의 목소리로 아젠다들이 축소된다. 그리고 그 아제들은 이마에 흰 천을 두르고 ‘투쟁’을 외친다. 집회의 성격마저 규정된다.


11. 물론 집회에는 ‘투쟁’을 외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나는 그들이 그 자리에 없어야된다는 주장을 하는게 아니다. 하지만 ‘투쟁’을 외치지 않으면서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연단은 그런 자들의 목소리를 의도를 했건안했건 결과적으로 차단하게 된다. 그렇게 아젠다는 축소되고, 집회의 성격도 특정한 방향으로 포지셔닝되고, 결과적으로 집회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 거리감이 느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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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내가 평소에 시위 안나갔으면 이런 글 쓰지도 않습니다. 몇번 나가보고 느끼는 게 있어서 답답하니까 쓰는거지. 시위 안나가려고 이런 글을 쓴다는 식으로 말하는 인간들이 참 많군요. 시위 안나가봤는데 내가 민중가요를 트는 진 어케암? 내가 시위에 관심이 없으면 이런 글 쓰지도 않아요 꼴통아저씨들아.


설령 내가 시위를 안나가는 사람이라 치더라도 시위 안나가는 사람들을 댁들이 그런 식으로 취급하니까 답이 없는거야. 내용이 마음에 안들면 내용을 비판해야지 무슨 자격론을 들이대? 한심한 꼰대들 같으니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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