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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l 03. 2019

허브에세이 - 목련

코에 좋은 목련의 꽃봉오리

앞집에 목련이 핀다. 꽃이 피려면 뿌리 내릴 땅이 있어야 한다.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마당 있는 집에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앞집은 서울인데도 마당이 있다. 그 땅 위에 목련 두 그루가 자란다. 키가 빌딩처럼 커서 담장 밖에서도 다 보인다. 매년 이맘때면 나무 꼭대기까지 하얀 꽃이 한가득 핀다. 나는 그 우아하고 고귀한 자태를 보며 봄을 즐긴다. 좋은 이웃을 둔 덕이다.


목련은 나무 목(木) 자에 연꽃 련(蓮) 자를 쓴다. 나무 위에 피는 연꽃이란 의미다. 목련은 아주 원시적인 식물로, 지구상에 벌과 나비가 나타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다른 나무에 비해 유난히 별명이 많다. 나무 위에 피는 난초 같다고 목란(木蘭), 꽃이 북쪽을 바라보고 피어서 북향화(北向花), 봄을 기다리는 꽃이라 하여 망춘화(望春花), 꽃봉오리가 붓처럼 생겼다고 목필(木筆), 꽃봉오리에 털이 있는 게 마치 복숭아 같다고 후도(侯桃). 별명들을 가만 보면 공통점이 있다. 꽃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이 꽃을, 엄밀하게는 피기 전의 꽃봉오리를 한약재로 쓴다. ‘신이’라는 약재다. 매울 신(辛) 자에 오랑캐 이(夷) 자를 쓴다. 매운 오랑캐라니, 너무 엉뚱한 이름이어서 그 유래를 찾아보았다.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머리가 아프고 코에서 비린내 나는 고름이 흘러나오는 괴상한 병에 걸렸는데, 어떤 의사도 그를 치료하지 못했다. 냄새가 지독해 주위 사람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피할 지경이라, 진씨는 자살할 생각으로 산속에 들어갔다. 그런데 산에서 마주친 나무꾼이 그를 만류했다. “천하가 이렇게 넓은데, 어찌 멀리서 의사를 찾아볼 생각은 않고 귀한 목숨을 내던지려 하십니까.” 그 말을 들은 진씨는 의사를 찾아 떠났다. 어느 오랑캐 마을에 당도한 진씨. 그곳에서 만난 의사에게 증세를 호소하자, 의사는 자신의 집 앞 나무에서 붓처럼 생긴 꽃봉오리를 따와 처방해 주었다. 그 꽃봉오리를 보름 동안 달여 마시니 진씨의 병이 다 나았다. 진씨는 그 나무의 씨를 갖고 고향에 돌아와 집 뒤뜰에 심었다. 몇 년 후 꽃이 나기 시작했고, 진씨는 그 꽃봉오리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다. 사람들이 그 약의 이름을 묻자, 진씨는 신해년(辛亥年)에 오랑캐 의사에게 치료받았음을 상기하며 ‘신이(辛夷)’라고 답하였다.


신이라는 이름이 정말 이렇게 지어졌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으나, 이 이야기는 적어도 신이의 효능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시한다. 진씨가 앓았던 병은 흔히 축농증이라 부르는 부비동염에 가깝다. 코막힘, 지속적인 누런 콧물, 두통, 후각 감퇴 등이 주요 증상이다. 이런 코 질환에 신이가 잘 듣는다. 이름에 매울 신(辛) 자가 들어가서인지 맛이 맵고, 성질은 따뜻하다. <동의보감>에는 신이의 효능에 대해 ‘코가 막힌 것을 뚫어준다’고 나와 있다. 달여 마셔도 좋고, 연고로 만들어 코 점막에 발라도 좋다.


신이를 약으로 쓰려면 꽃이 피기 전에 따야 한다. 꽃이 핀 다음엔 효과가 없다. 나는 앞 집 식구들이 아주 건강하길 바란다. 행여 콧병 같은 괴질은 더더욱 안 걸리길 바란다. 내년 이맘때에도 하얀 목련꽃을 볼 수 있길 희망한다.

http://www.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04081522291&cod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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