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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l 03. 2019

허브에세이 - 계피

시나몬 물 유행에 즈음하여

갑자기 시나몬 물이 인기다. 한 방송에서 유명 격투기 선수가 식욕조절에 좋다고 언급하면서다. 계피 물도, 시나몬 워터도 아닌 시나몬 물이라. 거 참 흥미로운 조어다. 몇 년 전 유행했던 말이 떠오른다.  

“카푸치노에 계피 대신 시나몬 넣어주세요.”


누가 했는지 모를 이 말이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대. 계피는 촌스럽고 시나몬은 우아해 보였나 봐. 똑같은 건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런데 웹에서 시나몬을 검색하면 놀라운 사실이 나온다. 시나몬과 계피는 엄연히 다르며, 커피에는 원래 계피가 아닌 시나몬을 넣어야 맞다는 것이다. 이런 반전이 있나.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계피는 ‘계수나무 계(桂)’ 자에 ‘껍질 피(皮)’ 자를 쓴다. 한자로는 계수(桂樹)나무의 껍질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육계(肉桂)나무의 껍질을 쓴다. 벌써 혼란스럽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토끼 한 마리와 함께’ 서식 중인 계수나무는 육계나무와 전혀 다른 식물이다. 이름만 비슷할 뿐, 계피와는 무관한 수종이다.


<식품공전>에는 계피의 다른 이름으로 시나몬이 명시돼 있다. 그러니 제도적으로 계피와 시나몬은 같다. 그런데 왜 다르다는 말이 나왔을까.


계피가 속해 있는 녹나무속(Cinnamomum)에는 육계나무(Cinna-momum cassia) 말고도 실론계피나무(Cinnamomum verum)가 있다. 서양에서 이 둘을 구분할 때, 실론계피나무는 ‘시나몬’이라고 하고, 육계나무는 ‘카시아’라고 부른다. 둘은 동속이종 식물이니, 귤과 오렌지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러면 계피(카시아) 대신 시나몬을 넣어달라는 말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둘을 구분하는 것은 남의 나라 얘기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시나몬은 전부 계피(카시아)라고 봐도 무방하다. 선수가 마신 시나몬 물도 아마 계피를 넣어 달였을 것이다. 실망할 필요 없다. 계피는 좋은 한약재니까.


계피는 커피숍만큼이나 한의원에서도 많이 쓰인다. 유명한 처방인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에도 계피가 들어간다. 본초학적으로는 속을 따뜻하게 데우는 온리약(溫裏藥)에 속한다. 비위를 데우며, 몸에 쌓인 냉기를 제거하고, 혈맥을 통하게 한다. 동의보감에는 뱃속이 차갑다 못해 아플 때와 손발이 찰 때 계피를 쓰라고 나온다. 허리와 무릎이 시큰할 때, 남성의 양기가 부족할 때에도 쓴다. 여성의 아랫배가 차서 생긴 생리통과 생리불순에도 좋다.


수정과에 생강과 계피가 들어간다. 둘 다 성질이 따뜻한 약재니, 수정과는 몸이 찬 사람에게 좋은 음료다. 후식으로 수정과를 내놓는 삼겹살집이 있다. 성질이 찬 돼지고기를 익혀 먹은 뒤 성질이 따뜻한 수정과를 식혀 마신다. 조합이 절묘하다.


계피에 이렇게 다양한 효능이 있지만, 아쉽게도 식욕억제 및 다이어트와 관련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심지어 ‘시나몬’인 실론계피나무는 연구 결과 식욕억제 효능이 없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니 살 빼려고 시나몬 물을 마실 필요는 없다. 어쩌면 격투기 선수들이 체험한 체중감량 효과는 그들의 강인한 의지 덕분이 아닐까.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03181410581&cod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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