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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l 03. 2019

허브에세이 - 노니

노니에 대한 환상을 깨드립니다.

이따금 제기동에 가서 북적이는 약령시장을 보면 조용히 흐뭇하다. 마치 K팝이 한창 유행 중인 외국을 여행하는 기분이랄까. 갖가지 한약재를 내놓고 파는 상인들과 그걸 사기 위해 모인 손님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되뇐다. ‘한방산업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바로 그쪽 전문가예요.’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가는 곳마다 매대 중심에 노니라는, 한의사로선 듣도 보도 못한 물건이 자리잡고 있었다. K팝 차트 최상단에 외국 가수가 떡하니 올라 있는 셈이다. 그 좋다는 한약재들 다 제치고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어 상인에게 물어보았다. “이게 어디에 좋은 거예요?” 답변은 예상한 대로였다. “다 좋아요. 만병통치예요.”


한의사라고 해서 세상의 모든 동식물에 대해 그걸 먹었을 때의 효능을 다 알 수는 없다. 대신 기존에 알고 있던 한약재와 인체의 생리·병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응용해 이해하는 것이 한의사의 장기다. 노니가 유행이라면 어디에 어떻게 좋은지 알아보고 필요한 환자에게 권하는 것이 한의사의 도리다. 도리를 다하기 위해 장기를 살려본다.


노니는 남태평양 지방에서 수천 년 전부터 민간요법으로 사용된 열대과일이다. 가까이는 동남아에서도 많이 난다. 인터넷에 노니를 검색해보면 엄청나게 많은 효능이 나온다. 항염·항암효과, 세포 재생 활성화, 면역력 증가, 체중 감량 효과 등. 이게 다 사실이라면 만병통치약이 맞다.


노니를 동양에서는 어떻게 봤을까. ‘파극천’이라는 이름으로 동의보감에 실려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노니의 한자 이름은 ‘해파극’으로, 파극천과는 다른 식물이다. 해파극은 동의보감에도, 본초강목에도 나와 있지 않다. 한약으로 쓰이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중국 바이두에는 이렇게 나온다. ‘해파극은 인체 세포조직의 정상기능을 유지하게 하고, 면역력을 증강시키며, 소화를 돕고, 생리기능을 조절하며, 잠을 잘 자게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살이 빠져 아름답게 해준다.’ 만병통치약 맞다. 이게 다 사실이라면.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까. 간단하다. 제도권의 반응을 보면 된다. 노니의 수많은 효능 가운데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인정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 한국의 식약처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니는 약은커녕 건강기능식품 축에도 못 낀다. 별 대단한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하긴 효과가 있었으면 진작에 한약으로 쓰였겠지.


“노니가 그렇게 좋다던데, 제가 먹어도 될까요?” 환자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해야겠다.


“나라에서 인정해준 효과는 하나도 없습니다만, 취향에 맞으시다면 드셔도 됩니다.” 효과 좋은 한약과 기능성 식품이 수두룩하다. 취향이 아니라면 굳이 노니를 먹을 이유는 없다.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01211454181&cod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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