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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l 03. 2019

허브에세이 - 홍삼

한의사가 홍삼과 친하지 않은 이유

주말에 모임이 있었다. 나는 술을 좋아해 자주 마시지만 잘 마시지는 못하는 까닭에, 주당(酒黨)이라 하기엔 모자람이 있다. 막차가 끊기기 전에 귀가하는 깔끔한 술자리가 내 주량엔 맞다. 그러나 이 모임엔 나 빼고 다 주당이라, 모였다 하면 밤새는 게 예사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직접 만든 숙취해소제를 챙긴다. 사람들도 그걸 알아서, 술에 취했다 싶으면 으레 나를 찾는다. 그런데 그 날은 먼저 나온 물건이 있었다. 정 많은 형이 준비한 ‘홍삼 스틱’.  

“너희들 이거 먹고 술 먹어 봤어? 그럼 진짜 안 취한다. 오다가 들른 편의점에 있길래 사 왔지.”


아. 한의사 앞에서 홍삼이라니. 형은 한의사와 홍삼의 관계를 모르는구나. 더군다나 나는 체질상 홍삼이 안 맞다. 그렇다고 선의를 마다할 수야 있나. 그래, 오랜만에 한 포 먹지 뭐. 쭉 빨아먹으니 먹기 편하고, 무얼 첨가했는지 맛도 달다. 이러니까 잘 팔리지.


건강의 유지와 증진을 위해 먹는 식품을 폭넓게 건강식품 혹은 건강보조식품이라 부른다. 그 중에서 일정한 절차에 따라 만들어 식약처의 인증을 받은 식품은 ‘건강기능식품’으로 구분한다. 의약품보다 접근성이 좋고, 일반 식품보다 몸에 좋다는 인식 덕분에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매년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 홍삼이다. 소중한 사람의 건강을 챙겨주고 싶을 때, 사람들은 흔히 홍삼을 선물한다. 왜 그렇게 인기가 있을까.


홍삼은 인삼을 쪄서 말린 것이다. 찌는 과정에서 색이 붉어져 홍삼(紅蔘)이라고 부른다. 1123년 북송의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인삼을 찌면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면, 중국에 인삼을 수출하기 위해 보존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홍삼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에서 인정한 홍삼의 기능성 내용은 다음과 같다. 면역력 증진, 피로 회복, 혈소판 응집 억제를 통한 혈액 흐름 및 기억력 개선, 항산화, 갱년기 여성의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 기능을 보면 인기가 많을 법하다. 그런데 왜 한의사는 싫어할까.


한의사의 상식에는 홍삼이 무난한 식품이 아니다. 효능이 다양하고 뛰어난 만큼 부작용의 우려도 크다. 맞지 않는 사람이 장기간 복용하면 열이 많아지고, 혈압이 오르며, 불면증이 심해질 우려가 있다. 홍삼은 체질상 소음인에게 잘 맞는데, 소음인은 열 명 중 두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여덟 명에게는 맞지 않다. 이런 사람이 홍삼을 먹고 있다면, 한의사로선 만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해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홍삼이 한의원의 수입과 무관한 까닭에, 한의사들은 홍삼을 무조건 나쁘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한의사로선 답답할 노릇이다. 홍삼은 잘 맞는 사람이 먹으면 아주 좋은 약이다. 맞지 않는 사람도 무작정 먹어서 문제지.


그날 나는 술이 많이 취했고, 다음날 숙취에 몹시 시달렸다. 반면 홍삼을 돌린 형은 밤새도록 끄떡없더니 다음날도 쌩쌩했다. 소음인인 게 분명하다. 다음엔 내가 형의 홍삼을 준비해야지.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04151852511&cod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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