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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Nov 24. 2015

글라스톤베리페스티벌 2014

그 첫번째, 경험.

작년이었던 2014년 6월,

회사에 어렵사리 말을 꺼내어 '연차 6일'을 허락받았다.

저, 글라스톤베리 다녀오겠습니다.

공연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팀 내 일원 모두 글라스톤베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고, 팀원들과 2012년엔 미국 코첼라 뮤직앤아츠페스티벌도 같이 관람을 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글라스톤베리처럼 '하드코어'로 100% 캠핑해야 하는 곳엔 간 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곳에 가는 것은 꽤 '대단'하고 '모험'적인 일이었나보다.


글라스톤베리는 1970년부터 시작된 페스티벌로 티켓판매를 개최년도 전 해 10월에 시작한다. 그네들의 대외적 데이터에 따르면, 13만장의 티켓이 30분 만에 매진되고, 실제 30분 이후에 솔드아웃으로 판매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10월 티켓구매에 장렬히 실패하면, 4월에 또 한번의 취소표 구매 기회가 있다. 여기서 실패하면 그냥 못 가는 거다. 동양인 얼굴 구분 잘 못하는 걸 빌미로 양도받아 가는 경우도 있고, 개구멍으로 무단 입장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어쨌거나 공식적 방식은 아니니 제외하고. 나 또한 4월에 티켓을 샀고, (모바일로 접속해서 구매 시도하고 티켓 사는 그 순간까지 엄청 긴장했었다.) 아쉬운 대로 공연 첫 날 저녁에 도착하는 스케줄을 짜서 이후 기간동안 런던과 파리를 돌아보는 일정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기간엔 런던에서 콜드플레이 콘서트도 예정되어 있었다. 왜, 티켓이야 매진이어도 살 수 있지 않겠나, 라는 막연한 계획으로.


저녁에 히드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싶었지만 마지막 차는 이미 다 가버린 후였다. 결국 패딩턴역에서 가는 열차에 몸을 싣기 위해 빠르기 움직여야 했고, 다행히 제대로 열차에 타고 나니 조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열차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글라스톤베리,

이름과 예약번호를 보여주고 내 얼굴이 인쇄된 티켓을 받아 팔찌를 채우고 들어간 페스티벌 사이트 내는.... 전부 진흙이었다. 텐트, 진흙, 깃발, 광활한 캠핑존. 어렴풋이 보이는 조명, 불길, 음악소리.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출발할 때부터 장화를 신고 간 스스로가 대견했다. 비가 한 차례 지나간 것 같은 드넓은 광야는 원래 잔디가 있었던 곳인가싶게 전부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남들은 이미 축제가 시작된지 오래여서 고주망태로 신이 났지만, 난 처음 오는 곳이고 밤을 보낼 텐트를 빨리 치는 게 급선무였다. Pyramid stage가 어딨는지, 공연은 끝났는지가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The Blues와 몇몇 개의 무대들을 지나 Other stage 맞은 편 길 쪽에 공간 하나가 눈에 띄었다. 2인용 텐트를 가져간 터라 적은 공간이면 충분했으므로 일단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스크릴렉스의 디제잉을 BGM으로.


침낭크기만 했던 텐트는 집에서 시험으로 쳐봤을 때보다 수월했지만, 텐트 바닥에 물이 찰 게 뻔하게 텐트를 쳐둔 잔디에 물이 흥건했다. 캠핑용품을 파는 부스에서 에어매트를 하나 사서 텐트까지 오는 길도 험난했다. '이걸 집에서부터 불어가지고 온 거니, 우, 섹시'라며 쓸데없는 성적농담을 하던 지나가는 멍청이의 대화도 받아쳐줘가며 - 옆에 있는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왜 미안해?" "아, 그냥, 내가 대신 미안해" - 도착한 텐트에 일단 잠자리 세팅 완료. 도착해서 집에라도 연락하려고 했더니 메시지도 겨우 전송되고, 인터넷도 되질 않는다. 반쯤 포기하고 슬슬 둘러볼 차례다.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메인스테이지인 'Pyramid stage' 공연은 거의 다 끝났을 시간이었고 (텐트치다보니 other stage 헤드였던 스크릴렉스 공연이 끝났다....) 불을 뿜고 있는 거미 모양 스테이지에서는 뭔가 계속 새벽까지 공연이 있는 것 같아 그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 대충 짐은 텐트에 던져놓고.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넓은 공간에서 굳이 '내 텐트'가 털릴까 싶었고 여기까지 왔으니 신경 곤두세워봤자 나만 아쉬울 터였다.


좀 더 고삐 풀고 내가 네 친구요, 네가 내 친구요, 하는 호기를 부리며 놀기에는 아무 계획없이 혼자 간 나에게는 그게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글라스톤베리의 그 큰 부지를 3일간 전부 돌아보는 게 더 중요했다. 남들처럼 페스티벌 공연 시작 전에 텐트를 미리 치고 그 많은 프로그램(연극, 스피치, 서커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 등 무궁무진하다.)을 다 누릴 수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딱 공연을 하는 3일동안을 허락받은 셈이라 부지런하게 전체 부지를 다 돌아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저녁 밤의 불을 뿜는 거미는 강렬했다. 'Arcadia'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스테이지는 디제잉 중심으로 진행되는 무대였다. 몇 곡 듣자하니 거의 공연은 끝난 분위기였고, 나의 피곤함은 극도에 달해 있었다. 사실 내 체력은 영국 아이들과는 태생적으로 다를 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텐트로 돌아가서 잠을 청했고, 이 놈의 영국 6월 날씨는 한 겨울만큼 추워 침낭 안에서도 옷을 몇 겹을 더 껴입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지나가고 어두웠던 하늘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느꼈을 때, 난 시계를 보고 충격이 빠졌다.


새벽 4시,

동이 튼다...


아직 하나도 안 놀았는데도 너무 피곤한 나와는 너무 다르게,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잠도 필요없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거였다. 이 시기를 위해 준비하고 일해왔으니. 지금을 위해 여기 있으니.


난 밤새 웅크린 몸을 펴고 전체 페스티벌 사이트의 맵과 보러 갈만한 아티스트가 누가 있을지 훑어보았지만 스테이지 수도, 공연하는 아티스트도 정말 이렇게 많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의 로망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맵에서 위치를 확인해둔 샤워시설이 있는 Kiz field 방향으로 향했다.  


#글라스톤베리

#영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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