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마음에 스친다.
‘나는 어떤 존재일까?’
누구에게나 쓸모가 있다고 말하지만,
막상 내 일상 속에서 그 쓸모를 발견하는 순간은 많지 않다.
‘쓸모’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쓸 만한 가치, 어떤 일이나 목적에 도움이 되거나 유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 하루 속에서 그런 순간은 언제일까.
어쩌면 나는 이미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임원 모임에서 알게 된 지인이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길을 갔지만,
우리의 인연은 2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었다.
평소엔 카톡으로 안부를 전할 뿐, 전화를 주고받는 일은 드물다.
“○○ 엄마, 잘 지내시죠? 바쁘신 건 아니죠?”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녀는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아이들은 다 알아서 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복잡해서요.”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미소로 답했다.
“저도 그랬어요. 같이 이야기 나눠봐요.”
2년 전, 나 역시 큰아이의 결혼을 앞두고
비슷한 마음을 겪었다.
결혼식 준비부터 하객 맞이, 사돈댁 예의까지
모든 것이 낯설고 막막했다.
그때 나는 주변에 먼저 경험한 친구들에게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모두 달랐다.
결국 ‘아무리 잘하려 해도,
서운함은 남는다’는 사실만 남았다.
결혼식 준비 과정에서 아들과도 몇 번 부딪혔다.
그때 남편이 아들에게 말했다.
“너희 엄마도 여자다.”
그 한마디에 복잡했던 마음이 풀리듯 조용히 눈물이 났다.
나는 그 이야기를 지인에게 들려주었다.
상견례의 옷차림, 결혼식장의 인사, 놓치고 후회했던 순간들까지.
그리고 덧붙였다.
“혹시 또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세요.”
전화를 끊으며 그녀가 말했다.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나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금의 경험을 나눈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짐을 덜어줄 수 있었다니
그 사실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돌아보니 ‘쓸모’란 거창한 능력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때로는 귀 기울여 들어주는 태도,
공감 어린 눈빛,
그리고 진심이 담긴 한마디 속에 숨어 있었다.
그럴 때야말로
내가 살아 있다는 실감을 느낀다.
저녁이 되어 하루를 정리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오늘 어떤 역할을 했는가.”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 덜어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쓸모 있는 하루가 아니었을까.
오늘은 그래서 고맙다.
누군가의 삶에 작은 빛이 될 수 있었다는 것,
그 순간 나 또한
살아갈 이유를 다시 확인했으니 말이다.
내 쓸모는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오늘처럼,
누군가에게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가장 소중한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