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가며 비로소 보이는 것들
천왕봉의 운무를 뒤로하고,
이제 하산길이다.
원래 계획은 대원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것이었지만
이번에도 시간상 어쩔 수 없이
중산리로 향했다.
아쉬움은 없었다.
이 아쉬움이 있어야
다시 올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 마음 하나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은 여전히 미끄럽고,
발끝엔 여운이 남았다.
지리산의 바람이
내 어깨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 올라오는 중년의 남성이
내게 말을 걸었다.
“산에 오르시면 결국 내려와야 하는데,
왜들 그렇게 산에 가시나요?”
순간, 주변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왜일까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정답을 찾으러 가는 거겠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답은 없어요.
그냥 올라가보면 알게 돼요.
다시 오게 되는 게, 산이니까요.”
그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와, 저분은 뭔가 아는 분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잠시 뒤, 다른 등산객이 말했다.
“이제 내리막이네요.
그럼 곧 오르막도 있겠죠?”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래, 산이 그렇듯
인생도 그렇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다시 오르막이 있다.
힘든 길이 있기에,
편안한 길의 소중함을 안다.
그리고 그 모든 길이
결국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하산길에 여러 생각이 스쳤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걸으며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했던 기억.
오래전 100대 명산 도전을 시작하며
첫 발을 내디뎠던 중산리의 길.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서툴렀지만,
그 길을 걸으며 조금씩 단단해졌다.
이 길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그 위를 걷는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달라진 건,
그 길을 바라보는 나였다.
산을 오르는 일은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