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다시, 길 위에서>

나를 살아내는 두 번째 여정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 나를 살아내는 두 번째 여정

며칠 전, 인사실의 전화 이후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무언가 끝나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나는 그 끝을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침 공기를 마주하는 순간
모든 게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출근길 대신 산책길로 향하는 발걸음

늘 보던 길인데도 풍경이 달라 보였다.


누구의 시선도, 업무의 마감도 없는 하루.
시간의 속도는 느려졌지만,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오히려 나를 다시 만난다.


한동안은 허전했다.
매일 반복되던 일과가 사라지자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 허전함 속에서 마음이 자꾸 자라났다.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비워야 비로소 나로 채워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성과가 아니라 ‘의미’를 남기고 싶다.
누군가의 계획이 아니라
내가 세운 하루를 살아내고 싶다.


퇴직을 앞둔 지금,
나는 다시 길 위에 서 있다.

이번엔 누가 정해준 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나아가는 길이다.
길 위에서 걷고, 보고, 쓰며
나는 다시 ‘나’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퇴직하면 이제 편하겠네요.”
하지만 나는 안다.
퇴직은 편안함이 아니라,
다시 배워야 하는 시작이라는 것을.


새로운 일상은 여전히 낯설고,
때로는 두렵다.
하지만 두려움은 늘 나를 성장시켰다.


지리산의 오르막에서
설악의 바위 위에서
나는 두려움을 딛고 나를 세웠다.

그리고 이제
삶이라는 또 하나의 길 위에서
그때처럼 천천히, 단단히 걸어가려 한다.


길 위의 시간은 나를 가르쳤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멈춰 설 때 오히려 멀리 볼 수 있다는 것.
그 깨달음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


이제 나는
일로 살아온 시간을 내려놓고,
나로 살아가는 시간을 맞이한다.


그 시간은 아직 낯설지만,
그래서 더 설렌다.


다시, 길 위에서
나는 또 한 번의 시작을 배운다.


누군가의 기대가 아닌 나의 속도로, 나의 방식으로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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