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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l 03. 2019

허브에세이 - 생강

어머니는 생강차가 좋다고 하셨어.

“아들, 밥은 먹었어? / 좀 이따 먹을라구유. / 아이고, 아직도 안 먹었어? 삼시 세끼 제때 챙겨 먹어야 건강햐. / 어우, 그려? / 그럼. 그리구 테레비에서 봤는데, 생강차가 감기 예방에 그렇게 좋댜. / 그렇댜? / 겨울이니까 많이 마셔. / 알겄어유.”

효심은 모정을 이기지 못한다. 나이 든 어머니가 오히려 젊은 아들 안부를 묻는다. 밥을 먹었는지 확인하고, 건강에 대해 조언한다. 그래도 그렇지, 의료인에게 건강 조언이라니. 여러 번 말씀드렸다. “어머니. 아들 한의사여.” 소용이 없었다. 나는 차라리 고분고분한 아들이 되기로 했다. “그려? 알었어유.”


너무 익숙한 식재료여서 한약재로도 쓴다는 점이 신기한 약초가 있다. 생강이 대표적인 예이다. 주방 냉장고 안에 생강이 없는 집이 있을까? 김치 양념에 넣으며, 국을 끓일 때, 고기나 생선의 잡내를 없앨 때에도 쓰는 생강. 조리도구 이름에도 들어가 있을 정도다. 과일이나 무, 생강 등을 갈 때 쓰는 ‘강판’의 강 자가 ‘생강 강(薑)’ 자다. 찻집에선 우려내어 차를 끓이고, 장어구이집에선 채를 썰어서, 일식집에선 식초에 절여 곁들임 야채로 내놓는다. 빵집에서는 생강을 넣어 진저브레드를 만들고, 바에서는 생강이 든 진저에일로 칵테일을 만든다. 생강의 역사는 깊어서 이미 <논어>에도 등장한다. 공자는 생강을 가려내지 않고 먹었다(不撤薑食).


생강은 ‘살 생(生)’ 자에 생강 강 자를 쓴다. 살아있어서 땅에 심으면 싹을 틔운다. 본초학적으로는 발산풍한약(發散風寒藥)에 속한다. 몸 안에 들어온 바람과 추위의 나쁜 기운을 몸 밖으로 흩뜨리는, 쉽게 말해 감기약이다. 으슬으슬 춥고 기침과 가래가 나오는 초기 감기에 좋다. 아울러 위장을 따뜻하게 하고 구역질을 멎게 하여 소화불량과 역류성 식도염에 좋고 임산부 입덧에도 효과가 있다. 생선을 해독시키는 효능도 있다. 장어집과 일식집에서 많이 내놓는 까닭이다. 이렇게 좋은 생강차를 권해주시다니. 어머니 은혜는 실로 가없다.


<동의보감>에는 ‘강삼조이(薑三棗二)’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첩약을 달일 때에 생강 세 쪽과 대추 두 알을 같이 넣으라는 말이다. 생강과 대추가 약의 자극성을 완화하고, 위장을 따뜻하게 해 약의 소화 흡수를 돕기 때문이다. 쓰이는 빈도가 약방에 감초 못지않다.


생강을 말리면 건강(乾薑)이 된다. 성질이 더욱 뜨거워지고 쓰임새도 달라져서 생강과 다른 약재로 분류한다. 양기가 부족해 속이 차고 손발이 시리며 맥이 미약한 사람에게 좋다. 코피나 하혈을 멎게 하는 데에도 쓰인다.


그 어떤 약초도 언제나 누구에게나 무조건 좋을 수는 없다. 공자는 생강을 가려내지 않고 먹었지만, 많이는 안 먹었다(不多食). 생강의 성질이 뜨거워 땀을 내게 하니, 몸에 열이 많고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은 꺼리는 것이 좋다. 바로 나 같은 사람이다. 어머니 말씀이 늘 옳지는 않다.


오늘 저녁엔 내가 먼저 전화드려 안부를 여쭤야겠다. “어머니. 식사는 하셨어유?”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02181532361&cod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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