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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l 03. 2019

허브에세이 - 진피

겨울은 귤의 계절이죠.

남북 화해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즈음. 북에서 보낸 송이버섯에 대한 응답으로 청와대에서 귤을 보냈다는 기사를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제주도가 있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는 귤을 키울 곳이 없잖은가? 그러니 얼마나 귀할까. 우리에겐 흔하지만 상대에겐 귀하니, 선물 감으로 제격이다.  


겨울에만 먹는 과일임에도 불구하고, 귤은 사시사철 유통되는 사과를 제치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많이 먹는 과일 1위다. 별로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그 새콤달콤한 맛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까먹기는 또 얼마나 편리한가. 그리하여 나는 겨울이 오면 모임에 갈 때마다 귤을 산다. 어느 차갑던 날, 쉬지 않고 귤을 먹는 나를 보며 지인이 했던 말.


“한의사가 저렇게 열심히 먹는 걸 보면, 귤이 몸에 좋긴 좋은가 봐.”


그때는 귤을 먹느라 답을 못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귤이 몸에 좋기 때문에 먹은 것이 아니다. 그냥 맛있어서 먹었다. 한의사도 사람이다.


귤(橘)이 한자어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밀감(蜜柑)도 순우리말이 아니다. ‘미깡(みかん)’은 밀감의 일본식 발음이다. 귤에 비타민C가 풍부한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열량은 100g당 39㎉로 사과(57㎉)나 포도(60㎉)에 비해 낮다. 그러나 다이어트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무심코 먹다 보면 과량을 섭취하기 쉬운 까닭이다. 내가 자주 범하는 실수다. 귤에 붙어 있는 하얀 실같이 생긴 것은 귤락이라 한다. 식이섬유와 비타민P가 풍부하니 떼지 않고 먹는 것이 좋다.


귤을 다 먹고 나면 껍질이 남는다. 여기서 퀴즈. 귤껍질은 일반 쓰레기인가, 음식물 쓰레기인가. 이 난해한 퀴즈는 귤껍질을 이미 쓰레기로 규정하고 있어서, 한의사에겐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귤껍질은 한의원에서 아주 많이 쓰는 훌륭한 한약재이기 때문이다. 진피와 청피가 그것이다.


진피는 묵을 진(陳) 자에 껍질 피(皮) 자를 쓴다. 우리가 먹는 성숙한 귤의 껍질로, 오래 묵을수록 좋은 약재다. 청피는 푸를 청(靑) 자를 쓴다. 덜 익어서 색이 푸른 귤의 껍질이다. 둘 다 기(氣)를 다스리는 약재다.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아 기가 막힐 때가 있다. 기가 막히면 입맛이 없고 소화가 잘 안되며 여기저기 아프다. 헛구역질이 나거나 기침을 하고 가래가 끓기도 한다. 진피와 청피가 바로 이럴 때 쓰는 약재다. 기를 잘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치료의 근본이니 참 쓸모가 많다. 단일 약재로도 쓰고, 다른 약재와 조합해서 처방하기도 한다. 들어가는 처방이 너무 많아서 이루 나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먹고 남은 귤껍질을 끓여 먹지는 말자. 시중에 유통되는 귤의 껍질에는 농약과 왁스가 발라져 있다. 그대로 먹었다가는 득보다 실이 크다. 한의사인 나도 귤만 먹고 껍질은 다 버린다.


퀴즈에 대한 답을 할 때가 왔다. 환경부에서는 공식적으로 귤껍질을 음식물쓰레기로 분류했다. 귤을 다 먹었으면, 껍질은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담아 배출하자.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02111555581&cod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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