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엔드 Aug 23. 2019

뉴욕 여행기 1일 차

2019.4.27.

“진아. 일어나.” “아함... 몇 시야?” “다섯 시 반.”

하품하며 눈을 뜬다. 밖이 이미 밝다. 여긴 참 뷰가 좋단 말야. 몹시 피로하지만, 대만 여행 때와 비교하면 견딜만하다. 그땐 두 시간 자고 일어났었지. 여행을 레이즈덴에서 시작하는 게 익숙해지고 있다.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갔다. 간단히 면도와 세수만 했다. 배는 샤워를 했다. 짐 챙겨 나와 택시를 탔다. 여섯 시 반. 시간이 일러서 길이 하나도 안 막혔다. 서울역에서 배를 따라 직통열차를 탔다.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마쳤다. “짐을 미리 부친다니, 획기적인데?” “그보다도 출국 수속 줄 안 서는 게 더 획기적이야.” 늘 일반열차를 탔던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공항까지는 사십여분. 의자가 편해서 잘 잤다. 배 말대로 과연 보안검색도 출국심사도 일사천리다. 면세점에서 켠팡과 합류. “야. 니네 왜 이렇게 늦게 와.” 늘 늦던 팡이 웃으며 말했다. 팡이 이렇게 일찍 오다니. 오래 살고 볼일이다.

켠은 아버님께 드릴 선물을 사러 갔다. 배팡은 어떤 술을 살지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가성비 좋은 술을 사기로 결정했다. 54불짜리 보모어, 80불짜리 달위니, 65불짜리 글렌로티스, 42불짜리 몽키숄더를 샀다. ‘아니, 이게 싼 건가? 가성비 따지려면 소주 사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만 했다. 아휴 이 위스키 덕후들.


술을 사고 마티나라운지로 왔다. 이미 PP카드 이용횟수를 다 써버린 팡은 라운지를 유료로라도 이용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켠이 딱 잘라 말했다. “야. 내 PP카드가 동반 1인 50% 할인돼. 50%면 만 오천 원인데, 어차피 공항에서 샌드위치 사 먹어도 만 오천 원이야.” 공항이라고 해서 샌드위치가 만 오천 원씩 하지는 않는다. 켠 다운 허풍이었다. 라운지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켠은 우리가 산 술을 보고는 왜 이렇게 싼 걸 샀냐며 뭐라 했다. “야 임마 가성비 따질 거면 소주를 사지.” 아니 왜 내가 생각만 했던 걸, 나와는 정반대의 의미로 말하는 건데.

기다려서 들어온 라운지엔 짜장범벅이 없었다. 아쉬운 대로 신라면, 튀김우동, 진라면을 먹었다. 나는 맥주, 켠은 와인, 배는 콜라를 마셨다. 팡은 휴지를 많이 썼다. 밖에서 사먹었다면 만 오천 원을 줬어야 할지도 모르는 샌드위치도 먹었다.

비행기 탑승. 2층은 처음 타봤는데, 1층에 타는 것과 체감상 차이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당연하다. 나는 배와 같이 앉고 켠팡은 둘이 같이 앉았다. 배도 나도 이륙과 동시에 잠들었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일어났다. 나는 닭가슴살 구이를, 배는 소불고기 쌈밥을 골랐다. 나는 배가 불러서 내 닭가슴살도 반 잘라 배에게 줬다. 그걸 다 먹은 배는 나더러 입이 짧다 했다. 라운지에서 먹은 건 그새 소화시킨 건가? 배는 참 배가 크다.

좌석에 있는 개인 디스플레이로 영화 퍼스트맨을 보았다. 그럭저럭 볼만 했지만, 위플래시의 신선함이나 라라랜드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게임은 뭐가 있나 봤더니 스도쿠가 있어서, 가장 어려운 난이도로 몇 판 했다. 오랜만이어서인지 상당히 어려웠다. 맥주를 몇 캔 마셨다. 간식으로 치킨 브리또가 나왔다.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배는 “설마 이걸로 저녁을 대신하려는 건 아니겠지?” 라며 걱정했다.

