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길, 천왕봉으로

— 어둠 속에서도 길은 있다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세석대피소에서 천왕봉으로 가려면
여러 생각이 오간다.


세석에서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새벽 두 시 반에는 출발해야 한다.

취사장에서 이야기 나누던 팀들에게 물었다.
“내일 언제 출발하세요? 새벽에 나가시나요?”
그들은 피곤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요.
아침 되어봐야 알겠어요.”


그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굳이 일출을 봐야 하나?’
가까운 촛대봉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해를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새벽어둠을 홀로 걷는다는 게
솔직히 두려웠다.


산전문가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석에서 몇 시에 나가야 천왕봉 볼 수 있을까?”
“3시에는 나가야지. 그래야 일출 볼 수 있어.”
그의 대답에 잠시 할말을 잃었다.

혼자서, 깜깜한 산길을 뚫고 간다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잠시 망설였다.
‘그래, 그냥 촛대봉까지만 갈까?’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마음 한쪽이 속삭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가보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시계를 바라보다가
2시가 되자 조용히 일어났다.


옆 사람들을 깨우지 않으려
살금살금 짐을 챙겼다.

밖은 깊은 어둠뿐이었다.


숨을 고르고,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에게 말했다.

취사장으로 향했다.
따뜻한 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손끝이 시렸다.


그때 문이 열리며 몇 명이 들어왔다.

“3시 출발입니다.”
그 말이 등 뒤를 밀었다.


짐을 후다닥 챙겨
그들의 뒤를 따라나섰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약 두 시간,
돌길은 미끄럽고 경사는 가팔랐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든든했다.
앞서 걷는 헤드랜턴 불빛이
길을 비추는 별빛처럼 보였다.

어둠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다잡는 시간이었다.
내가 두려움을 넘는 순간,
길은 나를 받아주었다.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니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왔다.
숨이 차올랐지만
마음은 고요했다.

아침 바람이 차가웠다.
하늘은 여전히 어둠에 덮여 있었지만
멀리서 구름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두려움 속을 걸어온 이 시간이,
내 안의 길을 여는 시간이었음을.


어둠은 나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길을 비춰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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