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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Sep 03. 2019

허브에세이 - 화초

요즘 인싸들 사이에 유행하는 음식, 마라.

처음은 재작년 가을이었다. 영화 <범죄도시>에서 장첸이 먹던 가재 요리를 파는 곳이 있다는 친구의 말에 함께 대림동으로 갔다. 마라롱샤라는 이름도 몰라 메뉴판 그림을 보고 주문했었다. 맵게 해 달랬더니 종업원은 연변 억양으로 “한국사람 입맛엔 많이 매울 텐데”라며 우려를 표했다. 한국 음식도 맵기로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데. 왠지 약이 올라 더 악착같이 먹었다.


다음은 마라샹궈. 작년에 자양동에서 맛보았다. 원하는 재료를 직접 담아 주문하는 방식이 얼얼한 맛만큼이나 생소했었다. 동네에 생긴 마라탕 집에 다니기 시작한 건 올 초다. 그 자극적인 맛에 빠져 중독되었다 싶을 정도로 자주 먹었다. 이제는 자주 먹고 싶어도 못 먹는다. 손님이 많아져 줄이 길기 때문이다. 요즘 마라 요리는 그야말로 ‘인싸’ 음식이다.


마라는 마랄의 중국식 발음이다. 저릴 마(麻) 자에 매울 랄(辣) 자를 쓴다. 여기서 랄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고추의 매운맛이다. 반면 마는 우리에겐 생소한, 저리고 얼얼하여 혀를 마비시키는 맛이다. 묘한 매력이 있어 한 번 맛들이면 자꾸 생각이 난다. 무엇이 이런 맛을 낼까? 바로 초피라는 향신료다.


초피는 초피나무의 열매껍질이다. 추어탕 먹을 때 가루 내어 넣는 그 초피가 맞다. 지역에 따라 제피, 젠피, 조피, 진피라고도 부른다. 한자로는 산초나무 초(椒) 자에 껍질 피(皮) 자를 쓴다. 그러나 산초(山椒)와는 다른 식물이니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고추의 어원인 고초(苦椒), 후추의 어원인 호초(胡椒)처럼 매운 향신료에는 이 초 자를 많이 쓴다. 옛 촉, 지금의 사천 지방에서 많이 쓰는 향신료여서 촉초(蜀椒), 천초(川椒)라고도 한다. 중국어로는 ‘화자오’라고 하는데, 이는 화초(花椒)의 중국식 발음이다.


혀를 마비시킬 정도로 맹렬한 성질을 가진 만큼 한약재로도 쓰임이 있다. 본초학적으로 온리약(溫裏藥)에 속한다. 속을 데우고, 한기를 흩어내며, 축축한 기운을 제거하고, 통증을 멎게 한다. 기생충을 없애며, 음식을 소화시키고, 물고기의 비린 독을 푼다. 성질이 따뜻하며 독성이 있으니, 열이 많은 사람과 임산부는 꺼리는 것이 좋다.


마라 요리에는 초피 말고도 여러 향신료가 들어가는데, 모두 뜨거운 성질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차가운 성질의 약재들로 만든 량차(凉茶)를 곁들여 마신다. 그러니 마라 요리를 먹을 때에는 량차를 마시거나, 량차가 없다면 성질이 찬 녹차나 커피를 디저트로 마시는 게 좋다.


초피는 외국 향신료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다. 특히 지리산 초피를 으뜸으로 친다. 향이 좋아 일본인들이 수매해 갈 정도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낯선 이유는 한식에서 쓰임새가 없는 까닭이다. 기껏해야 추어탕이나 민물매운탕에 넣는 정도. 그러나 고추가 없던 시절에 초피는 매운맛을 내는 데 요긴하게 쓰였던 토종 향신료였다. 조선 후기 고추가 전래된 이후 점차 초피를 쓰지 않게 되면서 오히려 생소해진 것이다. 마라 요리의 인기로 초피가 다시 익숙해지고 있는 지금, 국산 초피를 넣어 만들었던 옛 한식들이 새삼 궁금해진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23&art_id=2019081615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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