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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l 03. 2019

허브에세이 - 부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요즘엔 어딜 가도 30~40대 미혼남녀가 많다. 내가 즐겨 가는 한 모임도 그렇다. 물론 예외도 있으니, 이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누나는 이른 나이에 결혼해 벌써 두 딸을 다 키우고도 40대다. 그래서일까? 미혼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 “야. 너넨 대체 언제 결혼하려고 그래.”  

기죽을 미혼들이 아니다. “에이. 요즘에 비혼인구가 얼마나 많은데….”

“그럼 연애라도 좀 해라. 응? 진정한 사랑을 해봐야 할 거 아니냐.”

진정한 사랑? 갑자기? 궁금해서 물었다. “누나, 진정한 사랑이 뭔데?” 누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아무래도 담을 넘어봐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지.” 담을 넘는다니. 민망하게.


별명이 월장초(越牆草)인 식물이 있다. 담을 넘게 해준다는 약초다. 다른 별명으로는 양기를 일어나게 해서 기양초(起陽草), 양기를 굳세게 해서 장양초(壯陽草), 소변을 보면 벽이 무너진다 하여 파벽초(破壁草), 운우지정을 나누면 집이 무너진다 하여 파옥초(破屋草) 등이 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졌으니 얼마나 귀한 약초일까? 의외로 조금도 귀하지 않다. 바로 부추다.


부추는 지역마다 이름이 다르다. 강원도에선 ‘분추’, 경상도와 충북에서는 ‘정구지’라고 부른다. 봄이면 어머니께서 밭에 나가 정구지를 직접 베어 오시던 기억이 난다. 충남은 ‘졸’, 전라도는 ‘솔’이라 부르고, 경남과 전남의 접경지에서는 ‘소불’, 제주도에서는 ‘세우리’라고 한다. 전국 각지에서 흔히 볼 수 있었기에 지역별로 다양한 이름이 붙었다. 식용으로도 널리 쓰였다. 부추전, 오이소박이, 돼지국밥, 닭한마리칼국수. 써놓고 보니 다 맛있는 것들이다.


혹시 파와 부추가 비슷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정상이다. 파와 부추는 같은 부추속에 속하는 친척뻘이다. 불교에서 금하는 오신채(五辛菜·다섯 가지 매운 나물) 중 무릇을 제외한 마늘, 파, 부추, 달래가 모두 부추속이다. 왜 스님들께 부추속 나물을 먹지 말라 했을까. 혹시 담을 넘고 싶어질까봐 그랬을까.


<동의보감>에는 부추 잎이 설사와 어혈에 좋다는 말은 있어도, 담장과 관련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부추의 진짜 약용부위는 잎이 아닌 씨앗이다. ‘부추 구(韭)’ 자에 ‘씨 자(子)’ 자를 써서 ‘구자(韭子)’라고 한다. 본초학 분류상 보양약(補陽藥)에 속한다. 대를 잇는 것이 중요하던 시절에 나이가 들도록 자식을 얻지 못한 남자에게 처방했다. 양기가 위축되어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더라도 단단하지 않은 것을 치료한다. 소변이 자주 마려우며 보고 나도 시원하지 않을 때 써도 좋다. 여성의 냉에도 좋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구자는 양기를 북돋워주는 만큼 정혈을 소모시킨다. 무난한 약재가 아니니 반드시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복용해야 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부추씨는 식용이 아닌 재배용이다. 그러니 씨앗은 땅에 양보하고, 대신 이파리를 먹자. 마침 지금이 제철이다. 봄 부추는 사위도 안 준다지 않는가. 아마 장인이 먹기 바빴으리라.


요즘엔 담이 있는 집이 잘 없다. 담을 넘어봐야 진정한 사랑이라면, 요즘 사람은 당최 사랑을 해볼 수가 없다. 시대 변화에 맞춰 ‘도어록 비밀번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랑’은 어떨까. 그래. 살면서 그런 사랑 한 번쯤 해봐야지.


http://weekly.khan.co.kr/khnm.html?www&mode=view&art_id=201903251529181&dept=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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