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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Sep 03. 2019

허브에세이 - 뽕

마약 말고, 몸에 좋은 뽕 말예요.

한약재 대부분은 식물의 뿌리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뿌리 본(本)’ 자에 ‘풀 초(草)’ 자를 써서 ‘본초’라 한다. 그렇다고 오직 뿌리만 약재로 쓰는 것은 아니다. 목통은 줄기를, 죽엽이나 소엽은 잎을 약으로 쓴다. 국화와 개나리는 꽃을 쓰고, 대추와 산수유는 열매를 쓴다. 그런데 잎·가지·뿌리·열매를 모두 약으로, 그것도 각기 다른 목적으로 쓰는 식물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뽕나무다.


뽕나무의 잎을 뽕이라 한다. 뽕나무는 꽃이나 열매가 아닌 잎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잎이 나무를 키울 이유였기 때문이다. 뽕잎을 따다가 누에에게 먹이면, 누에는 그 잎을 먹고 자라 고치를 만든다. 그 고치를 삶아 뽑아낸 실이 명주실이다. 명주실로 짜낸 천이 비단이다. 가볍고 빛깔이 우아하며 촉감이 부드러워 예로부터 귀한 소재였던 비단의 제조가 바로 뽕잎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 뽕잎을 약으로도 쓴다. 한자로는 ‘뽕나무 상(桑)’ 자에 ‘잎 엽(葉)’ 자를 써서 ‘상엽’이라 한다. 본초학적으로 발산풍열약(發散風熱藥)에 속한다. 풍열의 나쁜 기운을 흩뜨리고, 폐를 시원하게 적시며, 간을 맑게 하고, 눈을 밝힌다. 마른기침과 두통, 어지럼증 위주의 열감기에 쓴다. 상엽은 효능에 비해 저렴한 약재다. 벌레에게 먹일 정도니 오죽할까. 뽕잎이 워낙 무성하게 나는 덕에 뽕나무밭은 연인들이 몰래 만나기에 좋은 장소였다고 한다. ‘임도 보고 뽕도 따고’라는 속담이 만들어진 이유다.


뽕나무 열매를 오디라고 한다. 한 나무의 잎과 열매를 지칭하는 각기 다른 순우리말 단어가 존재하는 걸 보면, 뽕나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선조들의 관심을 받은 게 분명하다.


한자로는 ‘뽕나무 상’ 자에 ‘오디 심(?)’ 자, ‘열매 자(子)’ 자를 써서 ‘상심자’라 한다. 본초학적으로 보음약(補陰藥)에 속한다. 성질이 차고 맛이 새콤달콤하다. 피를 보태고 진액을 불리며 건조한 것을 촉촉하게 한다. 어지럼증, 이명, 불면, 변비에 쓴다.


가지도 약으로 쓴다. 뽕나무 상 자에 ‘가지 지(枝)’ 자를 써서 ‘상지’라 한다. 본초학적으로 서근활락약(舒筋活絡藥)에 속한다. 근육을 풀고 경락을 활발케 한다. 풍습(風濕)의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관절을 부드럽게 한다. 몸이 찌뿌드드하고 아플 때 쓴다. 특히 어깨와 위팔 통증에 좋다. ‘상지(桑枝)’가 ‘상지(上肢)’에 좋다니 흥미롭다.


뿌리는 껍질을 벗겨내 약으로 쓴다. ‘뽕나무 상 자’에 ‘흰 백(白) 자’, ‘껍질 피(皮)’ 자를 써서 ‘상백피’라 한다. 본초학적으로 지해평천약(止咳平喘藥)에 속한다. 기침을 멎게 하고 숨을 고르게 한다. 소변을 잘 보게 하고 부기를 뺀다. 혈압을 낮추는 효능이 있어 고혈압에도 좋다.


1960~70년대에는 외화 획득의 주요 수단이었으나 1990년대 이후 중국의 값싼 노동력에 밀려 급속히 쇠락했던 양잠산업이 최근 뽕 산업, 오디 산업으로 다시 부흥 중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누에를 먹여 실을 뽑기 위해 뽕을 재배했다면, 지금은 사람이 먹어 건강해지기 위해 뽕과 오디를 재배한다는 것이다. 한의사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뽕 산업, 오디 산업이 상지 산업, 상백피 산업으로까지 확장되길 기대해 본다.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06171020501&cod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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