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따가운 햇빛을 피하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 뜨거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새 배낭에는 젖은 양말을 양쪽에다 매달고
땀에 젖은 셔츠도 신경 쓰지 않고 걸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나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조금씩 이 길에 스며들고 있었다.
. 길 위에서 사람들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다.
말을 건네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걸음을 응원한다.
가끔은 앞사람의 그림자를 밟으며 걷고,
가끔은 혼자가 되어 길게 이어진 길을 바라본다.
낯선 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짧게 미소 짓고, 손을 들어 인사한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 좋은 길 되세요.
그 짧은 인사 속에는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어느 날, 혼자 걷고 있는 미국인 여성에게 물었다.
“혼자 걷는 게 외롭지 않으세요?”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웃었다.
“No problem!”
그녀는 한 달 넘게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걸을 수 있음에,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해요.”
그녀의 눈빛은 단단했고, 그 웃음은 햇살처럼 따뜻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힘들고 지친 날에도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면 살아 있음을 느꼈다.
걷는다는 건, 단지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확인하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깨달아갔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아직 남은 거리보다, 이미 걸어온 길을 떠올리며.
걸을 수 있음에, 그 자체로 감사하며.