동쪽으로 날면 시간이 빠르게 간다. 오전에 출발하였는데 비행하는 동안 밤이 되었다가 다시 아침이 되었다. 그저 야한 영화인 줄 알고 안 보았던, 박찬욱의 아가씨를 보았다. 이걸 왜 이제야 봤을까. 세 시간 가까이 긴 영화에 지루한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이어서 플립이라는 영화를 보는데 밥이 나왔다. 출발지 기준으로는 저녁 시간이지만, 승무원은 분명히 ‘아침 드시라'고 말했다. 도착지에 가까워져서 그런가 보다. 김치볶음밥과 흰살 생선요리 중에서 둘 다 김치볶음밥을 골랐다. 치즈가 뿌려져 있고 김치는 얼마 없이 닝닝하여 내 입맛엔 안 맞았다. 맛이 별로지 않냐고 배한테 얘기하려다 말았다. 배는 조금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정말 한결같다. 밥을 먹고 플립을 마저 보았다. 남자는 잘생긴 게 최고이며, 똑똑한 여자가 매력적이라는 교훈을 주는 영화였다.

영화 세 편을 보고 게임을 하고 자다 깨고 밥 두 끼와 간식을 먹고 생수와 맥주와 커피와 홍차와 콜라와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나서야 뉴욕에 도착했다. 그렇게 힘들게 왔는데 아직도 4월 27일 오전. 하루가 참 길다. 입국심사 줄이 길었는데 잘 줄어들지도 않았다. 나중에 보니 애초에 직원이 몇 명 없었다. 혹시 파업 중인 건가? 줄 서있는 사람들 표정이, 여행이 아닌 피난을 온 것처럼 지쳐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반을 줄 서서 기다린 뒤에야 입국에 성공했다. 여기 선진국 맞아?

브루클린으로 가는 택시를 타러 가다가, 누가 follow me follow me 해서 따라갔다. 우리 또 말 잘 들으니까. 살살 따라가며 비용이 얼마나 나오냐고 물으니, 말을 돌리고 돌리다 답하길 85불쯤 나올 거란다. 역시 래자불선. 우린 그냥 우버를 이용하기로 했다. 어플을 켜고 목적지를 누르자마자 차가 연결되었다. 예상요금 60불.

기사님은 머리는 빡빡 밀고 턱수염은 하얗게 기르는, 분위기 있는 흑형이었다. 이름은 알리. 앞에 앉은 켠이 기사님의 말동무를 해드렸다. 숨겨왔던 켠의 영어실력. 덕분에 배팡진은 뒤에서 편하게 졸면서 올 수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 우리가 묵을 브루클린 힐튼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낡고 작았다. 맨하탄도 아닌 브루클린에서, 하루 삼십만 원 넘는 방이 이 정도라니. 뉴욕 방값이 세긴 세다. 

짐만 두고 바로 나왔다. 서울보다 조금 쌀쌀했다. 거리를 걷다 치폴리라는 멕시칸 식당에 왔다. "미국 음식 다 짜서 못 먹는다"던 팡이, "치폴리는 안 짜고 맛있다"며 환호했다. 커다란 그릇에 밥과 치킨, 스테이크, 바베큐를 선택해 넣고, 다양한 야채와 소스를 추가해 먹는 방식이었다. 팡은 어떤 녹색 소스를 얹어달라 주문했다. 보기엔 별로였는데 먹어보니 괜찮았다. “팡아. 이게 뭐야?” “응. 과카몰리.” “과카몰리가 뭔데?” “음…” 팡이라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알란 법은 없다. 검색해보니 아보카도로 만든 음식이었다.

식사 후 근처의 센츄리21에 왔다. 물건 가격이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쌌다. 인건비는 비싸고 공산품은 싼 선진국의 모습. 잠시 구경하다가 너무 피곤해 소파에 앉아 쉬었다. 하루가 너무 길다. 신고 온 신발이 작아 발이 아프다던 팡은 새 신을 샀다. 배가 속옷을 사는 걸 보고 나도 하나 샀다. 팬티 세 장에 39.5불. 적당히 싸다고 생각했는데, 결제할 때 보니 거기서 더 할인된 최종가는 19.99불이었다. 확실히 싸긴 싸구나.


쇼핑 마치고 나오니 여섯 시. 아직도 밖은 환하게 밝지만, 다들 너무 지쳐 어딜 더 갈 수가 없었다. 마트에서 마실 것과 안주거리를 사고,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7불짜리 갈비요리를 포장했다. 짐 풀고 씻고 맥주를 마셨다. 마신 지 얼마 안 되어 팡배부터 곯아떨어졌다. 아홉 시도 안 되었는데. 나도 눈이 감겼다. 켠과 몇 마디 더 나누다 누웠다.


작가의 이전글 허브에세이 - 인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