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고기 전문점이 문을 열었다.
출퇴근길마다 붙어 있던 “○○○, 곧 오픈합니다”라는 문구가
드디어 현실이 된 것이다.
오픈 첫날, 주류 무료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퇴근길,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점이 문 열었대요. 오늘은 술이 공짜래요.”
남편의 귀가 솔깃했다.
고기보다 술이 무료라는 사실이 그의 발걸음을 이끌었을 것이다.
나는 술 대신, 가게 한쪽에 마련된 샐러드 코너에 눈길이 갔다.
직업적인 습관 때문일까.
‘이렇게 해서 과연 마진이 남을까?’ 하며 무심코 동선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본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편하게 식사만 해요.”
샐러드를 담아 돌아서려는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언니―!”
고개를 돌리니 오래전 직장 동료가 서 있었다.
세월이 흘렀건만 어제 본 듯 반가웠다.
우리는 손뼉을 치며 웃었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고 속삭였다.
더 놀라운 건, 바로 옆 테이블에 후배 가족이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짧은 인사로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지난날의 기억과 근황으로 이어졌다.
나는 ○○병원 원무과에서 13년간 행정 업무를 맡았다.
후배와의 인연은 그 시절, 퇴직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새내기였다.
내겐 아직도 20대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중년의 얼굴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나 또한 그녀가 기억하는 ‘그 시절의 나’와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쩜, 하나도 안 변했다며
서로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반가웠다.
그녀는 오래전 병원을 떠나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선배, 대단하세요.”
그녀의 말에 나도 웃으며 말했다.
“너도 잘 살았잖아.”
후배가 기억하는 그 시절의 나는 치열한 30대를 살았다.
아이를 돌보며 일과 육아를 병행했고,
내 앞가림만으로도 벅찼다.
그때 후배들은 종종 내게 말했다.
“선배는 왜 그렇게 사세요?”
하지만 훗날 그들은 고백했다.
“선배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길을 걸었어요.
결혼하고 일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선배가 먼저 그 길을 닦아줬기 때문이에요.”
그 말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계획하지 않았던 만남은 더욱 특별했다.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나게 했고,
함께 웃고 울며 마음을 나누게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이 말했다.
“30년 전 인연인데도 여전히 반가워하는 걸 보니,
당신, 참 인생 잘 살았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퇴직을 앞두고 조금은 의기소침해 있던 나에게
그 한마디가 따뜻한 위로로 스며들었다.
그래, 너 잘 살았어.
그날 밤 나는 내 마음을 다정히 다독였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우연한 만남이 내게 알려준 건 단순했다.
스쳐간 인연 속에서도,
내가 놓치고 있던 삶의 작은 행복이 반짝인다는 것.
오늘 내가 찾은 나만의 금맥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