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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l 03. 2019

허브에세이 - 호두

대보름 부럼에도 한약재가 있습니다.

그룹 대화방에 친한 동생이 뜬금없는 메시지를 띄웠다. “여러분!” 한 친구가 금세 답했다. “응?” 동생의 메시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어졌다. “오빠 당첨! 내 더위 사가라!” 그제야 알았다. 아. 오늘이 대보름이구나. 더위를 이제 온라인으로도 파는구나.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한 달 걸린다. 그 반을 보름이라 한다. 그만큼의 기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음력으로 열닷새째 날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름날은 후자의 동의어다. 그 날 뜨는 크고 둥근달을 보름달이라 부른다.


새해 첫 달의 보름이 정월 대보름이다. 양력 날짜가 매번 바뀌는 데다 공휴일이 아니다 보니 비슷한 시기의 밸런타인데이만큼도 챙기지 않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꽤 중요한 명절이었다. 더위를 팔고, 오곡밥을 지어 먹고, 귀밝이술을 마시고, 쥐불을 놓는 것이 모두 정월 대보름의 풍습이었다. 부럼깨기를 포함해서.


부럼은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깨물어 먹는 견과류를 말한다. 아침을 먹기 전에 이것을 까먹으면 한 해 동안 부스럼을 앓지 않는다고 했다. 부스럼은 피부에 나는 온갖 종기를 통틀어 일컫는다. 그러나 견과류가 종기 예방에 특별히 좋다는 의학적 근거는 없다. 가만있자. 보름, 부럼, 부스럼. 음운 배열이 참 유사하다. 어쩌면 우리가 ‘삼월 삼일’에 삼겹살 데이라며 돼지고기를 구워 먹듯이, 조상들은 대보름날 부스럼을 예방한답시고 부럼을 깨물어 먹었던 게 아닐까.


본론으로 넘어가자. 부럼으로는 땅콩, 호두, 잣, 밤 따위가 쓰였다고 하는데, 이 중에 오늘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호두다. 호두는 고소한 맛 덕에 견과류 중에서도 인기가 많다. 포만감을 오래 유지시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혈관 건강에도 좋다. 모양이 뇌를 닮아 두뇌에 좋다는 설도 있는데,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사실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다. 호두는 본초학 교과서에 버젓이 올라 있는 엄연한 한약재다. 물론 동의보감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한자로는 호도(胡桃)라고 쓴다. 앵두와 자두가 각각 한자로 앵도(櫻桃), 자도(紫桃)인 것과 비슷하다. 본초학 분류상 보양약(補陽藥)에 속한다. 양기를 북돋워준다는 의미다. 대개 남자한테 좋아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약이다. 남자구실을 잘 못할 때, 허리가 아플 때 쓴다. 숨이 차고 기침할 때 좋고, 변비에도 좋다.


호두, 밤, 도토리 따위의 속껍질을 보늬라고 한다. 호두의 보늬는 떫은맛이 난다. 대단한 영양성분이 들어 있진 않으니 취향에 따라 벗겨 먹어도 좋다.


다이어트에 좋다는 호두지만 열량은 100g당 654㎉로 상당히 높다. 많이 먹으면 당연히 살이 찐다. 기름이 많아 설사도 유발한다. 뭐든 적당히 먹는 것이 좋다.


온라인으로도 더위를 파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나는 한술 더 떠서 독자에게 더위를 팔아볼까. 다시 생각해보니 불가능하다. 이 글이 읽힐 때엔 이미 대보름이 지난 다음일 테니. 올 여름 더위는 스스로 감당해야겠다.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02251441271&cod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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