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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l 03. 2019

허브에세이 - 더덕

더덕은 양유근. 사삼은 잔대.

“근데, 더덕은 어디에 좋아?”


사람 만나길 좋아하는 나에게 제주 여행의 꽃은 언제나 게스트하우스다. 낯선 여행자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그날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날 일정을 공유하는 경험은 뭍에선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니. 그래서 이번에도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어느 날 저녁식사와 함께 시작된 술자리가 무르익던 즈음, 부천에서 여행 온 청년이 아껴둔 더덕주를 꺼냈다. 한 잔씩 나누어 향을 맡고 맛을 보며 음미하던 찰나, 같이 있던 내 지인이 물었다. 더덕이 어디에 좋으냐고.


예로부터 사용된 식재료의 익숙한 순우리말 이름에 한약명이 바로 대응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더덕이 그랬다. 더덕을 약으로 쓰는지, 쓴다면 한자로 무엇인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은 준비하는 동물이다. 더덕주 이야기가 나올 때 이미 휴대폰을 꺼내 조용히 검색해 보았다. 지식백과와 국어사전이 말하길, 더덕은 사삼(沙蔘)이란다. 그래, 사삼은 내 잘 알지.


“더덕을 한의원에서는 모래 사(沙) 자에 인삼 삼(蔘) 자를 써서 사삼이라 불러. 인삼처럼 좋은 약재인데, 인삼과 달리 찬 성질이야. 열 나고 기침할 때 좋지. 진액을 보충해주는 약이어서, 목이 자꾸 마르고 입이 건조할 때에도 좋아. 당연히 몸이 찬 사람에겐 맞지 않고.” 듣는 사람들의 눈이 커졌고, 나는 어깨를 으쓱댔다.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 ‘이번엔 더덕 이야기를 글로 써볼까’ 하며 본초학 책을 펼쳤다가 깜짝 놀랐다. 더덕의 한약명은 ‘양유근(羊乳根)’인데, 사삼으로 잘못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삼은 더덕이 아닌 잔대의 뿌리를 써야 맞단다. 그렇다면 나는 틀린 이야기를 하며 뽐낸 셈이다. 부끄럽다. 이 지면을 빌려 실수를 바로잡는다.


잔대는 더덕과 마찬가지로 순우리말이다. 이름이 생소한 이유는 더덕만큼 널리 활용된 식재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약성이 강해 오히려 약재로 많이 쓰였다. 내가 설명한 사삼의 효능이 바로 잔대의 것이다.


더덕은 약재라기보다 채소에 가깝다. 예로부터 무치고, 굽고, 튀기고, 절이고, 버무려 밥상에 올렸다. 뿌리를 자르면 양의 젖과 같은 즙이 나온다고 해서 양유근이라고 하지만, 양유근으로 쓰이기보다는 사삼으로 오용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심지어 <동의보감>에도 사삼은 더덕이라 쓰여 있다. 허준도 틀렸었다니,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둘은 생김새와 효능이 비슷해서 오용될 수 있었다. 둘 다 초롱꽃과에 속하고, 뿌리가 삼처럼 길게 자라며, 폐를 촉촉하게 적셔 기침을 멎게 한다. 효력이 더 강한 것은 잔대여서, 한의원에서는 잔대를 약재로 쓴다. 대신 더덕에는 유즙 분비를 촉진하는 효능이 있으니, 수유모가 먹으면 좋다.


한의사인 나도 잔대 맛은 모른다. 그러나 더덕 맛이 고기처럼 좋은 것은 안다. 게다가 더덕은 지금이 제철이다. 가뜩이나 미세먼지가 심한 요즘, 폐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더덕을 밥상에 올려보면 어떨까.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04011459101&cod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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