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 위에서

돌아가는 길 위에서도, 나는 여전히 여행자였다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부산으로 가는 버스는 12시 20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12시 40분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매표소 직원이 말했다.
“그다음 부산행은 다섯 시 넘어야 있습니다.”

잠시 망설였다.


“그럼 진주행은요?”
“2시 20분 차 있습니다.”

할 수 없이 진주행 버스를 예매했다.
버스표 한 장에도, 길의 여운이 담겨 있었다.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며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하던 중년 남성 몇 분이
내게 물었다.

“종주하셨어요? 혼자서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몇 년 전에도 들었던 말이었다.

지리산 둘레길을 처음 걸을 때,
어르신들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세상에, 혼자서?
안 무섭나, 큰일 난다.”

그 목소리와 억양이
그대로 귀에 들리는 듯했다.
그 어르신들, 지금도 잘 계시겠지.
그때 나를 걱정하던 눈빛이
문득 그리워졌다.


남자분들은 말했다.
“우리도 두 시간 뒤에 부산 가요.
기다리시면 같이 태워드릴게요.”

마음만 감사히 받고
정중히 인사드렸다.
지리산의 끝자락에서도
사람의 온기가 이어졌다.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반.
나는 천천히 움직였다.
장비를 정리하고
화장실에 가서 간단히 씻었다.
거울 속 얼굴에는 피로보다
묘한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수고했어.”
작게, 나 자신에게 말했다.


식당에서 정식을 시켰다.
며칠 만에 먹는 따뜻한 밥이었다.
반찬 하나하나가 유난히 맛있었다.
입안 가득 고소한 밥냄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 이것도 삶이야.’
길 위에서의 나,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나,
둘 다 진짜 나였다.


시간은 어느새 흘렀다.
배낭을 다시 메고
버스 매표소 앞으로 걸었다.

이제 진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거기서 다시 부산으로 갈 것이다.
오는데 세 시간,
돌아가는 데도 세 시간.

하지만 이상하게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지리산이 내게 준 시간은
길 위에만 머무는 게 아니니까.


버스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능선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두려움 말고, 마음만 챙겨 오세요.”

그 말이 버스 창문에 스며들었다.
햇살이 천천히 손등을 덮었다.
나는 미소 지었다.


길은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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