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이 길의 속도를 닮아간다.
처음엔 서둘렀다.
구간별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시간당 어떻게 걷는지
몇 시간을 걸었는지
계속 숫자에 매달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두를수록 길은 더디게 느껴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걸음을 늦추기로 했다.
숨이 차오르면 멈춰 서고
나뭇잎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그때 깨달았다.
길은 ‘빨리 가는 법’보다
‘멈출 줄 아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것을.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며 걷고
안개가 끼면 잠시 기다렸다.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나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예전의 나는 늘 결과를 향해 달렸다.
일에서, 삶에서, 관계에서도
늘 ‘다음’을 서둘렀다.
하지만 길 위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길은 단 한 걸음씩만 허락했고,
그 속도 이상으로는 아무리 애써도 나아갈 수 없었다.
그 느림 속에서 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혼자라는 사실이 외롭기보다는
오히려 내 안의 목소리에 더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누구의 시선도, 기대도 없는 곳에서
비로소 나는 ‘나의 속도’를 알게 되었다.
길은 언제나 나에게 말한다.
“서두르지 말아요. 지금 이 속도로 충분해요.”
그 말이 나를 위로한다.
삶도 결국 길과 다르지 않다.
빨리 가는 것보다
오래, 단단히 걷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지리산의 숲길이 내게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