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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l 03. 2019

허브에세이 - 칡

칡 뿌리 갈근은 '특급 소방수'

가까이 살아 자주 뵙는 숙부님께서 며칠 전 내게 물으셨다.  

“아는 사람이 몸에 좋다고 칡즙을 보내줬는데, 이거 먹어도 되겄어? 이번에 캔 거랴.”

마침 칡을 캐기에 제철이다. 받으신 칡즙을 보니 고풍스러운 알루미늄 파우치에 담긴 것이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삼촌 체질과 상태에 잘 맞으니 드셔도 좋쥬. 저도 하나 주셔유.”

한 포 뜯어 마셔보니 조금도 쓰지 않다. 어릴 적 목욕탕에서 아버지께 한 모금 얻어먹을 땐 쓰디썼는데. 그 사이 나도 어른이 되었다.


칡은 스스로 서지 않고 다른 식물이나 물체에 의지해 자라는 덩굴식물이다. 생육이 왕성하기 때문에 캐지 않고 놔두면 온 숲을 뒤덮을 정도로 자란다. 일찍이 이방원도 그 왕성함을 잘 알았는지, 정몽주를 회유하며 칡을 이야기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그때는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져도 괜찮았다. 칡이 쓸모가 많았던 까닭이다. 줄기는 껍질을 벗겨 섬유를 짜는 데 쓰고, 뿌리는 구황작물로 먹었다. 그러니 알아서 다 캐 갔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경제가 발전해 더 이상 칡으로 식량을 대신하지 않게 된 이후, 산에 얽어진 칡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산에선 다른 나무를 감아 올라 죽게 만들고, 길가에선 교통 표지판을 뒤덮어 운전자를 당황케 한다. 그래서 산림청 및 각 지자체는 엄청난 예산을 퍼부어 칡 제거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쯤 되면 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다. 그래. 칡이 얼마나 좋은 약초인지 알리는 거다.


칡은 한자로 갈(葛)이다. 뿌리를 갈근(葛根)이라 하여 한약재로 쓴다. 식량 대신 먹었고 즙을 내어 마시는 바로 그 부위다. 학부시절 본초학 교수님은 갈근을 ‘특급 소방수’에 비유했다. 나는 한 줄기 시원한 물을 떠올린다. 성질이 시원해 몸을 차갑게 식혀주니 열감기에 좋다. 갱년기의 안면홍조에 좋고 목마름을 해소한다. 고혈압과 당뇨에도 좋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어 머리가 아프고 뒷목이 당길 때에도 좋다. 두드러기를 비롯한 피부질환에도 좋다. 술의 독을 푸는 효능도 있는데, 이때는 뿌리인 갈근보다도 꽃인 갈화(葛花)가 더 좋다. 효과가 워낙 좋아 숙취해소제의 원료로 많이 쓰인다. 참 여러모로 유용한 약재다.


칡과 등나무는 모두 덩굴식물이지만 감아오르는 방향이 다르다. 서로 얽히면 까다롭게 뒤엉켜 풀기가 어렵다. 이런 상태를 ‘칡 갈(葛)’에 ‘등나무 등(藤)’을 붙여 ‘갈등’이라 한다. 칡이 얼마나 좋은 약재인지 알리기로 해놓고는,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을 굳이 덧붙여야 하나 조금 갈등이 된다. 그러나 의료인은 늘 조심해야 한다. 나는 결국 언제나처럼 몇 마디를 더한다. “칡은 성질이 차니 몸이 냉한 사람에게는 좋지 않습니다. 약성이 있는 만큼 오래 먹으면 다양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되도록 한의사와 상의하고 드셔야 합니다.” 휴. 이제야 마음이 편하다. 갈등이 해소되었다.


오래 앉아 글을 썼더니 목이 마르고 뒷목이 뻐근하다. 숙부님께 칡즙을 하나 더 얻어 마셔야겠다.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03041441311&cod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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