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출 대신, 나를 마주한 시간
함께 걷던 팀들은 일출을 보기 위해
천왕봉으로 향했다.
나는 잠시 멈추기로 했다.
장터목 대피소의 안개가
나를 유혹했다.
그래, 정신없이 오르기보다
오늘은 천천히 아침을 맞이하자.
일출보다는,
운무 속의 고요한 빛을 보고 싶었다.
취사장으로 들어가
배낭에서 버너를 꺼냈다.
물통에 물을 받아
조심스레 끓였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미리 준비해 온 빵 한 조각.
그것으로 충분했다.
김이 피어오르는 컵을 손에 들고
온전히 나만의 아침을 즐겼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 속의 여유가 참 좋았다.
하산길을 생각하며
물도 끓였다.
내가 준비해 온 미숫가루를 풀어
물통에 담았다.
“그래, 오늘 하루도 이렇게 시작하는 거야.”
취사장엔 한두 명씩 사람들이 들어왔다.
아버지와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들.
아들은 익숙하게 손을 놀려
아버지를 도왔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나도 나중에 아들이랑
이런 산행을 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아이들은 아마 싫어하겠지만,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따뜻해졌다.
밖으로 나가
대피소 풍경을 찍었다.
안개가 천천히 흘러
산과 하늘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그때였다.
멀리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어머, 리더님!”
깜짝 놀라 돌아보니
우리 동호회 회원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여기서 만나?”
우리는 놀라 웃으며 부둥켜안았다.
친구와 함께 백무동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지리산에서 다시 만나다니,
이런 인연도 있구나 싶었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그 순간이 참 반가웠다.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산에서 마주친다는 건
참 신기하고, 따뜻한 일이었다.
안갯속 장터목의 아침.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내 안의 해가 천천히 떠올랐다.
때로는 멈춤이,
가장 깊은 걸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