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하산길, 비와 추위 속에서 배운 것들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경원대길 3피치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6피치에 이르러서는 빗줄기가 거칠어졌다.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고,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리더는 잠시 우리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
“이제 힘든 구간은 거의 다 지났어요.
남은 건 편한 구간인데…
모두 너무 젖었고, 너무 추워 보여요.
저도 춥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올라오시는 형남 오시면
그분 의견 듣고 결정하죠.”


그 형님은 올해 일흔,
오랜 등반 경력의 베테랑이었다.


우리는 그를 기다리며 잠시 자리에 앉았다.
비는 점점 거세졌고,
옷과 배낭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몇 시간을 맞고 나니
몸이 서서히 굳어갔다.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방수 바지를 가져왔지만,
꺼낼 여유조차 없었다.
면 바지는 금세 젖어
차가움이 그대로 몸에 전해졌다.
그렇게 배우는 거겠지 —
비 오는 날, 바위 위에서는
단 한순간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비가 쏟아지는데도
나는 카메라를 꺼냈다.


리더와 동료들의 모습을 찍고,
잠시 셀카도 한 장 남겼다.
그때 문득, 눈앞의 풍경이 들어왔다.
비에 젖은 설악의 능선,
안개와 바람이 뒤섞인 그 장면이
너무 경이로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고요와 격렬함이 함께 있는 풍경이었다.


그때 선배님이 올라오셨다.
“고생했어요.”
서로 눈인사를 나누며 잠시 숨을 고르는데,
그분의 어깨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몇 시간을 맞으니 옷도, 배낭도 다 젖었네.”
그 말에 다들 웃었지만,
웃음 속엔 떨림이 섞여 있었다.
다들 저체온증이 올 만큼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리더와 선배님이 잠시 상의한 뒤 말했다.
“아무래도 내려가야겠어요.”


아쉬웠다.
어려운 구간은 다 지나왔는데,
이제부터는 쉬운 길만 남았는데.
하지만 리더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걸 보고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강 준비를 마치고,
젖은 바위 위에 몸을 맡겼다.
로프를 따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바위 위의 작은 돌 하나조차 조심스러웠다.


“큰 돌만 밟아요.”
리더의 말이 빗속에 섞여 흘렀다.


그때, 작은 돌 하나가 굴러 떨어지며
내 손등을 스쳤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와 추위 속을 떨며 내려오면서
나는 하나를 배웠다.


끝까지 내려오기 전엔,
끝난 게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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