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대길 3피치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6피치에 이르러서는 빗줄기가 거칠어졌다.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고,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리더는 잠시 우리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
“이제 힘든 구간은 거의 다 지났어요.
남은 건 편한 구간인데…
모두 너무 젖었고, 너무 추워 보여요.
저도 춥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올라오시는 형남 오시면
그분 의견 듣고 결정하죠.”
그 형님은 올해 일흔,
오랜 등반 경력의 베테랑이었다.
우리는 그를 기다리며 잠시 자리에 앉았다.
비는 점점 거세졌고,
옷과 배낭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몇 시간을 맞고 나니
몸이 서서히 굳어갔다.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방수 바지를 가져왔지만,
꺼낼 여유조차 없었다.
면 바지는 금세 젖어
차가움이 그대로 몸에 전해졌다.
그렇게 배우는 거겠지 —
비 오는 날, 바위 위에서는
단 한순간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비가 쏟아지는데도
나는 카메라를 꺼냈다.
리더와 동료들의 모습을 찍고,
잠시 셀카도 한 장 남겼다.
그때 문득, 눈앞의 풍경이 들어왔다.
비에 젖은 설악의 능선,
안개와 바람이 뒤섞인 그 장면이
너무 경이로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고요와 격렬함이 함께 있는 풍경이었다.
그때 선배님이 올라오셨다.
“고생했어요.”
서로 눈인사를 나누며 잠시 숨을 고르는데,
그분의 어깨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몇 시간을 맞으니 옷도, 배낭도 다 젖었네.”
그 말에 다들 웃었지만,
웃음 속엔 떨림이 섞여 있었다.
다들 저체온증이 올 만큼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리더와 선배님이 잠시 상의한 뒤 말했다.
“아무래도 내려가야겠어요.”
아쉬웠다.
어려운 구간은 다 지나왔는데,
이제부터는 쉬운 길만 남았는데.
하지만 리더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걸 보고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강 준비를 마치고,
젖은 바위 위에 몸을 맡겼다.
로프를 따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바위 위의 작은 돌 하나조차 조심스러웠다.
“큰 돌만 밟아요.”
리더의 말이 빗속에 섞여 흘렀다.
그때, 작은 돌 하나가 굴러 떨어지며
내 손등을 스쳤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와 추위 속을 떨며 내려오면서
나는 하나를 배웠다.
끝까지 내려오기 전엔,
끝난 게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